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에서 민주주의로.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무엇을 위한 자유로.
지금으로부터 채 100년이 지나지 않은, 그 시기의 독일은 나치즘이라는 광기와 망령에 휩싸였다. 인종주의와 전체주의의 기치를 내세우며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나치는 인류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주목해야 할 점은 나치정권이 누군가에 의한 강요나 겁박 혹은 권모술수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4년에 한번 국회의원을 뽑는 것처럼 나치정권 역시 선거와 투표를 거쳐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춘 정권이었다. 사실상 민주주의의 종언을 고한 1933년 '전권위임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나치는 의회 의석의 30% 이상을 차지한 합법적인 정당이었고 이른바 "선출된 권력"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의문을 갖는다. 쿠데타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외란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나치를 나치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누가 나치즘에 그렇게 열광했던 것일까? 나치즘의 주 지지층은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내 하류 중산층이었다. 하류 중산층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베르사유 조약 그리고 대공황으로 설명되는 정치경제학적 혼란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계층이었다. 이러한 거시적 분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마치 극단적인 정치경제상황에서만 그러한 비극이 일어날 수 있게끔 생각하게 함으로써 역사적 사건과 우리의 현실의 간극을 벌려놓는다. 결국 우리도 비극의 전철을 되풀이할 수 있을거라는 경각심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고 같은 심성구조와 성격특성을 가진 개개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일까, 에리히 프롬은 정치경제적 담론 하에 숨어 있던 당시 독일 국민들의 성격특성과 심리구조를 이 책을 통해 날카롭게 그려냈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함과 동시에 내던져짐을 두려워한다. 누구보다 전역날을 기다려왔던 말년병장이 전역을 앞두고 이제는 사회가 두렵다고 외치는 모습을 꼭 두눈으로 목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모순을 삶으로 경험한다. 독립심과 고독감이라는 양가적 감정 속에 싹튼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포기하는 선지조차 서슴없이 선택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양태를 '도피의 매커니즘'이라고 명명함과 동시에 나치즘을 추종한 독일 국민들의 성격과 심리구조 속에 이 매커니즘이 숨어있었음을 밝힌다.
"개성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때까지 안도감을 주었던 기본적인 관계를 단절당하면, 이 불균형때문에 자유는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자유는 의심과 동일해지고, 의미와 방향을 잃은 삶과 동일해진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나 세계와의 관계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더라도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 관계 속으로 도피하거나 복종으로 도피하려는 강력한 경향이 생긴다." (p.55, 제2장 개인의 출현과 자유의 다의성 中)
특히 나치의 주 지지층이었던 하류 중산층에서는 이 매커니즘이 가학-피학적 성격를 보이며 두드러졌다. 가학-피학적 성격은 가학성과 피학성이 모두 자신의 외로움과 무력감을 참지 못해 맺게되는 일종의 '공생'관계이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와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자 하는 욕구. 두 욕구는 표면적으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강자에 대한 사랑과 약자에 대한 증오"라는 동일한 욕구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강자에 대한 사랑과 무력한 약자에 대한 증오는 가학-피학적 성격의 전형적인 특징이고, 이것은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대부분 설명해준다. (...) 히틀러는 이미 기틀을 잡은 강한 힘과는 절대로 맞서지 않고, 그가 보기에 본질적으로 무력한 집단하고만 싸웠다."(p.250, 제6장 나치즘의 심리 中)
프롬에 따르면 당시 독일과 유럽의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가학-피학적 성격이 드러났다. 나치는 이러한 개인들의 욕구를 정치권력이라는 창구로 해소시켰고, 하류 중산층에게 견딜 수 없는 자유의 불안감을 제거해주는 대가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전체주의적 억압을 제공했다. 중산층과 나치의 심리구조에는 "강자에 대한 사랑과 약자에 대한 증오"라는 공통분모가 놓여져 있었고 히틀러는 그저 이러한 캐치프라이즈의 선봉장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고독감에 못이겨 이른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한 역사는 나치즘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프롬을 말한다. 20세기 나치와 꽤 거리감이 있어보이는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에도 이러한 양상이 드러났다. 16-17세기 유럽은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봉건제라는 중세적 체제가 붕괴되는 역사의 변곡점이었다. 그 사이에서 개인은 봉건적 주종관계, 길드(guild), 가톨릭 교회라는 기존의 중세적 연대로부터 파편화되어 자유로움 이면의 고독과 불안을 체감했다. 칼뱅과 루터의 새로운 종교는 개인의 이러한 '참을 수 없는 자유의 부담감'을 해소할 수 있는 요소를 지녔기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가 이들 집단에 호소력을 가진 이유는 자유와 독립이라는 새로운 감정만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무력감과 불안감까지도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종교의 교리는 경제 질서의 변화가 불러일으킨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교리의 가르침을 통해 그 감정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개인이 참을 수 없는 불안에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p.78, 제3장 종교개혁 시대의 자유)
첫째, 개인 노력의 무가치함과 자아의 절멸을 강조한 자기비하의 메커니즘을 보였다. "오직 성서로, 오직 은혜로"라는 캐치프라이즈 아래, 인간의 노력과 업적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교리를 확립했다. 그 과정에서 신과 성도의 중간지대에 위치했던 교회의 역할은 축소됐고 신은 더욱 높아지고 인간은 더욱 낮아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결국 신앞에서의 개인의 지위 격하는 불안과 무력감을 자기비하의 메커니즘으로 해소하려는 욕구의 발현이고 집단화된 도피 메커니즘이었다.
둘째, 세속 권력에 대한 굴복이 드러났다. 루터는 "군주는 아무리 압제적이라 해도 계속 군주로 남아있어야한다."라고 말하며, 기존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동시에 세속적 권위와 신적 권위를 전적으로 긍정했다. 이 모습은 나치즘 당시 '강자에 대한 사랑과 약자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가학-피학적 추종자들과 겹쳐지며, 절대권력을 상정해 개인을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메커니즘이 반복적으로 보여진다.
셋째, 종교개혁과 나치즘의 공통된 도피 메커니즘의 핵심은 중산층이었다. 나치즘의 주 지지층이 하류 중산층이었던 것처럼, 종교개혁에 열렬히 지지하고 서양 근대 자본주의 발달은 이끈 계층은 도시 중산층이었다. 봉건사회가 붕괴된 후 상층(신흥자본가와 귀족)은 신대륙 발견과 국제무역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윤을 얻었고 하층(도시빈민과 농노)은 신체의 자유를 얻었지만, 중산층(중소상인과 중소지주)에게는 그 무엇도 아닌 고독감과 무력감만이 커져갔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중산층이 자기비하의 메커니즘과 세속권력에 대한 굴복이라는 성격적 특성을 지니도록 했고, 결국 불안을 세속적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일하려는 욕구를 극대화하고 금욕과 절약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티즘은 이후 자본주의 정신의 모체가 되었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중산층에 적개심이 널리 퍼져 있었고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개념, 특히 그 금욕적 정신과 칼뱅이 묘사한 무자비한 신(인류의 일부에게 그들의 잘못도 아닌 죄로 영원한 저주를 내리고 흡족해하는 신)의 모습에 그 적개심이 표현되어 있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다. (...) 오늘날은 하류 중산층의 파괴성이 나치즘의 대두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나치즘은 바로 그 파괴적 충동에 호소했고, 적에 대한 싸움에 그 충동을 이용했다. 하류 중산층이 가진 파괴성의 뿌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논해온 바와 같이 개인의 고독과 확장성의 억압이다. 이 두가지는 그보다 상층계급이나 하층계급보다 하류 중산층에 훨씬 들어맞았다." (p.201, 제5장 도피의 메커니즘)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차이의 진정한 의미를 정의하는 방법은 한가지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조건을 창조해내는 체제다. 반면에 파시즘은 어떤 이름은 내세우든 관계없이 개인을 자신과 관계없는 목적에 종속시키고, 진정한 개성의 발달을 약화시키는 체제다." (p.295, 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
나치즘은 히틀러의 자살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망령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강력한 공권력과 사상통제 그리고 인권탄압을 기치에 내걸고 등장한 수많은 권위주의, 전체주의 정부에서 국민들이 자신들의 기본권을 정권에 헌납하는 아이러니는 반복됐다. 어쩌면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이상, 가학-피학적 종속관계와 도피의 메커니즘은 없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상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소극적 자유를 넘어 적극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인간 정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하나의 신념, 생명과 진리에 대한 신념, 그리고 개체적 자아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실현으로서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만 허무주의의 세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p.297, 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
에리히 프롬은 외부의 속박이나 통제로부터의 자유 즉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소극적 자유, 이상향과 개인적 자아의 실현을 의미하는 "무엇을 위한 자유"를 적극적 자유라고 명명했다. 우리가 소극적 자유만을 추구한다면 참을 수 없는 고독감과 무력감으로 필시 도피의 메커니즘에 기대게 된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저작 '사랑의 기술'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의 삶과 행복 그리고 성장과 자유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자아와 타자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적극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자발적인 사랑, 사회와 정치권력에 대한 주권적 참여,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실현으로서의 자유가 충족되었을 때 파시즘에 위협받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