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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Jun 10. 2021

우렁찬 프러포즈!

구원찬 - 슬퍼하지마

지금 너에게 갈게.
이제는 슬퍼하지 마, babe.


네게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대나무숲이 되어준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 농아원에 봉사를 왔던 건 너였는데 어쩌다 보니 강산이 바뀔 동안 내가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 이 정도 비밀유지 실력이면 나름 고-급 인력인데 말이야. 농담이고, 여전히 난 네 목소리를 듣는 게 참 재밌어. 좋아,라고 표현하면 어딘지 즐거움이 빠진 듯해서 좋아, 보다는 재밌어.

어쨌든 위에 계신 분은 공평하니까 여기 잠시 들린 천사한테도 다른 이들만큼의 시련을 주셨고, 그때마다 내가 옆에 있었던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해. 하지만 네가 펑펑 울며 고난을 얘기할 때, 안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필요로 할 때, 나는 너를 잠시 떼고 손가락으로 눈물을 흘리고 오른손바닥을 왼손 날로 쪼개야 하니까 참 마음이 괴로웠어. 품은 채로 달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언젠가 기술이 좀 더 발전해서 맘에 드는 목소리를 살 수 있게 되면 네가 환장하는 중저음으로 괜찮아, 하고 싶다.  

필요 이상으로 과묵한 남자 친구 때문에 언제나 가방에 스트렙실을 넣고 데이트를 하는 것이 미안해서, 반지를 준비했어. 부부가 되면 사이의 대화가 확 줄어든대. 네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의 얼마 없는 기쁨이지만, 이제는 말 많이 하지 말고 그냥 옆에 있어. 그냥 지금처럼 눈 마주치고 싱긋해주면 그걸로도 충분해. 지난 10년의 몇 배가 넘는 긴 시간이겠지만 잘 해낼 거야, 우리. 나는 알아. 앞으로도 나만의 목소리가 되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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