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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행복합니까?

라라랜드 : 라와 라가 만난 사랑의 하모니

by 정윤식

1. 라와 라의 이야기

라라랜드는 LA의 애칭이기도 하고, 현실과 다른 꿈같은 나라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음악을 전면으로 내세운 뮤지컬 영화가 아닌가? 나는 라라랜드 영화 속에 음악적인 스토리텔링이 있을꺼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계 중 하나인 '라'에 대한 상징이다. 세바스찬 역 라이언 고슬링의 '라'와 미아 역 엠마 스톤의 '라'의 이야기 인 셈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자신 만의 재즈바를 운영하고, 정통 재즈음악을 연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레스토랑에서 고객들이 듣기 좋아하는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파트타임 신세이다. 또한 파티에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입은 채 키보드를 연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바라는 삶은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낮은 '도'의 삶이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재즈음악을 하고 싶을 뿐인데, 밀린 공과금을 내어야 하는 신세이다 보니 생계를 위해서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곧잘 자신의 연주에 취해서 자유롭게 피아노를 치다가 해고당하기도 한다.


이 땅의 수 많은 '라'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라'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낮은 도의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낮은 도'에서 '라'까지 올라오라고 부추긴다. 라이언 고슬링 집에 방문한 누나는 "꿈"을 쫓아 사는 동생에게 "낭만은 부정적이다"라고 말한다. 누나는 낮은 도를 꿈꾸는 '라'에게 현실을 보라고 얘기한다. 낮은 도에서 아둥바둥 라까지 올라온 '라'는 "왜 낭만을 부정적인 것처럼 말해?"라고 토로한다. 그리고 엠마 스톤을 만나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아닌 대중적인 음악을 하게 이른다. '낮은 도'에서 이왕이면 '높은 도'까지 올라가보자.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월드 투어도 하고 그토록 하고 싶어한 아이다호주 보이스(Boise)에도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라'는 '높은 도'의 삶을 살아가지만 항상 '낮은 도'의 삶을 염원한다.


엠마 톰슨은 매번 영화 오디션에 떨어진다. 영화 세트장 커피숍에서 일하는 직원이지만 꿈을 잃지 않는다. 높은 도를 꿈꾸는 '라'로 살아간다. 영화배우가 되어서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쏟아진 커피자국을 지우지 못한 초라한 복장으로 오디션에 가지만 매번 떨어진다. 그녀가 바라는 삶은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높은 '도'의 삶이다. 이 땅의 수 많은 또 다른 '라'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방송국의 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렇게 다들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낮은 도에서 라까지 아둥바둥 올라왔다. 이제 시와 도만 거치면 그토록 원하는 스타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다.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삶이다.


이 땅에는 라이언 고슬링 '라'와 엠마 스톤 '라'가 살아간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하는 낮은 도를 살아가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이 '낮은 도'를 낭만이라고 얘기하고 아둥바둥 '라'로 살라고 한다. 또한 나는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높은 도로 살아가고 싶지만 높은 도로 올라가지 못하고 번번히 떨어지고 만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재즈음악이 '낮은 도'라면 내가 되고 싶은 영화배우는 '높은 도'의 삶이다.


낮은 도라고 낭만적이고 고고한 삶이고, 높은 도라고 허황되고 세속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이 땅에는 수많은 '라'와 '라'가 만난다. 라와 라가 만난 사랑의 하모니, 그 드라마가 바로 '라라랜드'인 것이다. 나는 어떤 '라'인가? 내 삶이 고루한가? 내가 꿈꾸던 삶은 이게 아닌데 내 꿈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꿈꾸는 삶에서 번번히 좌절하는가? 당신의 삶이 어떠하던지 우리는 '라'이다. 낮은 도의 삶이던 높은 도의 삶이던.. 우리 인생은 도레미파솔라시도이다.


2. 라라랜드에 들어가고 싶은 라와 라

영화의 첫 장면은 LA로 들어가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시작된다. 쉴 새 없이 이어져 있는 차량들 속에서 한 여인이 "Another Day of Sun"이란 노래를 부르며 시작한다. 매일 아침 서울랜드로 들어갈려는 간선도로 상황과 비슷하다. 일상이 있는 집은 '라라랜드'와 멀리 떨어져 있다. 매일 아침 꿈과 돈을 찾아서 출근한다. LA로 들어가는 길목에서는 화창한 아침햇살 아래에서 "Another Day of Sun"이란 노래를 부르지만, 서울로 들어가는 간선도로는 해 뜨기 전부터 막히기 시작해서 "Another Day of Moon"이란 제목으로 바꿔야 한다.


저마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공간인 '랜드'로 들어가기 원한다. 하지만 '랜드' 속 도심에 살기 위해서는 비싼 집값, 월세,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마다 꽉막힌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낸다. 꽉 막히는 도로에서 엠마 톤슨은 친환경 프리우스를 타고 '랜드'에 입성하기 위해서 오디션 대사를 연습하고, 라이언 고슬링은 구형 컨버터블 차 속에서 오래된 카세트를 Rewind하거나 라디오 채널을 자꾸 넘긴다. '랜드'는 성공의 상징이고, '랜드'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에 언제나 고속도로는 꽉 막힌다.


타워팰리스, 반포자이, 목동 하이페리온에 살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남양주, 구리, 의정부, 김포 등 서울랜드 위성도시에서 동서남북으로 북적이며 서울로 들어온다. 들어오는 길에 수많은 '라'와 '라'는 성공을 위해서 영어단어를 외우기도 하고, 공무원 시험 문제를 풀기도 한다. 또한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스마트폰 게임, 동영상도 보기도 한다.


'랜드'에 들어가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난 무엇을 하고 있나? '랜드'에 가기 위한 오디션 대사를 외우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음악을 듣기 위해서 라디오 채널을 옮기고 있는가? 꽉막히는 고속도로에서 '라'와 '라'는 만났다. 엠마 톰슨이 늦게 출발하자, 뒤에서 클락션을 울리며 라이언 고슬링이 옆으로 추월하며, 손으로 욕을 하며 지나간다. 꽉 막힌 도로에서 무슨 짓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고속도로에서 욕하며 지나가던 두 사람은 리알토 극장에서 두 손을 마주 잡는다. 엠마 톤슨은 지루한 남자친구와의 더블데이트에서 자리를 박차고, 리알토 극장으로 향한다. 그 극장에서 두 사람은 마침내 두 손을 잡고 사랑을 시작한다. 리알토하면 생각나는 것이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이다. 리알토 다리는 한 쪽 뚝과 다른 편 뚝을 연결해주는 유명한 다리이다. 바로 리알토 극장에서 너무나도 다른 꿈을 꾸고, 너무나도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두 사람이 '연결'된다.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사는 '라'와 '라'였지만 리알토 극장에서 그 둘은 연결된다.


리알토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가 끊겨버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영화 마지막 장면의 장소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한다. 그 곳에서 땅인 '랜드'를 박차고 올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별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과학의 총아인 천문대에서 그들은 별들이 반짝이는 구름 위를 지나 하늘로 떠올라 거기서 멋있는 춤을 춘다. 비록 우리는 이 땅인 '랜드'에 발 붙여 살지만, 그 발을 한 발 떼어서 하늘을 날아 오르고 싶어한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왈츠 춤을 춘 것 처럼 말이다.


'라라랜드'는 서로 다른 꿈을 가진 두 사람이 '랜드'에서 연결되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랜드'에 향하는 라이언 고슬링은 어느 식당에서 피아노 알바로 일하고, '랜드'로 향하는 엠마 톰슨은 영화 세트장 커피샵 카운터 알바로 일한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또 다른 '랜드'는 리알토 극장이다. 라라랜드는 우리가 정말 원했던 배우의 꿈, 여행의 꿈, 건물주가 되는 꿈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주보며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과 치맥하는 시간이 '라라랜드'임을 알려준다. 자! 이제 우리도 미아처럼 자리를 막차고 '리알토 극장'으로 달려가자. 그리고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서 왈츠 춤을 춰보자.


3.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

미아는 파티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맘에 들지 않은 남자를 떨쳐낼려고 세바스찬을 애타게 부른다. 두 사람은 가로등 불켜진 어느 산능선에 올라 탭댄스를 추며 "A Lovely Night"란 노래를 부르며 밀당을 한다. 세바스찬은 '너는 나의 이상향이 아니다.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 이라 노래한다. 이에 질세라 미아는 '폴리에스테르 정장을 입은 당신은 귀엽긴 하지만 너한테 빠진게 아니다. 자기는 별로 감흥이 없다고 없다'고 말하고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라고 응수한다. 사랑에 빠진 다른 연인에게는 저녁 노을이 지는 낭만적인 밤일지 모르지만, 아직 사랑에 빠지지 않은 두 사람에게는 'A lovely night'도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에 불과하다.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해서, 봄, 여름, 가을로 이어진다. 겨울은 두 사람이 서로의 꿈에 닿지 못한 채 좌절하기도 하고 조롱받기도 한다. 봄은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나서 밀당을 한다. 리알토 극장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뜨거운 여름을 보낸다. 세바스찬은 자신이 원하는 낮은 도의 음악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높은 도의 음악을 연주하고, 미아는 미아대로 자신만의 연극 시나리오를 쓰며 리허설 준비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작 사랑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사랑하는 맘이 떨어지는(Fall) 가을을 지내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앨범 자킷 사진촬영 때문에 미아의 초연에도 가지 못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바쁜 나날 가운데 점점 멀어진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세바스찬의 결정과 미아의 결정이 대비된다. 미아는 예전 남자친구와의 더블데이트에서 자리를 박차고 세바스찬과의 약속을 지켜려 리알토 극장으로 향하지만 세바스찬은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앨범사진을 찍는 그 시간, 그 자리를 박차지 못하고 미아의 연극이 끝나서야 리알토 극장에 도착한다. 계속 미안하다, 다음에 잘할께라고 말하지만 미아는 전부 다 끝났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자리를 벗어서 네바다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간다. 그 날 밤은 진실로 'A lovely nigth'이 되었어야 하는데,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세바스찬과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초연에 대한 실망으로 상심한 미아에게는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이 되었다.


그 후에 두 사람은 떨어져 지내고, 세바스찬은 한 통의 오디션 전화를 받고 미아를 찾으러 가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오디션을 보고, 다시 그리피스 천문대에 가서 사랑의 약속을 한다. 막상 낮에 올라오니 그렇게 멋진 곳은 아니라는 말을 함께 건낸다.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이 그 밤엔 정말 멋졌는데, 이제 두 사람에게 겨울이 찾아온다. 그 겨울은 다음 해 겨울이 아니라 5년 후 겨울이다.


관객들은 두 사람이 5년 후에도 함께 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지만, 5년 후 겨울에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산다 그렇게 영화는 이어지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을 얘기한다. 한 사람은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꿈을 이뤘고, 한 사람은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이뤘다. 우리는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나 영원한 동행이라는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다가 헤어지면 그 사람과의 기억과 사랑이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사랑의 완성은 사랑 그 자체다. 그 날 저녁 밀당의 기억도, 그 날 저녁 헤어짐의 아픔도 사랑이다.


두 사람은 겨울, 봄, 여름, 가을, 5년 후 겨울을 겪는다. 하지만 세바스찬과 미아에게 소중한 건..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바빠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지자, 세바스찬은 깜짝 파티를 하고, 요리도 해서 미아의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순간의 감동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하는 시간이다. 안정된 밴드에 들어가서 안정된 삶을 꿈꾸지만, 결국엔 성공한 뮤지션으로 살아가면서 미아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사랑의 완성은 먼 훗날 영원히 함께하는 5년 후 겨울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지금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면 지금 함께 해야 한다.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이 아니라 'A lovely night'가 되어야 한다.


4. 세바스찬의 라라랜드, 감독의 라라랜드 그리고 미아의 라라랜드

라라랜드의 백미 중에 하나는 미아가 남편과 함께 꽉 막힌 도로에서 벗어나 어느 뒷골목에 주차하고 어느 재즈바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파란색 화살표 네온사인이 가르키는 지하에 SEB'S라는 간판을 보고 미아는 망치로 얻어 맞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토록 세바스찬이 꿈꿔 왔던 재즈바에 온 것이다. 거기에서 폴리에스테르 정장이 아닌 울 양복을 입고 사회를 보고 있는 세바스찬을 본다. 세바스찬은 연주자를 소개한 후 "Welcom to SEB's"라고 얘기한다. "SEB's"은 "Sebastian's"의 약자로 미아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기도 하다.


세바스찬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자신만의 라라랜드인 "Epilogue"를 연주한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나타난 현실과는 정반대의 장면들이 계속 나타난다.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가졌던 그 레스토랑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가는 장면은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세바스찬의 친구가 밴드를 같이 하자고 권할 때에도 거절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고집한다. 미아의 초연은 성공적이었고, 그 자리에 세바스찬도 관객석에 앉아 박수로 환호한다. 세바스찬은 그 때 그렇게 했었더라면 좋았을 순간들이 "Epilogue" 에 담았다. 결국 두 사람은 빠리에 가고, 세바스찬은 빠리에서 재즈바를 운영하게 된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자신이 바랬던 선택의 결말은 마침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영원히 함께 하고픈 자신의 소망이 "Epilogue"이다.


하지만 무대에 불이 켜지고 세바스찬의 "Epilogue"는 그렇게 끝이 난다. 한 곡을 더 듣자는 미아 남편의 제의에 미아는 가자고 얘기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세바스찬과 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에게 웃음을 짓는다. 마지막으로 세바스찬은 원투쓰리포를 말하며 다시 피아노를 친다. 그리고 이어서 "The End"라는 자막도 나오고 영화는 끝난다. 세바스찬이 꿈꿔왔던 라라랜드는 "에필로그"로 끝이 나고, 감독이 꿈꾸는 라라랜드는 "The End"로 끝이 난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관객은 세바스찬의 에필로그가 영화의 결말이었으면 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라라랜드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감독은 두 사람이 함께 하지 않은 영화의 "The End"를 보여준다. 설령 우리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도 못한 채 눈인사로 헤어지라도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감독이 원하는 결말은 설령 지금 함께 하지 않더라도, 예전에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위로하는 듯 하다.


이제 이 영화의 숨은 최고의 명장면이다. 한국 관객은 영화를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면 바로 자리를 뜬다. 영화 자막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 바로 미아가 노래하는 "City of Stars"가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미아는 피아노 반주가 아니라 기타 반주로 노래가 아닌 허밍을 한다. 미아 옆에는 더이상 피아노를 쳐주는 세바스찬이 없다. 그래서 기타의 단 선율에 맞춰서 허밍으로 노래한다. 그토록 사랑할 때는 가사 한 줄 한 줄이 시와 같았던 그 노래가 이제는 세월이 흘러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허밍으로 부른다. 미아의 라라랜드는 이제 곁에는 피아노 반주를 해주는 세바스찬도 없으며, 둘이서 행복하게 불렀던 "City of Stars" 노래 가사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오르골의 단 선율만 이어서 나올 뿐이다.


세바스찬, 감독 그리고 미아의 라라랜드는 이렇게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끝이 난다. 당신의 라라랜드는 그 누구의 것인가? 세바스찬, 감독, 미아 중에 그 누구의 것이던 괜찮다. 다시 한번 묻는다. '라'는 행복합니까? 우리가 꿈꾸는 라라랜드는 사라져버린 에덴동산이나 갈 수 없는 네버랜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하고, 서로에게 웃으며 눈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정도라면 우리는 지금 라라랜드에 살고 있는 셈이다.


5. 세바스찬의 구심력과 미아의 원심력

세바스찬은 고집스럽게도 정통 재즈를 추구한다. 재즈 뮤지션 호기 카마이클의 옛 의자를 소장하고 있고, 집에서 피아노 연습할 때는 오래된 LP를 튼다. 30년은 훨씬 지난 중고 컨버터블 차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감상한다. 집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짐들로 가득 차 있고, 자신만의 재즈바를 운영하게 되면 그 짐을 다 풀어서 인테리어 장식품으로 쓸 예정이다. 세바스찬에게는 아주 오래된 재즈에 대한 열정이 인생의 구심력이다. 빙글빙글 원운동을 하는 일상의 생활에서도 자신의 정체성 중심은 재즈이다. 재즈에 대한 사랑이 그에게 구심력이다.


미아는 새로움에 항상 열려있다. 아이폰을 쓰고, 친환경 프리우스를 타고 다닌다. 그녀는 멋진 여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배역을 맡아서 살아가는 꿈을 꾼다. 새로 산 멋진 옷을 입고, 새로운 파티에 초대되거나 찾아 간다. 그녀는 배우가 되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은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이 자신의 인생에 원심력이다. 네바다 주 Boulder City 촌구석에서 자란 그녀의 원점으로부터 떠나 파리에 가서 영화를 찍고 싶어 한다.


세바스찬은 미아와 헤어지고 자신만의 재즈바를 오픈한다. 거기에 호기 카마이클의 옛 의자도 전시하고, 집에 있던 각종 레코드, 신문 스크랩을 장식품으로 쓴다. 재즈 연주자를 무대 위에 세우고, 자신도 피아노를 치며 재즈음악을 연주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말한다. "Welcome to SEB'S"라고 말이다. 그는 자신만의 공간을 드디어 만들고, 그 원점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음악을 자신이 운영하는 재즈바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미아는 자신의 얘기가 아닌 이모의 얘기로 연극 시나리오를 쓰고, 리알토 극장에서 초연을 한다. 무참하게 실패하고 다시 네바다 Boulder City로 돌아간다. 그 연극의 포스터는 "So long Boulder City(잘가~, Boulder City"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네바다 Boulder City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마침내 오디션에 합격해서 파리에 가서 그녀의 첫 번째 영화를 찍는다. 그녀는 Boulder City라는 원점을 떠나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녀는 "So long Boulder City"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는 삶을 산다.


영화 마지막에 미아의 남편이 한곡 더 듣고 가자고 제안하자, 미아는 "시간이 없다"며 자리를 뜬다. 세바스찬에게 어포스트로피 ' 는 반박자 음표인 8분 음표였다. 자신의 원하는 음악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주고, 8분 음표의 사랑을 알게 해 준 미아에게 마지막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바스찬은 "Welcome to SEB's(오라, SEB's)라고 말하고 미아는 "So long Boulder City(잘가~, Boulder City)"라고 말한다. 한 사람은 오라고 말하고, 한 사람은 잘가라고 말한다. 세바스찬의 구심력과 미아의 원심력이 만났던 라라랜드.. 이젠 안녕!!


에필로그 : Farewell, La La Land (Los Angels : 방황하는 천사들, 하늘의 별에 닿다.)

우리가 LA(엘에이)라고 읽기도 하고 로스엔젤러스라고 얘기하는 도시를 정확히 부르면 "로스 엔절러스"가 된다. 스페인어로 Los는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관사이고, Angeles는 Angels(천사들)이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로스엔젤러스가 아니라 로스 엔절러스가 되는 셈이다. 라라랜드는 꿈을 찾아 방황하는 천사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수많은 천사들(Los Angeles)이 하늘의 별에 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라라랜드에서 나만의 숨겨진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세바스찬이 미아가 엄마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는 장면이다. 엄마는 미아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고정적인 수입을 얻는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듣는 내가 울컥했다. 고정적인 수입이라 함은 안정적인 정규직 생활이 아니었던가? 세바스찬은 자신의 꿈을 쫓아서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치는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고정적인 수입원을 얻기 위해서 대중적인 음악밴드 활동으로 마침내 고정수입을 얻게 된다.


전화 통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세바스찬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에 세바스찬이 살고 있는 집 천장을 비춰준다. 얼룩져 있는 천장을 한동안 화면으로 비춰주고, 미아와 엄마의 통화는 계속 이어간다. 세바스찬의 시선을 카메라에 담아 얼룩져 있는 하얀 천장을 보여주면서,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내 “꿈”은 잠시 접어두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여자친구의 바램을 이루기 위해서 세바스찬은 대중의 환호를 받는 스타가 되기로 한다.


영화에서는 상징적인 천장이 3개 등장한다. 세바스찬의 허름한 집의 얼룩진 천장,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형상화한 천체박물관 천장, 마지막으로 진짜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의 천장이다. 3가지 공간은 로스 엔젤러스에 살고 있는 방황하는 천사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트타임으로 피아노치는 낭만적인 뮤지션,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연기지망생이 얼룩진 천장아래 살아간다. 피아노 앞에서 서로 웃어대며 노래를 부른다. 꿈과 사랑으로 먹고 살아도 행복했던 그 시절을 보여준다. 낮은 얼룩진 천장 보다 훨씬 높이 천장을 가진 천체박물관에서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으로 진짜 하늘의 천장 아래 두 사람은 City of Stars를 부르기도 한다.


인생이 대단한 듯 보여도, 우리는 각자의 천장 아래 살아간다. 싸구려 천장 도배지 아래에 형광등이 비치는 원룸에서, 또는 휘황찬 상들리에가 걸려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마지막으로 서로 각자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 얼룩진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세바스찬이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해온다. 함께 노래 부르고, 꿈을 이야기 하고, 또한 상대방의 꿈을 응원하는 삶이라면 얼룩진 천장 아래라도 행복했다. 그렇게 수많은 천사들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뉴욕, 도쿄, 로스 엔젤러스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제 정말 Farewell, La La Land.. 오늘도 나 또한 하늘에 닿아본다. 얼룩진 천장 아래, 천체 박물관 천장 아래 그리고 진짜 하늘 아래서 꿈을 찾아 방황한다. 그리고 끝없이 하늘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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