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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Dec 18. 2023

2023년 정년퇴직행사 축사

새벽별이 개밥바라기에게 하고 싶은 말

2023년 1 발전공장 정년퇴직행사 축사


안녕하십니까? 정윤식입니다. 우선 이 자리에서 존경하는 선배님의 정년퇴직행사에서 축사를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동력섹션에서 2번, 에너지기술섹션에서 1번 정년퇴직 축사를 하게 되고, 1 발전공장에서 4번째 축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저희 집에서 1 발전공장 서브센터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대략 집에서 5시 30분에 출발하면, 회사에 도착하면 7시가 됩니다. 형산강변을 걸어오면 늘 동쪽하늘에 새벽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금성은 지구보다 안쪽에 있어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보다 왼편에 있으면 새벽별이 되고, 오른편에 있으면 저녁에 빛나는 개밥바라기가 됩니다.


 저는 정년퇴직하신 선배님의 삶이 금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성의 공전주기가 225일이라고 합니다. 이론적으로 금성이 지구보다 왼편에 있을 때가 대략 112.5일이고, 오른편에 있을 때가 112.5일쯤 됩니다. 왼편에 있을 때는 늘 태양보다 먼저 아침에 뜨는 새벽별이 됩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위치, 조직을 책임져야 하는 선배로써의 위치 등 선배님들에게는 늘 책임이 먼저 따르는 삶입니다. 또한 해가 떠오르기 전에 늘 동쪽에서 빛나고 있어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선배님들의 새벽별 역할 덕분에, 저희 후배들은 새벽별을 바라보고 늘 방향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년 이후의 삶은 금성이 지구보다 오른쪽에 있게 됩니다. 그러니깐 더 이상 새벽에 나타나지 않고, 저녁에 해가 지고 나서 떠오르는 개밥바라기가 됩니다. 순우리말로 해가 지고 나서 개한테 밥을 줄 때쯤 뜬다고 해서 금성을 개밥바라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이제는 더 이상 새벽에 일찍 떠야 하는 책임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이 됩니다. 가장으로서의 위치, 선배로서의 위치는 이제 조금씩 내려놓고, 저녁에 나타나도 되는 게으름과 편안함을 즐길 수 있을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온종일 고난했던 일을 마감하는 우리들에게 밥을 주는 마음의 여유도 느꼈으면 합니다.


 이제 축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은 언젠가 지금 이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꼭 정년퇴직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자리가 영원할 순 없습니다. 저도 언젠가 선배님처럼 이런 날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배님들은 이제는 새벽별이 아닌 개밥바라기가 되셔서 지구의 오른편에서 저녁을 누리는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아직까지 저희 후배들이 새벽별이 되어서 회사와 에너지부와 1발전공장을 지키겠습니다. 그동안 저희들에게 새벽별이 되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는 개밥바라기가 되셔서 저녁을 밝게 빛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2월 15일 금요일

정윤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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