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만나본 곰 하나와 곰 가족
캐나다 여행 다녀온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여행에세이는 록키산맥에 진입하지도 못했습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미루는 탓에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은 걱정도 앞섭니다. 지난 주에는 브런치에서 무비패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예전에 쓴 라라랜드 시리즈를 다시 고쳐 써서 “라”는 행복합니까?라는 제목으로 응모했더니, 덜컥 당첨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니깐 8.22일 수요일 20:00시에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까지 영화를 보러 가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당첨된 것으로 보아 경쟁률이 매우 낮았던 것으로 판단은 되나, 총 10번의 시사회에 제가 얼마나 참석할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이번 첫 시사회는 불참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나중에 영화 개봉이 되면 제 돈 주고 한 번 보고 영화감상문을 남겨볼까 합니다. 오늘은 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서치(Search)”하는 기분으로 캐나다 여행기 3편을 시작합니다.
제목 : 블루리버, 파란 강이 굽이치며 흐른다. (뜻하지 않게 만나본 곰 한마리, 곰 가족)
밴쿠버에서 재스퍼까지 약 800킬로 걸리는데, 시차적응을 위해서 하루만에 재스퍼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중간에 블루리버라는 소도시에서 1박 하기로 했다. 보통 캐나디언 록키는 보통 밴프를 중심으로 레이크 루이즈와 컬럼비아 대빙하 설상차 투어까지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우리 가족은 한산한 캐나다 5번 도로를 타고 쭉 올라갔다. 밴쿠버에서 출발해서 오후 2시가 쯤 되어서야 블루리버에 도착했다. 블루리버(Blue River)는 말 그대로 록키산맥에서 녹아서 흘러나온 빙하의 물이 모여서 파란 강이 굽이치며 흐르는 곳이다.
숙소인 Glacier Mountain Lodge에 2시 정도에 도착했는데, 아직 Check-in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근처에 있는 River Safari Tour를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20달러 할인쿠폰을 건내주며, 운이 좋으면 곰을 볼 수 있을꺼란 말도 덧붙였다. 숙소에서 3분 정도 거리에 머드 호수(Mud Lake) 아래에 있는 사파리 투어장에 도착했다. 블루리버 사파리 투어는 한국 사람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어서, 대부분 유럽에서 온 관광객이 대다수였다. 어른 3명, 어린이 2명이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호수를 투어하는 데 400달러(약 34만원)이어서 비싼 편이었다. 아이들이 곰을 볼 수 있다는 얘기와 딱히 저녁시간까지 할이 없는 탓에 비싼 표를 사고야 말았다.
그래도 지역에서는 인기가 높은 모양인지, 티켓을 사고 나서도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뜨거운 캐나다 여름 햇볕을 맞으며 나무 의자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며 멍때리기로 작정했다. 6시간 넘게 운전해서인지 잠이 순식간에 쏟아져서,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망중한을 즐겼다. 드디어 15:30분 우리가 탈 배가 도착했다. 대략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카누같은 배를 2개 연결해서 작은 모터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 앉으니, 가이드가 안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다. 어디서 왔냐는 가이드의 질문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한국” 이렇게 총 5개국에서 온 가족들이 함께 모였다. 주로 서유럽쪽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캐나다 록키 여행을 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네덜란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알프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인데, 이 곳 록키까지 여행오는 걸 보면 록키가 알프스와는 다른 매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은 모터로 움직이는 배가 서서히 출발을 하자,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옆에서 아이들이 나보고 무슨 얘기하냐고 물어보는 통에 처음에는 통역을 해주다가, 뭐 비슷한 얘기가 줄곧 이어져서 이내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다. 애들아! 사실은 나도 다 못 알아들었다.!!) 푸른 호수에 그림같이 떠 있는 섬 하나와 그 뒤에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 설산들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이 멀리 떨어진 설산들이 그토록 청명하게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제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어도 내 눈에 담긴 풍경을 담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깨알같은 장난이다. 큰 놈은 호수물을 먹겠다며, 연신 손으로 호숫물을 주어담아서 먹고 있다. 애들아, 그렇게 계속 마시면 배탈날 수도 있다 라고 말을 해두곤, 나도 얼른 호수물을 먹어봤다. 그냥 밍밍한 물 맛이다. 머드 호수를 시작으로 해서 왠만한 호수물은 다 마셔봤지만, 그냥 밍밍한 물 맛이었다. 속도가 느린 탓에 배는 미끄러지듯이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난 따사로운 햇볕에 취해서 늘어진 나무늘보가 되어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달리다가, 작은 선착장에 도착을 했다. 가이드는 근처에 폭포가 있는데 폭포 구경하고 또 다른 체험을 한다고 했다. 산 기슭을 1~2분 정도 올라가자, 산 위에서 녹아내린 빙하 물이 폭포가 되어서 물안개를 뿜어내며 호수로 내려오고 있었다. 시원한 물분무를 맞으며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그 새 두 초딩은 분무된 물방울을 입에 넣으며 계속 물을 먹고 있다. 우리 애들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주변에 머리가 노란 꼬마 애들도 똑같이 혀로 물을 낼름 낼름 먹고 있었다. 애들이 노는 모양은 만국 공통인 모양이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배를 바꿔 탄다고 한다. 그런데, 스위스 가족(4명), 우리 가족(5명)에게 좀 더 큰 모터보트에 타라고 하고, 나머지는 좀 기다렸다 다른 체험을 한다고 얘기를 했다.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 알 수 는 없으나, 딱히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그냥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모터보트에 옮겨탔다. 그러더니, 모터보트는 시속 40킬로 이상으로 쾌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큰 호수를 지나서 너비 10m 내외의 강줄기를 따라서 상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십여분 하다가 갑자기 조용히 배를 멈추었다. 짜짠!!! 그토록 보고 싶었던 블랙베어(흑곰) 한 마리가 주변에서 야생 베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곰을 쳐다보고 연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이드 얘기로는 오늘 투어 한 사람들 가운데 30% 정도만 곰을 보았다고 한다. 너네들은 정말 럭키하다는 얘기도 꼭 덧붙였다. 자연의 속살을 10m 간격에서 쳐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동물원이 아닌 야생의 현장에서 곰을 직접 보는 호사를 누려보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곰의 식사장면(?)을 지켜보다가, 배는 다시 쾌속으로 드래프트를 하면 말 그대로 강을 탐험했다. 캐나다 록키 여행을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에 들만한 경험이었다. 별 기대없이 참가한 사파리 투어는 우리의 기대에 120% 만족시키면서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애들도 시차, 피곤함도 잊은 채로 들떠 있었다. 거의 6시가 다 되었는데, 아직도 해는 중천 어딘가에 있다. 저녁 11시 쯤 되어야 깜깜해지는 북미의 여름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시커먼 물체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엄마 곰 1마리에 애기 곰 3마리였다. 400달러를 주고 곰 한마리를 보았는데, 여기서 공짜로 곰 4마리를 길 바닥에서 보게될 줄이야!! 아이들도 겁이 난 모양인지 자동차 문이 잠겼는지 물어봤다. 물론 자동차 문은 잠겨있었다. 우리가 기대치 않았는데, 곰 가족 4명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아빠 곰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빠이다 보니, 아빠 곰에 대한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빠 곰은 엄마 곰, 애기 곰 3마리가 산책을 나가는 동안 자신의 일터에서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댓가를 치루고서야 체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 중에 30% 만 곰을 볼 뿐이다. 울릉도에 가서, 독도에 선착할 수 있는 사람도 대략 30%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런 행운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30% 이던, 70% 이던..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때론 아무 댓가 없이 곰 4마리를 볼 수 도 있다. 애들도 옆에서 신이 나서 난리다. 초딩끼리 “와... 돈 주고 한 마리 봤는데, 돈 안주고 네 마리를 보다니.. 돈 아깝다.. 그지?” 라며 둘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너네들도 너네들 수준에서 여행을 즐기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난 따스한 햇볓에 기대어 꾸벅꾸벅 조는 경험이 좋았고, 애들은 호수물, 폭포물을 입을 낼름낼름 먹는 경험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곰 네 마리를 보는 행운까지 움켜쥐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호텔직원이 대뜸 묻는다. “곰 봤냐”라고 말이다. 애들이 신나서 “5 Bears”라고 얘기했다. 직원말이 정말 럭키하다는 얘기를 계속 했다. 한 마리도 못 보는 사람도 많은데 5마리 봤다고 하니깐 놀라는 눈치이다. 호텔에 올라와서 짐을 푼 다음에, 근처에 Saddle Mountain 레스토랑으로 갔다. 거기서 알버타 AAA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 왜 알버터 소고기가 맛있다고 하는지 입으로 느꼈다. 눈 앞에는 빙하에 쌓은 설산들이 펼쳐져 있었고, 가벼운 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숙소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곰 한마리, 곰 두마리, 곰 세마리, 곰 네마리, 곰 다섯마리까지 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오늘은 곰을 다섯 마리나 본 매우 럭키한 날이다.. 이번 여행은 첫 시작부터 좋다..
P.S 다음 편부터는 최대한 빨리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