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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완 May 29. 2020

꼼 데 가르송 (COMME des GARÇONS)

레이 가와쿠보의 아방가르드한 시선

일본의 디자이너이자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이라는 쿠튀르 하우스의 설립자인 레이 가와쿠보는 마르지엘라처럼 기존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항상 그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다.

그녀의 패션은 고전적인 스타일링과는 거리를 두며, 실험적인 실루엣과 지적인 해체주의를 나타낸다. 검정색, 레이어링,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그런지 룩, 미니멀리즘, 안티 패션 등은 그녀의 패션 디자인을 설명해주는 용어들이다.

1. 꼼 데 가르송의 시작

레이 가와쿠보는 1942년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 대학에서 미술과 문학을 전공했다. 1964년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가장 큰 섬유화학 기업인 아사히 카세이의 마케팅 부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녀의 주 업무는 텔레비전과 지면 광고물을 제작하는 일로, 섬유소재에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부여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업무와 관련하여 패션계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그녀는 1967년, 지인의 도움으로 일본 최초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리랜서로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스타일링만으로는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고, 옷을 만들고 싶었던 그녀는 1969년 부인복의 제작, 판매를 통해 디자이너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처음에는 브랜드명 없이 시작했으나, 1973년 마침내 그녀의 회사를 설립했고,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꼼 데 가르송은 프랑스어로 ‘소년들 같은(like boys)’이라는 뜻으로, 특별한 무언가가 담긴 것처럼 보였지만 단지 프랑스어의 어감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채택된 이름이었다.

가와쿠보는 정규 패션 교육이나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 천천히 키워온 미적 감각이 더욱 중요하다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

1975년 감각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와쿠보는 도쿄에서 첫번째 여성복 컬렉션을 발표하고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그녀는 건축가 타카오 가와사키와의 협업을 통해 매장을 상당히 특별하게 꾸몄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꼼 데 가르송 매장을 단지 옷을 사고 파는 장소만이 아닌 그 이상으로 만들고자 했고, 그녀의 옷은 상품으로서의 성격을 극도로 배제한 채, 마치 갤러리의 미술작품이나 인테리어 장식의 일부처럼 디스플레이 되었다. 또한 그녀는 철저하게 본인이 의도한 방향으로 스타일링을 진행하여 카탈로그를 제작했다. 

“나는 단지 나의 옷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액세서리와 패션쇼, 매장, 심지어 나의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단지 바깥으로 나온 미완성의 솔기나 검정색만이 아닌 꼼 데 가르송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라는 그녀의 말은 디자이너로서의 그녀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안티 패션의 서양 패션계 등장

레이 가와쿠보는 파리 진출 이전 이미 꼼 데 가르송과 꼼 데 가르송 옴므를 통해 일본에서 성공적인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40세라는 나이에 파리 진출 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1981년, 꼼 데 가르송은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와 함께 파리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파리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차림새의 파워 드레싱과 ‘글래머러스’를 키워드로 하는 여성적인 이브닝 드레스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러한 유행과는 반대로, 그녀의 첫 파리 패션쇼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안티 패션의 성격을 띤 의상들로 채워졌고, 이는 파리 패션계에 충격과 이슈를 불러왔다.

그녀의 의상은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던 서구 패션 미학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첫번째 파리 컬렉션에서 선보인 옷들은 검정색을 중심으로 온통 무채색을 사용했고, 소박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낡고 거칠고, 너덜너덜한 소재를 사용한 이브닝웨어를 중심으로 선보였다.

납작한 신발에, 회색이나 검정색 계열의, 장식이 거의 없는 튜닉을 입고 끈으로 허리를 묶었으며, 크고 작은 구멍이 잔뜩 뚫린 풀오버를 걸치는 스타일이었다. 옷감은 아무렇게나 구겨지고, 접혀지고, 여러 겹으로 감겨있었다. 목이 들어가는 구멍이나 팔을 끼우는 구멍의 위치는 가슴이나 어깨쪽으로 뒤틀려있었다. 때문에 인체의 형태는 왜곡되고, 비대칭적으로 보여졌다.

컬렉션의 옷들은 매우 엄숙하며, 어딘가 이상하고 어색해 보였다. 꼼 데 가르송의 검정은 샤넬의 검정과는 다르게, 엄격함과 금욕적, 철학적인 메시지를 내포하는 동시에 힘과 권력, 폭력과 슬픔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모델들은 헝클어지고 낡은 듯한 옷차림에,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아무렇게나 립스틱을 바른 모습으로 스타일링 됨으로써,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추(醜)의 미학을 드러냈다.

1982년 FW 컬렉션에서 ‘레이스 스웨터’라 불린 검정색 울 스웨터는 해체주의 패션의 효시로서 가와쿠보의 주요한 디자인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대충 뚫은 듯한 구멍은 기계 니트의 완벽함에 반하였으며, 1937년 파리의 쿠튀리에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tear dress’와 비견되는 포스트-펑크적 무드를 띄었다.

1983년 FW 컬렉션 또한 극단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패션 저널리스트 샐리 브램튼은 가와쿠보의 모델들에 대해 “그들의 메이크업에서 미적 소외감을 느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가와쿠보는 실루엣이 드러나지 않는, 그저 사각형의 직물로 체형보다 크게 재단된 코트 드레스를 선보이며 기존의 관습을 타파하는 컬렉션을 이어갔다. 많은 의상이 비대칭으로 재단되었으며, 라펠과 단추, 소매가 엉뚱한 위치에 배치되어있었다.

마른 것을 넘어서 쇠약해 보이기까지 한 모델들을 검정색과 회색 직물의 누더기처럼 보이는 옷으로 겹겹이 감쌌고, 너덜너덜한 가장자리가 펄럭거리는 코트를 레이어링 했다. 패션쇼는 음악 대신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음만 들렸고, 모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냉정하고 차분한 캣워크를 연출했다.

파리 진출 초기, 비평가들은 ‘전후(戰後)시대의 넝마주이 패션’, ‘일본 여자 노숙자 패션’, ‘종말론적 스타일’, ‘포스트 히로시마(post-Hiroshima) 룩’ 등 불쾌하고 공격적인 시각에서 그녀의 컬렉션을 바라보았다.

또한 패션업계는 꼼 데 가르송 디자인의 효과 및 수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옷들은 기묘하면서도 추상적인 형태를 통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의 주류 패션계와 대중들은 그녀의 넝마주이 스타일을 수용하게 된다.

3. 불완전함의 미학. 무에서 시작하는 패션

가와쿠보의 디자인은 미완성과 뗄레야 뗄 수 없었다. 유행을 타지 않으며, 착용자에게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한다. 그녀에게 있어 꼼 데 가르송의 정해진 이미지는 없었다. 현재의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만, 컬렉션이 끝난 후에는 이전의 콘셉트에 얽매이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가와쿠보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미완성의 헴 라인, 너덜너덜한 솔기, 복잡하게 얽혀 꿰매기, 구겨진 옷감, 비대칭과 비조화, 다양한 찢기, 입는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옷 등을 통해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전통적인 서양의 의복이 몸에 잘 맞으면서, 앞과 뒤가 확실히 구별되는 입체적 형식이었다면, 가와쿠보는 그것을 개념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즉, 가와쿠보의 옷들은 겉으로 봤을 때 평면적인 일본 전통 복식에 뿌리를 두고 대부분 매우 큰 사이즈이거나 사이즈에 구애 받지 않거나 과장되게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비대칭과 불균형, 레이어링 등을 사용함으로써 강조되었다.

그녀는 미리 워싱되어 낡은 느낌의 한 장의 직물을 이용하여 몸을 감싸거나 드레이프(천으로 천을 감싸거나 주름을 만들어 스타일링 하는 법)지게 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형태는 옷을 입는 방법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착용자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상당히 다양한 방법으로 입혀질 수 있게 했다.

또한 가와쿠보는 디자인 초기부터 대량생산된 옷감의 획일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직물을 디자인하고, 수공예 기술, 최신 기술을 이용하여 차별화된 직물을 만들어 사용했다.

가와쿠보는 동일한 소재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한 번 사용한 소재 및 부자재는 결코 다시 쓰지 않았다. 그녀의 고유 디자인으로 여겨지는 구멍 난 스웨터는 밑에 겹쳐 입은 것이 보이도록 함으로써 노출과 은폐가 동시에 일어나는, 새로운 차원을 제시했다.

마치 찢긴 듯 보이는 다양한 크기의 구멍들은 직조기의 나사를 일부러 느슨하게 풀러 얻은, ‘룸 디스트레스트 위브즈' 를 통해 얻어진 결과였다. 이는 기계 니트의 완벽함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불완전의 미학을 내포하고 있었다.

4. 끊임없이 실험하는 혁신가.

1984년 평론가 레오나드 코렌은 가와쿠보를 모든 디자이너들 중에서 가장 빈곤하고, 가장 완고하며 강한 아방가르드적 시각을 가진 디자이너라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그녀는 매 컬렉션마다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으로 이슈가 되었다. 그녀는 "Born to be Innovator"로서, 자신의 독창성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했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자신을 과시하는 이들과는 완전히 반대로, 가와쿠보는 오직 일에만 집중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가와쿠보의 디자인 철학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통해 사람들에게 에너지와 희망, 발전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일년에 4일정도의 휴식만을 가질 정도로 새로운 것을 위한 그녀의 창조적 도전은 쉬지 않고 이루어져 왔으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디렉터 데이언 수직은 레이 가와쿠보를 두고 ‘진정한 모더니스트’라 정의하기도 했다다.

그녀는 2010년 10월 보그 코리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꼼 데 가르송, 곧 그녀 자신을 정의했다.

“나는 비즈니스와 창의적인 디자인 작업을 균형있게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하고 또 조율한다. 나는 옷을 디자인 하는 것뿐 아니라 회사 전체를 디자인한다. 그런 면에서 꼼 데 가르송 자체가 나의 디자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하 생략) 꼼 데 가르송은 레이 가와쿠보 나 자신이다. 나는 강한 것,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항상 이를 추구한다. 그게 꼼 데 가르송의 임무이자 사명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진전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꼼 데 가르송이다.”

레이 가와쿠보는 2008년 ‘ReFUSING FASHION’이라는 전시를 통해 예술과 패션이라는 장르를 초월해 놀라운 반향을 가져온 바 있으며, H&M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비롯, 전세계 곳곳에 기존의 상식과 질서를 파괴한 꼼 데 가르송만의 독특한 매장을 계속해서 오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12년 FW 컬렉션에서 레이 가와쿠보는 “2차원이 미래다”라는 명제에 입각하여, 단순하게 펠트 두 장을 잇고, 자르고, 접어 만든 2차원의 종이 옷 같은 거대한 볼륨의 의상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옷들 역시 이전에는 없던 혁신적인 디자인이었으며,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녀의 실험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5. 꼼 데 가르송의 현재

처음에는 레이 가와쿠보의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로 시작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속 디자이너였던 준야 와타나베, 구리하라 다오, 간류 후미토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하면서 총 4명의 수석 디자이너가 각각 1개 이상의 라인을 맡아 공동 수석 디자이너 브랜드의 형식이 되었다.

가와쿠보를 포함하여 총 5명의 수석 디자이너 각각의 부문들과 악세사리 부문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레이 가와쿠보 부문
Comme des Garçons – 메인 여성의류 라인 (1973)
Comme des Garçons Noir – 짙은 묵색 성향의 여성의류 라인 (1987)
Comme des Garçons Comme Des Garçons – 속칭 꼼꼼/ 웨어러블한 세컨드 의류 라인 (1993)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 메인 남성 의류 라인 (1984)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Sport – 옴므 플러스의 스포티한 세컨드 라인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Evergreen – 옴므 플러스의 세컨드 라인(2005)
Comme des Garçons Homme Deux – 고급 남성 정장 라인 (1987)
Comme des Garçons SHIRT – 셔츠 전문 라인 (1988)
Comme des Garçons SHIRT Girl
Comme des Garçons SHIRT Boy (2015)
Comme des Garçons Girl (S2015)
Play Comme des Garçons – 캐쥬얼 스트리트웨어를 지향하는 유니섹스 캐릭터라인으로 특유의 하트 로고가 트레이드 마크이다.뉴욕의 그래픽 아티스트' 필립 파고스키(Filip Pagowski)에 의하여 디자인되었다.
BLACK Comme des Garçons – 유니섹스와 저가라인을 지향

준야 와타나베 부문
Comme des Garçons Homme – 일본의 남성의류 라인 (1978)
Comme des Garçons Robe de Chambre – 일본의 여성의류 라인
Junya Watanabe Comme des Garçons – 시그네쳐 여성의류 라인 (1992)
Junya Watanabe Comme des Garçons Man – 시그네쳐 남성의류 라인 (2001)
Junya Watanabe Comme des Garçons Man Pink – 여성을 위한 남성 아이템 지향

구리하라 다오 부문
Tao Comme des Garçons – 여성의류 (2005년 런칭, 2011년 봄 폐지)
Tricot Comme des Garçons – 여성 니트의류

후미토 간류 부문
Ganryu Comme des Garçons – 중성적 스트리트 스타일 라벨

니노미야 케이 부문
Noir Kei Ninomiya - 여성의류 (2013), 니노미야는 예전 꼼데가르송의 패턴사였다.

액세서리 부문
Comme des Garçons Edited – 일본 에디트샵 전용 액세서리
Comme des Garçons Pearl – 쥬얼리 (2006)
Comme des Garçons Parfum – (1994)
Comme des Garçons Parfum Parfum
Comme des Garçons Wallet
Speedo Comme des Garçons – 수영복 콜라보 위주 (2005)
Hammerthor Comme des Garçons Shirt – 속옷 콜라보 위주 (2007)
Comme des Garcons dress Florence Italy 2007
2005 s/s '펑크 발레리나(punk ballerina)'
2005 f/w '브로큰 브라이드(broken bride)'
2006 s/s '로스트 엠파이어(lost vampire)'
2006 f/w '페르소나(persona)'
2007 s/s '큐비즘(cubism)'
2007 f/w '큐리오시티(curiosity,호기심)'
2008 s/s '불협화음'
2008 f/w '배드 테이스트(bad taste)'
2009 s/s '투모로우즈 블랙(tommorow black)'
2009 f/w '원더랜드(wonderland)'
2010 s/s '반골정신'
2011 f/w '하프 앤 하프(Half and Half)'
2013 f/w '재단의 무한대(Infinity of Tailoring)'
2014 s/s '몬스터(Monster)'

위에서 언급한 디자이너들과 별개로, 꼼 데 가르송에서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하다가 중단하고, 각자의 브랜드를 설립한 디자이너들도 있는데, 이들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 파세타즘의 오치아이 히로미치 등이 있다.

꼼 데 가르송은 쿠튀르 라인과 함께 캐쥬얼한 디자인들을 선보이는 '꼼 데 가르송 플레이 라인'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해당 라인은 로고 플레이 코디를 할 때 자주 애용되고 있다.

한편, 꼼 데 가르송 2020년 FW 컬레션의 쇼를 두고, 소셜 미디어에서 인종 차별 논란이 일어났었는데, 논란을 불러일으킨 무대에 등장하는 모델들 대다수 백인이었고 모두 콘로우 가발을 착용했다. 흑인 모델도 3명 있었는데 1명만 콘로우 가발을 썼고 나머지 2명은 가발 없이 무대에 섰다. 

이번 꼼 데 가르송 패션쇼의 헤어디자이너 쥘리앵 디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집트 왕자"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관심이나 주의와 인식이 부족했다"와 같은 지적과, "다른 나라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을 때는 그 문화를 아는 사람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와 같은 충고도 잇달았다.

6. 레이 가와쿠보를 통해 배우는 자세

꼼 데 가르송은 언제나 혁신적이고 실험적이며,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 반하여 도전하였고 극복해나아갔다. 이에 따라 안티 패션의 마니아층이 늘어났고, 해체주의, 미니멀리즘 등등 꼼 데 가르송을 상징할만한 개념들이 점차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남들과 다른 노선에서 새로운 변화를, 그것도 성공적인 결과와 함께 만들어내기는 힘들다. 레이 가와쿠보가 추구했던 '끊임없는 도전',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혁신적인 자세', 그리고 이를 통한 발전을 우리 또한 추구한다면 언젠가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누군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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