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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10. 2024

홍콩누아르, 1990년대를 추억하며

천장지구와 영웅본색2

어제 지인들과 머나먼 이역만리 인도네시아에서 감자탕과 호주 쉬라즈 와인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X세대 아재들의 대화는 여기저기를 맴돌다가 홍콩 누아르 영화로 귀결되었고, 거실소파에 앉아서 유튜브로

천장지구와 영웅본색2 동영상을 시청하며 30여 년 전 학창 시절에 봤던 홍콩누아르 추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중학교 2학년때인 1990년에 천장지구 영화가 개봉하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부산 남포동 극장가에서 15세 이상 관람가능한 영화를 보러 가는 게 로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발매가 되자, 집에 비디오가 있는 친구들 집에 삼삼오오 모여서 영화를 보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친한 친구집에서 천장지구 영화를 2~3번이고 보고 또 봤습니다. 특히 유덕화가 가스통에 머리를 맞고 코피를 흘리는 장면을 따라 하고, 친구들 중에는 유덕화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무용담처럼 얘기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천장지구 영화 중 명장면 중에 하나인 오천련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달리는 장면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멋쩍게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1997년 홍콩이 반환하던 그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저를 포함한 70년 대생들은 세기말의 홍콩의 허무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마음을 훔치게 만든 영웅본색2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특히 장국영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방금 출산을 한

아내와 통화하던 명장면은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주윤발이 이쑤시개를 입에 끼운 채로 쌍권총 하는 장면들을 엄청나게 따라 하곤 했습니다. 1990년 초반부터 후반까지 홍콩누아르는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X세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인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온 명대사처럼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처럼 X세대에게 먼 미래보다는 현실에 충실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생성시키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홍콩누아르 동영상을 한참을 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지금껏 느끼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 어느 하나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천장지구, 영웅본색2, 도신, 철혈쌍웅 등을 필두로 한 홍콩누아르는 한국영화에도 많은 영감을 주어서 김성수 감독의 비트를 낳게 만들고, 무간도와 비슷한 신세계 같은 영화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젊은 시절을 관통했던 영화, 책,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없었습니다. 주체적인 나로서 살아가지만, 나라는 사람의 총합은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본 영화들, 내가 즐겨들은 음악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서 저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홍콩누아르를 뒤돌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오늘 만난 사람, 내가 오늘 읽은 책 한 권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나라는 사람이 되었구나. 가스통에 머리를 맞고 수없이 코피를 흘려가며 죽어가는 유덕화의 비극적인 죽임에 함께 가슴 아파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새롭게 태어난 딸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만났던 사람들과의

점심식사, 커피타임, 워크숍, 출장, 밤샘 등이 모이고 쌓인 퇴적물의 총합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카톡에 있던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해보았습니다. 홍콩누아르처럼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제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동료, 지인, 친구들에게 그립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은 가스통에 머리를 맞고 코피를 줄줄 흘리는 유덕화에게 영향을 받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죽어가는 장국영에게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랑해요 밀키스를 외치던 주윤발에게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1990년 홍콩느와리는 세기말의 허무주의와 퇴폐미를 보여주였지만, 허무주의에서 우리는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유덕화,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홍금보, 성룡, 장만옥 등 홍콩누아르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주윤발과는 다르게 빨대를 입에 끼운 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양손에 키보드를 두드리며 저만의 싸움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특히나 오늘은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장국영의 촉촉한 눈빛이 더더욱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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