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내셔널 몰로 가는 길에 수없이 지나쳤던 저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포드 극장(Ford's Theatre)이었다. 맞은편에는 저격당한 그를 옮겨 치료했던 피터슨 하우스(Petersen House)가 역사적 장소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덩달아 링컨의 이름을 내건 베트남 음식점도 있었다. 이렇게 티 나게 명소 냄새를 풍기고 있었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결국 시간이 안 맞아서 극장에는 못 들어가 봤지만, 링컨은 어딘가 특별했다. '암살당한 대통령'이 주는 임팩트도 강렬했고, 수많은 지도자들의 롤모델로 귀감이 될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먼저 접했던 위인전도 바로 그였다. (참고로 만화책이다.) 개척 시대에 몸으로 노동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수없이 많은 사업 실패와 낙선 끝에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에이브러햄 링컨. 그의 흔적을 워싱턴에서따라가 본다.
하느님이 백인에게 자유를 주셨듯 흑인에게도 자유를 주셨으니 오늘 모든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 선언'과 함께 노예들에게.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링컨 대통령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있다. 제목도 심플하게 <링컨>이다. 2시간 30분이나 되는 기나긴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노예제 폐지'에 대한 헌법 수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거기다 수많은 대사와 인물과 심리가 얽히고설켜 자칫 지루해질 만도 한데, 스필버그 특유의 디테일이 들어간 까닭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긴장과 스릴로 땀을 쥐게 만들었다. 도대체 링컨은 왜, 뭣 때문에 그토록 '노예해방'에 집착했던 걸까?
노예제도가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건 1852년에 출간된 스토우 부인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비롯된다. 켄터키 주에 사는 흑인 노예 톰이 착한 주인과 악랄한 주인을 번갈아 만나면서 겪는 고생기로, 결말은 심한 구타에 의한 사망. 그 와중에도 자신을 때린 주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쓸데없이 착한 성격의 소유자. 요즘 같으면 밤고구마 억만 개 먹은 마냥 답답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건만, 그 시절 기독교의 착함이 강조된 미국 사회에서는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노예해방 문제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게 된다.
링컨 역시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긴 했지만, 처음부터 인도주의를 표방한 건 아니었다. 그 당시 노예제도는 각 주의 자치권에 속한 문제였기 때문에 연방정부에서 관여할 사안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 간의 입장 차이에 있었다. 농업 중심의 남부에서는 노동력의 주를 이루는 노예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반면, 공업 중심의 북부에서는 소수의 저임금 노동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남북 간의 의견대립은점점고조되어 갔고, 급기야 남부의 주들이 연방정부를탈퇴하면서남부연합을 따로 조성하기에이른다.이런혼란스러운정치상황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된사람이바로 링컨이다.
남부연합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이를 우려한 링컨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바로 노예제 폐지를 강행함으로써 남부를 자극시켜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이었다.전쟁을 일으켜서라도 그는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지 한 달 만인 1861년 4월 12일, 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공격하면서남북전쟁이 시작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임기 내내 전쟁을 치러야 했지만, 의도야 어떻든 미국을 통합시키고 노예를 해방시켰다는 팩트는 변하지 않기에,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이 전쟁에서 내가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연방 회복이지, 노예해방이나 노예제도 폐지가 아니다. 단 한 명의 노예도 해방하지 않고 연방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만약 모든 노예를 해방해야 연방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역시 그렇게 하겠다.
-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의 <역사의 오류> 중
조지 워싱턴의 도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내셔널 몰의 끝에는 링컨 기념관이 신전처럼 우뚝 서 있었다. 비록 민족상잔의 비극은 1,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연맹'에 가깝던 북미 대륙을 진정한 의미의 'united'된 미합중국으로 탄생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기념관 안에는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발표한 연설이 새겨져 있었다. '국민'을 3번이나 강조한 이 유명한 연설은 훗날 민주주의의 이념을 가장 잘 녹여냈다는 평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숱하게 인용되고 있다.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