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미있게 보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중에 ‘불량연애‘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소싯적 양아치였던 사람들이 출연하는 불량한 연애 프로그램이다. 많고 많은 연애 예능 중에서 그 컨셉이 매우 독특하고 출연진이 매우 매력적이고 솔직해 보여서 프로그램을 보기 전부터 ’이건 진짜 내 스타일일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역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한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판을 치는 그저 그런 뻔한 연애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오히려 그런 프로그램보다 수위는 낮고 진심은 더해진 이 프로에 마음이 끌려서 열심히 보고 있던 와중에 어떤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테카린이라는 여성 출연자가 그곳에서 촬영을 하면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출연진들을 만나고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그녀가 부끄러이 여기는 히키코모리 오빠가 있었다. 그녀는 그녀보다 나이도 몇 살이나 많으면서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있는 오빠가 매우 부끄러워서 그를 두고 가족이 아닌냥 행동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그보다 더 괴롭고 슬픈 가족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녀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 가족은 그래도 참 잘 지내고 있는 것인데 생각하며 오빠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 진다. 그녀는 공중전화로 가서 오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오빠의 상황을 알면서도 오빠에게 너무 했으며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우리가 한 가족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다. 우리 가족이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도.
이 장면을 보면서 엉엉 울었는데 내 눈물의 이유는 그 장면이 10년 전쯤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매우 밝고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향의 사람이라 누구에게나 웃으며 다가가고는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를 아는 사람은 나에게 이런 과거가 있었음을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쯤의 나는 엄청난 히키코모리였다. 당시에 나에게는 삶에서 여러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쳤었다. 일단 가정의 재정적 상황이 매우 안 좋아져서 인생 중 가장 좁은 집에서 살던 때였고, 십자인대 파열로 무릎 수술을 해서 깁스를 몇 달간 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고, 지금의 몸무게보다 15-20킬로가량이 더 나갔었고, 대학의 학과가 잘 맞지 않아서 학교를 가기 극도로 싫어하는 등교 거부 학생에 멘탈이 여러모로 무너진 상태였다. 정말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 수술을 하기 전에는 어차피 죽으면 그만인데 수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달까. 아무튼 그 정도로 정말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정말 잘하고 싶은데 모든 상황이 나의 바람과 점점 멀어져감을 느낄 때, 그래서 나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무너지면서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걱정만이 내 머리에 떠돌 때, 사람은 히키코모리가 된다. 나는 그렇게 세상과 벽을 쌓고 집 안으로, 침대 안으로 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이런 나를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근데 그때 당시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의 나에게는 테카린처럼 나를 뭐라고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 중 단 한 명도 집에서 뭐 하는 것이냐며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내가 슬픈 기억을 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 정도의 큰 상처는 기억에 많이 남아 있을 텐데 그런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한 것 같다.
특히 엄마는 죽고 싶다며 발악하는 나를 케어해 주시고, 꽤나 먼 학교까지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해주시며 나랑 같이 학식도 몇 번 드셨다.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그때 당시 나와 가장 친했던 사람이 엄마였던 것 같다. 엄마는 왜 나를 타박하지 않았을까. 내가 잘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에? 아니면 어떤 모습의 나이더라고 그냥 나를 너무 사랑해서? 아마도 후자인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 그토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엄마한테는 더 큰 상처였을 것 같다. 엄마는 아직도 거의 매일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시며 나를 엄청 자랑스러워하시고 내가 없으면 죽는 거나 다름없다고 하신다.
아마도 그때의 나를 그저 나로서 이해해 주려는 가족 덕분에 나에게도 서서히 회복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큰 힘이 되니까. 그때 나는 내가 심한 우울증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내가 원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지금 아픈 상태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자살 예방 전화 같은 곳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원과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정신과 상담 및 약 처방, 구청의 무료 심리 상담 10회 등등 여러 루트를 이용했다. 그리고 꽤 긴 기간 동안 다이어트를 하면서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오려는 노력도 열심히 했으며, 학교도 다시 열심히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이렇게 회복해서 누구보다 자주 웃음을 짓는 사람이 된 내가 그 당시 그토록 히키코모리이고 싶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큰 기대와 다른 하찮은 현실에 그냥 눈을 감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난 열심히 회복했으며 그때 당시의 나는 내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테카린을 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떠올라서 엉엉 울고, 그런 나를 나로서 조용히 바라보고 응원해 주었던 가족들이 떠올라서 엉엉 울었다.
당신은 타인에게 온전한 이해를 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가족의 온전한 이해 덕분에 살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다. 나 역시 가족의 그런 큰 사랑을 닮아 나의 사랑과 이해를 타인에게 나눠주려는 마인드셋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픈 손가락 같은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우리 자신이 그 아픈 손가락이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이해가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라면 오늘부터 좋은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겐 하루 더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가 하루하루 더 늘어난다면 세상엔 행복한 사람들로 더욱 가득 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