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억과 약속들이 나를 만들다.

2007.9월 ~ 2009.3월, 브뤼셀에서 살다.

by 정윤식

얼마 전에 중국 상하이에 1박 2일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다. 약 18년 전인 2008년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계철강협회에서 파견근무할 때 중국 바오산철강에서 온 직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분의 집에 초대를 받아, 그분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하며 이런저런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둘째 날 아침에는 상하이식 아침식사도 먹었고, 지인의 남편이 손수 만들어준 중국식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마오타이 백주를 꺼내서 그분의 남편분과 함께 주거나 받거니 하며 술병을 비웠다.

그러다가, 2008년에 둘 다 30대 초에 만났던 그 시절에 대해 얘기를 했고, 그 시절이 지금의 우리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동감하였다. 이처럼 세월이 지나서 예전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게 된다. 나에게는 2007.9월부터 2009.3월까지 약 1년 반정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살았던 시간들이 특별한 기회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도대체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을까?

우선, 나는 그때 전 세계로부터 온 사람들과의 만남과 근무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벨기에에서 근무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실로 다양했다. 영국인, 벨기에인, 프랑스인, 독일인, 네덜란드인, 호주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 등 대략 15 ~ 20개국 사람들과 브뤼셀에서 함께 근무하였다. 또한 거의 매달, 전 세계 철강회사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팅을 하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일을 했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40~50여 개국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세상은 넓고,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는 공통으로 사용하는 휴게공간이 있었는데, 본인 생일날에는 생일케이크를 놓아둔다. 그리고 직원 전체에 “오늘은 내 생일이니, 휴게실에 케이크가 있으니 조금씩 챙겨서 먹으라"는 짧은 이메일을 보내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면 다들 휴게실에서 케이크를 조금씩 덜어놓고, 그 친구에게 "생일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당사자 자리에 가서 축하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이러한 사소한 경험들이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나는 브뤼셀에서 중국 철강사와 일본 철강사에서 파견 온 두 사람과 특히 친하게 지냈다. 두 사람 모두 가족들과 떨어져서 단신으로 파견을 와서 외롭게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함께 즐기기도 하고 심지어 나는 일본인 동료와 단둘이서 모로코에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1.5년 동안 지내다가 그들과 헤어지면서 꼭 했던 약속이 있었다. "See you later."란 말로 미래에 대한 큰 기대 없이 다시 만나자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2023년 10월에 나는 딸과 함께 오사카, 교토 여행을 계획하였고, 일본인 동료를 14년 만에 교토에서 만났다. 그분이 교토 여행가이드를 해주고, 가모가와 강변에 있는 식당에서 교토 전통음식을 함께 먹었다. 그렇게 나는 기약할 수 없었던 "See you later"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국과 일본이 이렇게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사실에 함께 공감하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게 어떻겠냐는 대화로 마무리를 했다.

또한, 예정에도 없던 인도네시아 주재원 생활을 2024년 1월부터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작년 8월에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로 혼자 인도네시아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2008년에 만났던 중국 동료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08년 12월에 브뤼셀 자벤텀 공항에서 그분을 라이딩해주고, 공항에서 헤어지며 “See you later."란 약속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결국 2026년 1월에 18년 만에 재회하고, 오래된 약속을 지켰다.

생각해 보면, 옛 기억과 약속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오래전에 이어온 인연을 지금까지 다시 연결해서 이어올 수 있었다. 그때 짧았던 브뤼셀 생활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일본, 중국에서 온 2명의 동료들에게 했던 약속들이 나로 하여금 오사카, 상하이 비행기 티켓팅을 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나는 어제의 나보다 경험치가 +1 만큼 늘어났다. 내가 생각해 본 중국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깰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 되었다.

옛 기억과 약속들이 나를 만든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내 인생의 판별식 ( b^2 - 4a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