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온전히 ‘혼자’ 일 수 있는가?
우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 한국에서는 뉴스에서만 나오는 일로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고 말았다. 먼저 겪은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현실은 정말 우리나라가 잘했다는 것. 그게 국뽕이든 뭐든 간에 주요 발생국 사망률과 검진 건수 대비 확진율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가장 성행하고 있었을 코로나 19 초반 시기에 중국인 입국을 왜 막지 않았냐고 하면서 정부를 욕하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정부를 욕하면서 의료계가 잘한 것이지 정부가 한 게 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정치 이념을 떠나서 정말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잘하게 된 계기가 이전 정권 시절 메르스를 겪고 나서 전염병에 대한 의료계의 대처 시스템이 좋아진 이유 때문인지 혹은 코로나를 가장 먼저 겪게 된 이유 때문인지 혹은 정부가 진짜 잘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매길 수는 없으나 잘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 잘하고 있는 것이 시스템을 만들고 이행하는 정부나 정부 관처인지 그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피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의료인들인지 우선순위를 매길 수는 없으나 잘하고 있다. 이전 정부이든 현 정부이든 정부가 체계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의료계는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이고, 의료 계층이 헌신하지 않았더라면 정부의 정책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당장 눈 앞의 상황을 바라보자면 누구라도 붙잡고 탓을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만 해도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수입이 말도 안 될 만큼 많이 줄었고, 주변에 사업을 하던 지인들이 사업을 접기도 했고, 면접이 딜레이 되어서 취직의 기회마저 미뤄지거나 없어진 사람들, 혹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 상권이 죽어서 수입이 평소의 반의 반도 안 나오는 자영업자들, 당장 눈앞의 수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도 알 수 없는 수험생들, 각종 시험의 일정이 늦춰져서 앞으로의 계획들이 어긋난 사람들, 안정적이지 않은 시스템에서 강의를 하고 또 강의를 들어야만 하는 수많은 선생님/교수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잃을 위기에 놓인 이들과 코로나에 걸려서 신체적인 아픔뿐만 아니라 본인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을까 하는 괴로움에 정신적인 문제까지 생기는 이들 혹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을까 매일 전전긍긍하는 이들까지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재까지 코로나를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완치 후 재 확진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완치 후 재 확진’이라는 말은 정말 모순적이다. 그 말은 즉슨 완치가 되지 않았거나 완치가 되더라도 다시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말이 된다. 확실한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걸리고 나아도 다시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염병이라는 것이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 수 천명을 접촉한 사람과 병에 걸린 사람 단 한 명을 접촉한 사람 중 후자에게 발병한다는 사실이 참 무섭다. 우리가 항상 조심하고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고 할지언정 우리 주변의 가까운 한 사람이라도 코로나에 걸렸다면 마스크를 벗는 순간 우리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고, 누군지도 모를 이가 남기고 간 바이러스가 나나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온전히 ‘혼자’ 일 수 있는가 하면 그것 또한 불가능하다. 한국은 지금 셧다운 상태가 아니고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와중에도(혹은 별로 위험성을 느끼고 있지 못하는 와중에도) 생활을 이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오늘도 어쩔 수 없이(혹은 자의적으로 일 수도) 사기도 어려운 마스크를 낀 채 탈 것에 몸을 맡기곤 한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도 누구를 욕할 수 없다. 집에 있는 것이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정부차원에서의 ‘권고’이지 ‘강제’가 아니다.
더 웃긴 건 사회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하에서는 이런 위급 상황이 될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사회주의화’되어간다는 것이다. 정부가 우리 삶에 개입하면 할수록 우리의 자유는 점점 더 사라지지만 우리는 정부가 만들어 놓은 체계의 보호하에 ‘안전’을 조금 더 보장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라 내리라로 말이 많던 사람들은, 혹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항상 신랄하게 비판하던 누군가는, 즉 정부로부터 더욱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누군가는 코로나 19로 사회 체계에 마비가 오자 왜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는데 돌아다니냐며 사람들을 욕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태어나서 처음 겪는 많은 상황들이 생겼지만 이것 또한 앞으로 일어날 많은 악재들을 버텨내기 위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이전부터 지금까지의 세상 가운데 ‘이전보다 더한’ 것들은 언제나 생겨나고 또 없어졌다. 앞으로도 ‘이전보다 더한’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그게 무엇이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멀리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고 당장 눈 앞의 현실이 한탄스럽지만 더 한탄스러운 것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더욱 자주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는 무섭지만 코로나 19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를 만든 사람들이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가 되는 사람들이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마스크를 낀 채 지하철에 앉아서 가쁜 숨에 헛기침을 하는 나를 혹시나 환자가 아닐까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는 옆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