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집이 있는 수도권으로 오게 된 친구한테서 거리 감각과 시간 감각이 낯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퇴근 거리가 1시간 이내면 문제없다는 사고방식이 놀라웠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수도권에 있을 때는 광역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얼추 이동 시간 한 시간을 잡고 움직이는 데에 익숙해져 있긴 했다. 도로 위에서 소모하는 시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란 6인치 전자책을 잊지 않고 챙겨서 그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책을 집중해서 읽은 시간보다는 머리를 동서남북으로 휘저으며 졸거나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익숙한 경치를 멍하게 바라본 날이 더 많았지만.
한편 속초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차가 있다는 전제 하에 네이버 지도에서 거리 검색을 해도 어지간하면 15분, 아무리 멀어도 30분 정도라고 나온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 거리에 차가 띄엄띄엄 보일 무렵에 운 좋게 운전면허를 딴 야매 운전자인 나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며 도로로 돌아온 차들의 무서움을 실감하며 자연스럽게 장롱면허가 되었다. 소위 페이퍼 드라이버. 민증 사진을 바꾸는 게 번거로워서 신분증 대신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니고 있는 형편이면 말 다 한 셈이지.
그렇게 방심하고 있던 차에 속초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이 되니 하나둘씩 해야 하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여름에 친구랑 제주도 여행 가기나 한동안 미뤄 왔던 자격증 시험 보기, 운 좋게 합격해서 활동하게 된 서포터즈 발대식 같은 것들이. 이전까지는 운행했으나 코로나 시기에 재정 상황이 악화되며 양양공항이 문을 닫은 시점에서 비행기를 타려면 공항 리무진을 타고 김포 공항까지 4시간 가까운 시간을 들여서 가야 했다. 강원도에서 유일한 JLPT 시험장은 원주에 있었으며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원주까지 가려면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몇 번 갈아타며 4시간 가까이 시간을 들여야 했다. 서포터즈 발대식은 강원도청 산하의 청년센터에서 주관하는 것이라서 춘천에 위치한 강원도청까지 가야 했는데 시외버스로는 약 두 시간가량에 집에서 터미널까지, 또 터미널에서 도청까지 가는 시간을 합하면 이래저래 3시간 반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 전 수업에서 학생과 과거 일본에서는 특별한 허가증이 없으면 지역 간의 이동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지역 내의 사람들은 곧 노동력이었으며 이는 영주의 재산과도 다름없었으니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시간이라는 제약으로 지역 간 이동에 제한이 생긴 처지가 되니 지금 내 처지가 지역에 묶인 그들과 다를 게 없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볍게 논하던 수도권의 특징인 교통의 편리함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고, 지역의 폐쇄성이라는 말이 생긴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물리적 공간이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나와 아주 무관한 주제가 아니다 보니 작년부터 꽤 오랫동안 생각해 온 주제였다.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긴 나는 정체성이라는 것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일본으로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다면, 그런 상황에도 주변의 물리적인 상황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변화가 내 수업의 방향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애초에 정체성이란 뭘까?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개념일까?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