길을 가는 아이는 똑바로 걷지 않는다

by Lydia Youn
[북유럽 디자인], 안애경 지금, Sigonart


“그 옛날, 아날로그적인 상태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과도한 최첨단 기술이 이루어 놓은 현재 생활환경에 대해서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 나의 창의성을 방해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가진 기계나 컴퓨터라도 나의 생각을 지배할 수는 없다. 컴퓨터에서 완성한 근사한 작업과, 마치 실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리얼함에 간혹 디자이너의 소임을 다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리얼한 그림 속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책임과 과제들을 포함시키고 실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컴퓨터는 도구로서 일정한 기능을 가지고 편리하게 사용되지만 인간이 가진 세밀한 감각을 키우는 데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디 디자인뿐일까. 다양한 종류의 창작활동에서 기계나 컴퓨터는 이제 빠질 수 없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 나의 글 또한 종이에 활자로 인쇄되어 책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인터넷을 통해서 읽힐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차 빠질 수 없는 것이 기계이고, 글을 쓸 때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타자를 두드리고 있지 굳이 직접 손으로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작의 방식과 창작물이 유통되는 방식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더 기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말하며 옛날로 돌아가자고 하기에는 시대의 변화가 너무나도 빠르다. 내가 잠시 멈추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들은 무서운 속도로 저 앞을 달려 나가곤 한다.

하지만 과연 달려 나가고 싶어서 달려 나가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혹은 나도 모르게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대의 흐름이 이렇다 보니,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만은 이 부분에 대해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컴퓨터를 두드리고 기계를 만지면서 탄생하는 작품이 있기 전까지의 아직 작품이 되지 않은 영감들은 우리가 직접 부딪히는 세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디자인], 안애경 지금, Sigonart


“길을 가는 아이는 똑바로 걷지 않는다. 어떤 물건이 보이면 그것을 만지고 탐험한다. 아이는 그 어떤 하찮은 물건에도 본능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한다.”

가끔 지나가다 아이들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거나 아이들의 행동을 들여다보면 내가 상상치도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은 창의적이다. 똑바로 걷지 않고 세상을 모두 느끼고 탐험하고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하찮은 미물에도 본능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하며 그렇게 삶의 모든 부분을 그저 받아들인다.

수용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 곧 늙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똑바로 걷지 않는 아이에서 똑바로 걷는 어른으로, 하찮은 미물에 행복해했던 아이에서 하찮은 미물의 ‘하찮음’을 알아버린 어른으로, 다양한 물음과 호기심을 가진 아이에서 더 이상 뭔가를 알기가 귀찮은 어른으로.

똑바로 걷는다고 해서 바른 어른이 되었다면 어른인 우리 모두에게는 걱정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 바르게 걸어왔다고 해서 바르게 살아지던가? 바르게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닥친 상상치 못했던 시련에 무너지는 어른이지는 않았던가? 똑바로 걷지 않는 사람들을 나무라면서 자신은 과연 얼마나 똑바로 걷고 있었는가? 똑바로 걸어야만 하는가? 가끔은 멈춰야 할 때도, 똑바로 걷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도, 뒤를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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