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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Sep 09. 2020

스나이더의 소울메이트

아메리카 기행 - 스나이더

10년 전 폴란드에서 만난 언니가 있다. 우린 각자 여행 중이었고, 그 당시 생긴 지 얼마 안 된 깨끗한 호스텔 로비에서 처음 만났다. 밤차를 타고 온 나는 새벽녘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그날따라 잠이 일찍 깬 언니가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로비로 나오면서 나를 먼저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언니는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했고, 더 웃긴 건 나 역시 그랬다는 거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중국인으로 오해한 채 침묵의 웨이팅을 즐겼다. 둘 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대구 시민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그리고 다음날, 안양에서 왔다는 또 다른 한국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누군가와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놀랍게도 어제 새벽에 봤던 그 중국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대, 만약 저 안양 여인이 아니었다면 언니와 난 서로를 중국인으로 오해한 채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어쨌든 우린 그렇게 폴란드에서 만났고, 자연스럽게 호칭 앞에 '폴란드'를 넣어서 불렀다. 언니는 나의 '폴란드 언니'로, 안양 여인은 나의 '폴란드 동생'으로.


특히 같은 대구에 살았던 언니와는 여행이 끝난 후에도 자주 만났는데, 그때 언니가 해준 조언들이 참 많은 힘이 되었다. 30대에 흔히 할 수 있는 고민 앞에서 언니는 늘 담대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멋지다고 생각했고,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에게 남친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아메리칸이란다. 두 사람은 향교에서 멋들어진 결혼식을 올렸고, 주니어가 4살이 되던 해에 언니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꼬박 2년 만에 언니를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이다. 미국행이 결정되고 나서 처음으로 언니에게 보이스톡을 했다. 육성을 들으니 그날의 담대했던 언니가 떠올랐고, 우린 금세 '폴란드' 시절로 돌아가서 긴긴 통화를 했다.

언니가 계신 곳은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로턴(Lawton)이란 곳이었다. 지도를 보니 동부와 서부 사이에 딱 중간쯤 쉬어가기 좋은 위치. 마침 남편이 교육 때문에 캘리포니아로 가 있어서 집에는 주니어랑 둘만 있다며 부담 없이 오라고 하신다. 깡시골이니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도 하셨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언니를 보기 위해 가는 거니까.


19세기 인디언 숙청 사업으로 오클라호마까지 걸어가는 동안 굶어 죽고, 다쳐서 죽고, 병들어 죽은 원주민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비행기로 반나절 만에 워싱턴에서 로턴까지 이동했다. 언니네 집은 여기서 차로 30분쯤 더 가야 하는 스나이더(Snyder)란 곳에 있었다.


로턴도 처음 들어보는데 스나이더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당황하는 내게 언니는 영화 한 편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셨다. 혹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의 리즈 시절이 담긴 영화 <Far And Away>를 아시는지. 이 영화의 후반부쯤 유럽인들이 '선착순 땅따먹기'를 위해 말을 타고 마구 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에 톰 크루즈가 야심 차게 녹색 깃발을 꽂던 곳, 거기가 바로 오클라호마 주라고 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이었던 이곳에 20세기 들어 백인들이 다시 진출하면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에는 군사학교와 부대가 들어서면서 군사도시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그 중심이 로턴의 포트실(Fort Sill)이며, 여기서 80km 정도 떨어진 알터스(Altus)에 또 하나의 거대한 공군기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스나이더는 정확히 이 두 도시 사이에 있었다.

공군기지 사이에 있지만 스나이더는 전혀 군사 도시와는 상관없는 곳이었다. 전형적인 타운하우스가 띄엄띄엄 있는 고즈넉한 마을 중심에는 주니어가 다니는 학교도 있고, 야영을 할 수 있는 멋진 호수도 있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올 법한 목화밭과 버펄로도 구경할 수 있고, 오클라호마의 부촌이라는 Medicine Park 근처에는 100년 묵은 햄버거 맛집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엔 나의 소울메이트 '폴란드 언니'가 있어서 좋다.


알았으니 됐다. 이제부터 그렇게 안 살면 된다.


지난 2년간의 혼란기에 대해 털어놓자 언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잘못된 것을 아는 것과 모르고 지나가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알았으니까 됐다고. 그 말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위로보다도 (심지어 언니가 만들어준 맛깔스러운 한식보다도) 내게 필요한 '영혼의 양식'이 되어 주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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