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박 3일 교회에서 현장 수련회를 다녀왔는데, 수련회는 나의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특히, 내향형인 나는 많은 사람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지고 에너지가 금방 고갈되는 스타일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어떻게 평가할지 무섭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선 우리 인간은 과거 야생 동물과 외부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계하는 습관이 축적되어 몸 안에 DNA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 사람들이 나를 해치지 않겠지만, 지난 코로나 이후 2년 넘게 출석은 했어도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사람이 허다하고, 현장 수련회를 처음 겪어본 나에겐 기존에 알게 된 사람들조차 한자리에 모으니 다시 리셋 된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다. 반면 기존 멤버들은 그동안 못 보던 이들과 재회하니 잔칫집에 온 듯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곳에서 일거수일투족 감시 받는 기분은, 평소 남들 앞에서 나이스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나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지게 만들었다. 잠도 잘 못 자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며, 멋지게 꾸미기도 어려운, 마치 눈먼 도시의 사람들처럼 위험이 도사리는 길을 나서는 듯했다.
그 짧은 시간에 온갖 고통을 혼자 느끼며, 좌절과 우울감에 잠겨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둘째 날 집회 시간에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낮아지니, 성령님의 임재가 내게 찾아온 것이다. 그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아, 인생 내 힘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 없이는 안되는구나.”
“그분의 은혜가 아니면,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수련회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남을 낫게 여기기보다 내가 높아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자랑과 허세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원리보다 세상의 가치에 마음이 빼앗겼던 건 아닐까?
그 날밤, 마지막 모임에서 서로를 축복하고 나눔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소감을 얘기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좋았다”라는 말뿐이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 때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나는 아직 좋다고 말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고, 내일쯤 되야 그런 소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Yes’를 외칠 때 나는 ‘No’를 외치며 많이 힘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주저리주저리...)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그냥 얼버무릴 걸 하며 끝나고 바로 후회했다. 난 그렇게 갑분싸가 되었고 모두가 야식 파티를 할 때 자리를 피해 혼자 산책에 나섰다.
길을 잃은 양처럼 목자 없이 떠돌며 집에 가고 싶은 생각과 순간적으로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감정의 파노라마, 짜증 나고, 분노가 일어나며, 괜히 온 것 같은 찝찝한 기분. 모두가 행복하다는데, 왜 나만 이런 걸까…?
그러나 수련회의 신비는 다음 날 시작되었다. 뒷정리하며 나에게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들. 모든 게 끝났다고 확언했을 때, 예상치 못한 아주 작고 사소한 한마디가 내 영혼을 다시 살아 숨 쉬게 하였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가 여기에 남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나의 예민함을 낯설게 보지 않는 태도, 나의 어리숙함이 허용되는 곳, 부족함을 드러내도 용납이 가능한 게 교회 공동체이지 않을까? 완성될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으나, 좀 더 이곳에 머물러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