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기행 - 워싱턴 5
워싱턴 편을 전쟁 이야기로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휴전 상태인 분단국가에 살고 있지만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도 아니고, 어렸을 때 반공교육을 받긴 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세속에 물들다 보니 전쟁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다. 그래서인지 이국 땅에서 우연히 발견한 전쟁의 흔적들이 처음엔 낯설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넘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는 과연 전쟁의 '무엇'을 더 생각해봐야 하는 걸까.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는 전쟁 기념비가 무려 4개나 있다. 바로 20세기 전반을 차지했던 1,2차 세계대전 기념비와 그의 연장선으로 20세기 중후반에 일어났던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이다. 이들 기념비는 링컨 기념관 앞으로 길게 뻗어있는 연못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하나씩 흩어져 있다.
20세기는 1914년에 시작되었다.
- 에릭 홉스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18세기의 유럽은 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부터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0년 동안의 시간을 '벨 에포크(Belle Epoque)'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문화와 사상이 꽃 피는 법이다. 이때부터 불거진 시민혁명은 민주주의로 발전하고, 이는 곧 극단적 민족주의로 치닫는데, 그 광기가 터진 것이 바로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사망 900만 명, 부상 2300만 명, 전쟁고아 800만 명...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전쟁으로 인한 국가 채무가 늘어나면서 유럽에서는 인플레이션까지 일어났다. 그러던 중 1929년 10월 24일, 미국 증시의 주가가 갑자기 폭락하면서 장장 10년 동안의 대공황이 덮치고, 불황이 만성화되면서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부활하는데, 그 일환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파시즘(Fascism)이다.
한 번의 큰 전쟁과 기나긴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을 낳았고, 파시즘으로 똘똘 뭉친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국가들을 잠식하면서 2번째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때 추축국이었던 독일의 나치 정권이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거대한 수용소를 만들고 대대적인 인종 청소를 자행하는데, 이것이 그 이름도 악명 높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이다.
1차 세계대전에 비해 25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발발한 2번째 세계대전은 군사력이나 규모면에서 한층 진화된 형태로 나타났고, 그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손실을 낳았다. 그래서인지 2차 대전 기념비는 4군데의 전쟁 기념비 중 가장 웅장하고도 활기찬 모습이었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기하학적 모양의 분수는 시간대별로 크고 작은 물줄기를 뿜어내며 노천 수영장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고, 미국의 주 이름이 새겨진 분수 주위의 기둥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놀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을 기리는 장소는 그렇게 도심 속 공원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에 비해 1차 세계대전 기념비는 연못에서 조금 떨어진 녹지 한중간에 숨어 있어서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에 의하면 생각보다 소박한 모습이어서 조금 놀라긴 했는데, 2차 대전과의 규모를 비교하면 이 아담한 신전의 형태가 오히려 1차 대전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2차 대전으로 어설픈 민족주의는 물러나고, 대신 그 자리에 '공산'과 '민주'라는 양대 축이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세계는 냉전 체제에 돌입한다. 다시 말하면 전쟁은 종식되었지만 이념 분쟁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잔재를 마지막으로 불태운 것이 바로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 전쟁이다.
링컨 기념관의 한쪽에서 발견한 한국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는 꽤나 흥미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총 19개의 동상이 삼각구도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동상의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생생하고 역동적이어서 마치 지금이 전시 중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념비의 한쪽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Freedom is not free.
잊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이념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극동의 조그만 아시아 국가에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참전하고 죽어갔다는 걸. 그 엄청난 희생 속에서 공산과 민주라는 두 이념이 한반도를 갈라놓았다는 걸. 그러니 이만한 인류의 오래된 숙제가 또 어디 있겠나.
한국 전쟁 기념비 맞은편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역시 이념 전쟁의 또 다른 산물이다. 베트남도 2차 대전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공산과 민주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다만 한국 전쟁과의 차이점이라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쪽이 패하고,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되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6.25 이후 '한강의 기적'을 달리고 있던 우리나라도 참전한 전쟁으로, 우리에겐 '월남전'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어찌 됐든, 이념 분쟁은 다시 한반도로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그리 걱정되지 않는 건 분단국가에서 살아온 세월의 내공 탓일까. 어차피 우리 인간들은 늘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왔으니. 완벽한 민주주의도 공산주도 없다는 것을 지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또 다른 답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길을 모색하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실패하면서 얻게 되는 '면역력'이 우릴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거다. 그 힘이 언젠가는 '전쟁'에서 '평화'로 인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