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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Jun 09. 2021

몸만 자랐는지, 몸도 자랐는지

Sondia - 어른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나는 어른인가요>. 박지성의 수비만큼이나 끈질기게도 따라다니는 이 자문自問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민증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였던가, 아니면 처음으로 술을, 담배를, 섹스를 했을 때였나. 법치국가의 청소년은 '씬 <어른>, 하이-큐!' 하는 헌법의 핑거스냅을 큐사인으로 어른으로 변신해버리지만, 내 안의 그는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지 한 번도 당당하게 '나는 이제 어른이다!'라고 외친 적이 없다.

어른이 됐구나, 느끼는 모먼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별 후 듣는 이별 노래에도 눈물샘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거나, 잠자리에 들었는데 내가 꿈꿨던 직업을 갖게 된 지인들을 sns에서 보곤 지나쳐온 갈림길들이 아른거려 잠들지 못한다거나, 열몇 살씩 어린 친구들이 꿈을 지저귈 때 괜히 뒷맛이 쓰려온다던가 하는. 시기와 질투 외에는 아무 감정이 남아있지 않는 듯했던 내 어린 시절의 '어른'들을 어느새 닮아간 나를 발견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러다가도, 에세이 베스트셀러 진열장에 누워있고 홀로 있고 울고 있고 피곤에 절은 표지 속 그들을 볼 때면 열 살, 스무 살씩 어려져 사춘기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어딜 가도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짝지어 웃고 떠들고 해 대는 바람에 아고라-포비아가 올 지경인데, 대체 언제 그들이 혼자이고 외롭고 슬프고 서러운 건지. 한참 늦은 감정의 바람과 파도를 타고 온 우주에서 나만 힘들고 고독해지면, 아직 어른이기는 멀었다고 느낀다.

여기 이 시대에서는 각자가 수많은 거울들로 둘러 쌓인 채라서. 내가 나를 간단하게라도, 그러니까 손발이 어디에 달려있는지나 뻗친 머리가 어느 방향쯤 인지도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 눈을 감아야 더 제대로 보이는 코미디는 가까이에서 들여보면 트레지디이고, 불가해한 불가항력으로 죽어라고 반사광에서 나를 뒤지는 어린 어른의 밤이 또다시라서, 깊게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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