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올린 이후 몇년동안 글을 써야지 써야지 내내 생각만 하다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도 떠오르고 잠이 오지않아 불현듯 글을 쓰고 있다. 이번주는 할머니가 서울대 암병원에 지난 번 수술 이후 검사 및 진료를 받으러 와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나와 동생 둘 다 다행히 재택근무를 하고, 나는 나름대로 정시퇴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내가 할머니의 식사와 말동무 담당을 했다. 어릴 때는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돌봄만 받다가 이제는 너무나 작아지고 약해진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강한ㅎㅎ)할머니를 도와 드리는 나와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부모님도 우리를 어른으로 인정하고 있구나 생각도 했다.
할머니는 낮시간에 주로 나와 함께 투룸에서 지냈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큰방에서 일 하고 쉬고, 할머니는 동생이 쓰고 있는 작은 방을 쓰고, 동생은 집 근처에 있는 작업실에서 숙식이 어느정도 가능해 거기서 지냈다. 할머니가 몸이 안좋아서 검사를 하러 서울로 올라왔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할머니께 쉬고, 집앞에 산책도 좀 나가라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우리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할머니가 방에서 가만히 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무릎 수술을 받은 상태라 예전처럼 빠르게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은 할머니에겐 더 힘든 일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지금 동생과 살고 있는 집은 꽤 경사진 오르막길의 꼭대기에 있는 반지하 집이다. 여기서의 안타깝다는 건 할머니의 상황에서 하늘을 보며 제대로 된 산책 한 번을 할 수 없는 환경일 수 밖에 없어서의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무튼 할머니는 일주일동안 우리집에 머무르며 우리가 평소에 바빠서 미루고미뤄두었던 잡다한 청소와 집안일을 클리어하고 가셨다. 그것도 할머니가 세운 계획에 차곡차곡 맞도록 퍼즐처럼 말이다. 나는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는데 가끔 할머니가 시간과 태스크를 정확하게 맞춰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걸 보며 할머니야 말로 이 시대의 PM인재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깨끗하게 치웠다고 생각했던 조그만 부엌겸 거실을 겉부분 뿐만 아니라 찬장 내부 까지 수건으로 반질반질 닦았고, 중구난방 정리되어 있는 각종 재료들과 용기들을 일관성있게 정리했다. 그리고 물건을 각만 대충 맞게 쌓아뒀던 베란다도 할머니는 결국 베란다 문을 열기만 하면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 수 있게 정리했고, 혹시나 집안에 있던 물건을 베란다로 옮겼을 땐 우리가 헷갈리지 않도록 미리 몇 차례 트레이닝을 해주기 까지 했다. 몸도 성치 않은데 자꾸만 일을 만들어서 하는 할머니를 보며 마음이 좋지만은 않아서 그만하라고 말해도, 유튜브로 할머니가 좋아하는 트로트 무대랑 뉴스를 틀어줘도 잠시뿐, 내가 일을 안하면 그 땐 내가 죽는 날이라며 계속 고집을 부리는 할머니를 말릴 순 없었다. 그리고 사실 나도 알았다. 이 작은 집에서, 그리고 언덕위 반지하 집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다는 것을. 이 때 처음으로 아 내가 좀 더 성공해서 괜찮은 환경에 내 집을 마련했었다면 할머니가 아플 때 더 편하게 머무르고 하늘도 보고, 산책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들어서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할머니가 집에 머물렀던 마지막날 밤에 어김없이 저녁에 같이 얘기를 하는데 할머니가 평소에 잘 하지 않으시는 말을 꺼냈다. 우리 집에 머무르면서 참 탐나는 물건이 세가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좁은 집에 특별할 것이 없는데 뭐지? 반지하라서 장만한 그나마 비싼 공기청정기? 제습기? 재택근무를 위해서 구비한 장비들? 이런 것들을 떠올렸는데 막상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건 바로 “숟가락통, 냄비받침, 마사지볼" 이었기 때문이었다. 숟가락통이 제일 인상깊었다. 숟가락통은 다이소에서 아무생각 없이 산 2천원짜리 흰색 플라스틱 두개 칸으로 나뉘어져있는 통이었는데 할머니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바로 그 디자인과 쓰임새였다고 한다. 냄비받침은 집에 이사오면서 제대로된 냄비받침이 없어서 동생이랑 이태원 거리를 거닐다 터키사장님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가게에서 파는 마음에 드는 도자기 모양의 냄비받침이었다. 마지막 마사지볼은 할머니가 계속 앉아서 일을 하고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려우니 내가 잠깐이라도 쉬면서 근육을 풀라고 선 상태로 마사지볼로 발 아치 부분을 마사지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는데 처음에는 어색해서 안한다고 하시더니 이후에 내가 방에서 일할 때에도 종종 마사지를 해보니 시원하셨나 보다. 그래서 이 세가지를 말씀하시는데 너무 소박하면서도 할머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새걸로 다 드리고 싶었지만 터키가게는 코로나로 문을 닫았고, 지금 여기서 드리면 분명히 할머니는 안가져간다고 가시는 날에 다 놔두고 갈 게 분명해서 우선 다 가져가라고 말씀만 드려놓고 다음날 할머니를 데리러 오신 부모님께서 같은 수저통을 사주시고, 냄비받침도 챙기셨다. 마사지볼은 내가 할머니댁으로 바로 온라인 주문해서 드린다고 하니 역시나 필요없다고 손사래를 쳤고, 예상 그래도 할머니는 몰래 냄비받침을 식탁밑에 숨겨두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랑 보낸 일주일은 누군가 뭘 하지않아도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할머니는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심심하고, 말동무를 할 누군가가 필요했을까 싶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면 할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좋은 풍경과 산책을 할 수 있는 도심에 있는 아파트가 있지만 손녀들과 함께했던 반지하의 일주일이 즐거웠다고 하는 할머니. 이번 설에 얼른 내려가서 할머니댁에서 몇 밤 자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