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생존 전략

뉴스, 올드한 것을 묘사하라.

by 유안

며칠 전 오후 세시 반정도 됐을까. 성동구 금호동 금남시장의 거리에서 열 대여섯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닭강정을 먹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어서 중학생임을 짐작했다. 키는 165cm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체격이 좋았다. 바가지머리에 흰 피부, 볼살이 통통했고 안경을 썼다. 아이는 검정 백팩을 등에 맨 채 금호닭강정 앞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힐끗 올려다보니 위층엔 수학 학원이 있었다. 아이의 왼쪽엔 닭강정 대여섯개가 담긴 그릇이, 오른쪽엔 신문이 놓여 있었다.


내 걸음을 멈추게 한 건 무협지나 만화책을 읽듯 신문에 코를 처박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중딩’이 신문을 저렇게 열심히 읽다니. 난 멀찍이서 3분 정도 그 아일 관찰했다. 닭강정 그릇은 아예 쳐다보지 않은 채 아이의 눈은 신문만을 향했다. 사춘기 남자아이에게 신문이 닭강정보다 우선순위라니 어이가 없었다. 기자 지망생으로서 신문 읽는 사람들을 종종 관찰하곤 하는데 저렇게 신문을 열심히 읽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게으른 오후의 금남시장 거리에서 그 아이가 쏟아내는 집중력은 단연 눈에 띄었다.


아니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신문을 저렇게 집중해서 읽는 거지? 궁금해서 그 옆을 알짱거렸다. 할 일이 있는 마냥 그 애의 뒤를 지나갔다. 뒤에 누가 지나가든 당연히 아이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힐끗 보니 중앙일보 스포츠면이었다. 전날의 경기 내용이 담긴 스포츠면을 활짝 펴놓고 아이는 기사를 눈으로 열심히 담아내려가고 있었다. 뒤에 누가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대체 뭘 써놨기에 입을 헤 벌리고 읽을 정도로 재밌는 걸까?


그 때 내 머릴 스친 건 저널리즘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씀이었다. '사람들은 설명보다 묘사를 좋아하고, 특히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대상에 대한 묘사를 좋아한다'는. 교수님은 어젯밤 축구경기의 예를 들어주셨다. 스포츠면을 보는 독자들은 어젯밤 축구 경기를 이미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지면에 아주 재밌고 흡입력 있게 묘사해준다면, 이미 본 것이더라도 거기에 독자는 매력을 느낀다.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친숙한 소재이기에 오히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뉴스(News)가 태생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움보다도 어쩌면 독자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묘사해준 기사에 몰입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잘 쓰인 스포츠 기사를 보며 독자는 어젯밤의 쾌거 혹은 아쉬움을 다시 한 번 끌어올릴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잠시 눈을 떼고 '이야, 나랑 똑같은 경기를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쓰지?' 하다가 기사를 한 번 더 훑을 수도 있다. 결국 독자가 지면에 머무는(stay) 시간이 길어지고 이는 신문에겐 호재다. 그래서인지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언론에서 묘사는 이미 대중화된 기사쓰기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닭강정보다 신문을 택한 그 아이 역시 '어젯밤 경기'를 묘사한 기사에 매료됐던 것이었다. 스포츠면을 다 읽은 그 아인 재빠르게 신문을 두 번 접어 들고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그 위층 학원으로 향했다. 빡빡한 학교와 학원의 굴레 속에서 잠시 짬을 내 닭강정(아마도 식사일 것이다)을 먹으면서 신문에다가 집중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건 그 기사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묘사, 그 중에서도 친숙한 것에 대한 묘사, 그리고 잘 하는 묘사. 신문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5년 4월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