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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28. 2015

나의 3대 음악철황 #3

이승철

3. 이승철 (1966.12.5 ~ )


1편. 승철, 달은 해가 꾸는 꿈 (부제 :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1992년 2월 29일, 박찬욱 감독의 첫 데뷔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을 개봉한다. 지금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필로그래피를 만든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유명한 아이돌 가수 이승철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 안전한 선택을 한 신인감독 박찬욱이었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센스만큼은 만점이다. 영화 제목과 무척이나 어울리는 개봉일을 정했다. 4년 마다 돌아오는 윤년인 1992년 2월 29일에 개봉일을 선택했다. 제목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다. 이승철은 생애 최초의 데뷔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를 찍었다.

 

저녁노을을 지고, "서쪽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나도 이승철의 "서쪽하늘"처럼 그렇게 바라본 적이 있다. 어둠이 내리고 별이  하나둘씩 떠오를 때 서쪽 하늘에 유달리 빛나는 별 두개가 있다. 더 밝은 쪽이 금성이고, 덜 밝은 쪽이 목성이다. 그리고 그 두 별보다 더 크게 떠 있는 "달"이 있다. 


국민할매 김태원을 빼놓고, 이승철을 이야기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달은 해가 꾸는 꿈 이듯, 이승철은 김태원이 꾸는 꿈이었다.  부활은 김태원이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태양계였다. 김태원이 작곡하고 기타를 치고 이끌었던 밴드였다. 하지만 김태원은 태양처럼 너무 밝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대다수 대중들은 너무 강렬한 태양 같은 부활의 음악을 즐길 수 없었다. 일부 로큰롤이라는 선글라스를 낄 수 있었던 일부 사람들이 부활, 백두산, 시나위, 들국화와 같은 음악을 즐길 수 있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부활의 "마지막 콘서트"를 들어본 적 있는가? 김태원은 기타의 디스토션을 가미하고 음산하고 괴이한 보이스로 노래한다. 그러나 이승철은 피아노 하나 옆에 두고 담담히 노래한다. 김태원의 자신의 보이스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색깔이 강했고, 목소리의 호소력이 약했다. 하지만 노래를 이렇게 잘할 수 도 있다고 보여줄 수 있는 이승철이 있었다. 부활 데뷔 초기 이승철은 담담히 태양인 김태원의 "달" 역할을 묵묵히 담당했다.


그러다가 이승철은 "서쪽하늘"을 쳐다보았다. 목성은 금성보다 엄청 크다. 정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목성이 수박이라면 금성은 콩알만 하다. 하지만 목성보다 금성이 훨씬 더 밝게 빛난다. 그 이유는 금성이 목성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이승철은 대중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다. 부활의 김태원은 음악적으로는 큰 태양이고 목성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대중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밝았고, 거리가 멀었다. 이승철은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은 달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밤새 볼 수 있는 달이 되고 싶었다. 목성보다 훨씬 작지만 지구(대중)와 가까이 있는 금성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승철은 록밴드의 리드보컬이 아니라 대중가수가 되기로 한다. 1989년 11월 1일, 이승철은 1집을 발매한다. 이승철 1집은 대중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던 노래들로 채워졌다. 록밴드의 화려한 기타 연주가 없이도, 대중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의 노래들로 채웠다. 그리고 포켓가요책을 사서 기타 치면서 노래를 하고 싶어 하는 많은 대중을 위해서 두 곡의 MR을 채워준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잠도 오지 않는 밤에"을 넣어준다.


그 시절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그 테이프 MR 반주를 틀어놓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 시절은 이제 막 노래방이 여기 저기서 생기기 시작했다. 중고등학생들은 학생주임 선생님을 피해 다니면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근데 이승철 1집에 두 곡이나 MR곡을 넣어줬다. 정말 그 시절에는 단비와 같은 앨범 구성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에 이승철 1집은 어디서나 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우리만의 "노래방"이었던 셈이다. 


이승철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노래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대중을 위한 가수가 되고 싶었다.  대단한 작곡가 김태원의 목소리 악기로서의 이승철이 아닌, 목소리와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은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고 했다. 감독은 배우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김태원은 이승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달은 해가 비추는대로만 빛을 내는 존재만은 아니다. 목성은 더 크지만 지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금성은 지구보다도 작지만 지구와 가까이 있다. 주피터는 신 중에 왕이지만, 비너스는 우리 곁에 있는 여신이다. 


이승철은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고 말한다. 1집의 첫 곡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부른다. 그 곡은 바로 달이 해에게 말하는 노래이다. 이승철이 김태원에게 말하는 노래이다. 이승철은 비록 부활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지만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라고 노래한다. 그렇게 이승철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달은 해가 꾸는 꿈"이지만, 달의 노래를 들어보자. 해보다 덜 빛나고, 목성보다 훨씬 작지만 우리는 달과 금성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


2편. 희야, 날 좀 바라봐 (부제 : Part2의 비밀)


이승철 1집의 3번째 트랙, 이승철 1집 Part 2의 마지막 트랙, 부활 1집의 첫번째 트랙곡은 "희야"이다. 희야라는 특이하게도 이승철 한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3번이나 앨범에 실린 곡이다. 그 곡이 그렇게 대단한 곡인가? 아니면 그 곡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을 답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이승철은 부활에서 탈퇴하고 1집을 발표하게 된다. 그런데 1집을 발매하면서 Part 2도 함께 발매한다. 그 당시에는 카세트 테이프와 CD로만 발매되던 시기여서 대개의 경우 3-5분 정도의 곡을 10곡 내외로 발표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대중에게 처음으로 알려지는 신인가수 이승철은 한꺼번에 두 개의 앨범을 1집이라는 형식으로 발매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승철 1집은 부활과 결별한 대중가수 이승철의 앨범인 셈이고 이승철 1집  Part 2는 부활에서 노래한 록커로서의 이승철의 앨범인 셈이다. 앨범의 곡 구성을 살펴보면 1집의 경우는 세 번째 곡 희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활의 김태원으로부터 독립한 곡 구성인셈이다. 음악인으로서 이승철이 노래하고 싶었던 노래였던 것이다. 그리고 Part 2의 곡은 "마지막 콘서트, 비와 당신의 이야기, 회상, 희야"의 곡은 모두 부활의 김태원의 곡이었다.


1집은 부활에서 탈퇴했지만 김태원 형에게 미안하면서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떠나야 할 땐" "마지막 나의 모습" 등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떠나야 할 땐 울지 말고 웃으면서 가는거야"라고 자신과 김태원 형에게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Part 2에서는 태원이 형과 함께 노래를 불렀던 부활 시절의 자신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앨범은 부활 2집이 아니라 자신의 1집의 Part 2가 되어야 했기에 부활 그룹에서 본인이 노래하고 싶었던 스타일로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회상 III를 마지막 콘서트라고 이름을 고쳤고 회상 I을 그냥 회상이라고 불렀다. 부활 2집에 나오는 회상 I, II, III는 태원이 형이 생각하는 옛 과거의 추억이었고, 그 자신은 회상I, III를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앨범 Part2에서는 마지막 콘서트와 회상으로 고쳐 부른다. 소설이나 음악은 태어나는 순간 작가나 작곡가와는 다르게 또 다른 삶을 산다고 한다. 태원이 형이 회상 I,II,III를 작곡하고 연주했지만, 이승철도 자신이 애착 있게 부른 회상I, III을 마지막 콘서트, 회상으로 불렀다.


회상III와 마지막 콘서트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재미있는 곡 구성이 있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처럼 전자에는 있는데 후자에는 없는 파트가 있다. "밖으로 나가 버리고, 노랜 끝이 났지만... 이 슬픈 노래"까지는 둘 다 똑같다. 하지만 김태원은 "이 노래가 끝이 나면 많은 사람 환호 뒤로 한채 소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안아주리"라는 부분을 더 부른다. 하지만 이승철은 그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밖으로 나가 버리고.. 이 슬픈 노래"로 마무리 짓는다.


아마도 김태원에게는 그 소녀와 화해하고 다시 만나는 "회상"이 있었던 반면, 이승철은 이 노래에서 화해하는 파트가 없다면 노래가 더욱더 비극적이라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승철은 기승전결로 마무리 짓지 핞고 기승전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제목도 "회상III"에서 "마지막 콘서트"로 바꾼다. 이승철에게 "마지막 콘서트"는 태원이 형의 부활과 마지막으로 하는 콘서트인 셈이다. 이런 설명은 직접 노래를 비교하면서 해야 하는데 글로써만 설명할려니 너무 아쉽고 답답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이승철 1집의 세 번째 곡 "희야"를 들어보면 원곡의 "희야"보다 노래 구성도 심플하고 심지어 노래키도 낮다. 왜냐하면 이승철 1집은 대중가수 이승철이 부른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원키의 희야는 대중들이 따라 부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승철은 대중으로 배려해서 원키에서 낮춰서 부른다. 그래서 대중들은 희야라는 노래를 드디어 노래방에서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승철 1집 Part2의 희야는 오리지널 곡의 원키로 부른다. Part 2는 부활의 이승철이다. 희야의 원키를 시원스럽게 불러댄다. 카세트 테이프를 들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이 첫 번째와 마지막에 있으면 정말 듣기 편하다. 1번째 곡은 A면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 곡을 듣다가, B면을 뒤집어 듣거나 리버스 플레이 버튼을 부르면 마지막 곡이 나온다. 이승철은 Part2에서 1번째는 마지막 콘서트로, 마지막은 희야로 채운다. 노래 선곡도 실력이란 말이 있는데, 그 시절에는 노래 순서도 실력이었던 시절이었다.


"희야, 날 좀 바라봐, 나는 너를 좋아했자너, 너는 비록 싫다고 말해도 나는 너의 마음 알아"라고 말하는 곡이다. 김태원의 희야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였다면, 이승철 Part 2에 나오는 희야는 바로 김태원 형인 셈이다. 대구 사투리로 "희야"는 "형아"이런 말이다. 주변에 대구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희야"가 "형"이냐고. 그럼 100% 알게 될 것이다.


이승철은 Part2을 발매하며, "희야"인 김태원 형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형처럼 나도 나의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날 좀 바라봐"달라고 말한다. 비록 형과의 "마지막 콘서트"는 끝나고 독립은 했지만 내 음악을 들어보고 응원해달라고 한다. "희야, 날 좀 바라봐"라고 절규하면서 부르는 이승철 Part2는 그렇게 마무리한다. 왜 이승철 2집이라고 하지 않고 이승철 1집을 Part 1,2 형식으로 발매했던 이승철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희(형)아, 날 좀 바라봐"...


3편. 싱어송라이터 Vs 싱어포라이터 (부제 : 반항에서 방황으로)


신해철 - KBS 탑밴드

김현철 - MBC 나가수

이승철 - Mnet 슈스케


슈퍼스타k 이후에 우후죽순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나의 3대 철황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각각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나왔다. 신해철, 김현철은 자신들이 싱어송라이터이다 보니, 사실상 음악으로 밥을 먹고 있는 프로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인 탑밴드와 나가수에 나갔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중요하게 평가한 것은 출연자의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곡 선정, 편곡 등을 포함한 음악이었다. 하지만 이승철은 자신이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 싱어이기 때문에 출연자의 노래실력을 주로 평가하였다. 특히나 고음을 잘 소화하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노래 가사를 음미하고 호소력 있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좋아했다. 


80-90년대에는 싱어송라이터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승철은 홀로 서 있는 섬처럼 "대중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신해철과 김현철은 노래를 부르는 작곡가였던 반면에 이승철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김건모, 이문세, 이승철은 모두 김창환, 이영훈, 윤일상, 박광현, 김형석 등 유명한 작곡가로부터 곡을 받아서 노래하던 가객이었다. 이승철은 데뷔 이후로 노래하는 가수였다.


그러다가 3집 방황이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테크노 음악을 부른다. 그 당시 많은 음악평론가, 팬들이 실망했다고 평을 했다. 시대 음악에 따라가는 그의 변신과 방황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승철은 반항의 록커에서 방황하는 가수로 변하였다. 그리고 3집에서 "넌 또 다른 나"라는 노래를 부른다. 어쩌면 너라고 지칭한 사람이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나의 다름일지도 모른다. 이승철은 자신의 음악의 세계를 한정 짓고 싶지 않았고, 다양한 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받아서 자신만의 창법과 음악적 해석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앨범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예전에는 음악이 "음학(배울 학)"인 것 같아서 자꾸 배우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이 "음악(즐길 락)"으로 다가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음학을 하던 가수 이승철이 방황을 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을 한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시대에 싱어포라이터 가수로 살았던 이승철은 무거운 음학의 짐을 벗어 던지고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세상을 살아보면, 결과적으로 쉬워 보이는 결정도 수많은 방황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 20대 초반 이승철은 반항했고, 대마초 사건 때문에 감옥에도 다녀왔다. 20대 중반 이승철은 방황하고 새로운 음악에도 도전을 하고 본인의 음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40대 이승철은 최근 "시간 참 빠르다"라는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때론 우리들은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싱어송라이터)를 만나게 된다. 왜 난 내가 쓴 곡을 노래하지  못할까?라고 속상하게 하고 운명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엔 두 가지 재능을 다 가진 싱어송라이터만 있는 게 아니다. 특별히 노래만 잘하거나, 작곡을 잘하는 한 가지 재능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 때 우리는 이승철처럼 방황을 하게 되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게 된다. 그저 자신의 목소리와 재능을 더욱더 즐기고 사랑해야 한다.


"시간 참 빠른 것 같아 마치 어제 일인 것만 같아"라고 담담하게 노래한다. 40대 이승철은 20대 초반 "희야"를 불렀던 그 목소리만으로 노래하지 않는다. 때론 담담하게, 때론 읊조리듯이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이승철은 대중에게 가장 다가선 가수이다. 해처럼 밝게 빛날 수도 있지만 때론 달처럼 은은하게 비춰줄 수 있다. 목성처럼 크진 않아도 금성처럼 우리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자신의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빛을 발한다.

40대 이승철은 우리에게 말한다. 싱어송라이터가 아니어도 괜찮아.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아. 그저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한 가지 일이라도 족하고, 그 재주를 즐기라고 말한다. "시간 참 빠른 것 같다"는 이승철이 반항에서 방황을 거쳐 삶을 노래한 그의 고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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