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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an 27. 2024

벌써 3주 차, 아직 짐을 풀지 못했다.

난 아직도 수면 위를 부유하고 있다.

1.6일 토요일 밤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그리고 벌써 3주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짐을 풀지 못했다. 우선 아직 기숙사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핑계가 앞선다. 여기서 아직도 한국에서 로밍해 온 아이폰으로 한국에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있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로밍도 끝나고, 무료로 T전화로 하기 힘들어진다.


난 아직도 인도네시아라는 수면 위를 부유하고 있다. 여전히 내 몸과 의식을 물속 깊은 곳까지 담그지 않고, 무릎까지 바지를 걷고 혹시나 바지가 젖을까 조심스레 걷고 있는 셈이다. 이왕에 왔으니, 물속 깊은 데까지 몸을 담그고 시원스레 수영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아직 짐을 풀지 못한 이유는 아직 숙소를 얻지 못해서라는 핑계 탓을 하고 있다.


내게 익숙한 한국 통화단위, 내게 익숙한 한국의 정서, 내게 익숙한 한국 뉴스 소식 등 난 여전히 한국의 잣대로 인도네시아를 보고 있다. 그래서 벌써 3주 차가 되었지만 아직 짐을 풀지 못하고 있는 속사정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수면 위를 부유하고 있는 위태로운 종이배처럼 떠다니고 있는 중이다.


이제 다음 주 화요일이면 새로운 숙소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바지를 젖을까, 윗옷을 젖을까 걱정만 하는 단계를 넘고자 한다. 이왕에 바닷가에 놀러 왔으면, 웃통은 해변에 놓아두고, 시원하게 바닷물에 첨벙하고 빠져드는 게 속이 편하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한국을 지우고, 인도네시아의 바닷속을 수영하려 한다. 바람과 파도에 부유하는 종잇배가 아니라 바람과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구축함, 잠수함이 되어야겠다.


그래야 난 더 이상 수면 위를 부유하는 자가 아니라 수면 아래에 검이 되어 수면을 가르며 나가는 잠수함이 되어가기로 한다. 3주 차, 아직 짐을 풀지도 못하고 찰랑이는 파도에 옷이 젖을까 뒷걸음치고 있다. 이제 4주 차는 짐을 풀고, 밀려오는 파도를 올라타거나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난 수면을 부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면 아래의 검이 될 수 있다. 오늘 하루 그렇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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