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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Sep 01. 2020

워싱턴의 모든 것,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아메리카 기행 - 워싱턴 3

인류의 지식 증진과 보급을 위한 시설을
미국의 워싱턴에 짓는 데 전 재산을 기증하겠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과학자 중에 제임스 스미스슨(James Smithson)이란 사람이 있었다. 부유한 귀족이면서 광물학자였던 그는 영국이 아닌 미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 전 재산을 기증했는데, 그 액수가 무려 50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 환율로 환산해도 6억이 훌쩍 넘는 돈인데,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을 터. 미국에 가본 적도 없는 그가 죽기 전에 굳이 신대륙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이 장차 세계 인류의 전시장이 되리라는 걸 예측이라도 한 것일까?


그런 그의 이념을 기리기 위해 미국 정부에서는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이란 협회를 만들고 각 분야별 박물관을 도시마다 설립하였다. 그리고 무료 개방이란 원칙 하에 지금까지 자발적인 기부금과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해오는데, 액수야 어찌 됐든 사람의 기부에서 시작된 일인류의 지적 성장널리 이바지하있으 이만한 교육 사업이 어디 있겠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지.

스미스소니언 협회에 소속된 박물관 중 무려 13곳이 워싱턴에 있어서 여기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박물관에서 보냈다. '당신의 시조를 찾아보라'는 센스 있는 문구가 박혀 있는 자연사박물관, 라이트 형제의 실험정신부터 21세기 우주 기술까지 업데이트가 상당히 빨랐던 항공우주박물관,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내셔널 갤러리와 취향이 독특했던 허쉬혼, 동양 미술부터 아프리카 종교까지 가장 다양한 스펙트럼을 커버했던 프리어 갤러리, 이 모든 박물관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스미스소니언 본관까지... 과연 '미국의 다락방'이라 불릴 만큼 세상의 거의 모든 역사와 추억이 바로 이곳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인디언 박물관이라 하겠다. 사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거대한 모래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이 독특한 외관부터 호기심이 생겼고, 들어가자마자 나의 시선을 강탈한 '인디안밥' 때문에 빵 터졌던 기억. 한국에서도 사라져 가는 추억의 과자를 미국의 박물관에서 보게 될 줄이야. 아마 농심은 저 인디안밥 덕분에 인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시작부터 대한민국의 국민과자에 심쿵하긴 했지만, 그 외에도 인디언을 주제로 한 각양각색의 아이템을 보면서 이곳의 모든 컬렉션이 궁금해졌다. 이 박물관은 단순히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미국 특유의 재치와 감각까지 더해져서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 느낌이었다.


Pocahontas didn't save John Smith.
She saved America.


미국 전역에서 자유의 개념을 강조하며 '여신'을 드러냈듯 인디언에도 여성 인물인 '포카혼타스'를 강조시킨 것 또한 흥미로웠다. 참고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존 스미스와 썸을 타는 성숙한 여인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그녀가 존 스미스를 구했을 때의 나이는 불과 12세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존 스미스가 그녀의 사연을 영국 여왕에게 알리면서 포카혼타스는 당시 유럽개척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는데...

하지만 결국 미개한 쪽이 우월한 쪽에 먹히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걸까. 곧 대대적인 인디언 숙청 사업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이 몰고 온 각종 세균이 원주민의 청정 지역에 퍼지면서 의도치 않은 대학살이 일어나는데, 이에 대한 내용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도 잘 나와 있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몰랐는데 2달러에 나온 토머스 제퍼슨과 20달러에 나온 앤드류 잭슨이 인디언 숙청 사업에 특히 앞장섰다는 사실.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의 3대 대통령으로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였으며, 벤자민 프랭클린과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인디언을 백인 거주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이주시킬 것을 주창했고, 이에 백인우월주의였던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제정함으로써 본격적인 인종 청소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법의 주된 내용은 인디언을 백인이 잘 살지 않는 오클라호마 쪽으로 강제 이주시킴으로써 백인 중심 사회를 구축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멸족시킨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동부에서 남부 중심에 있는 오클라호마까지 머나먼 거리를 원주민들은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배고픔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 길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 불렀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두운 과거일 텐데도 숨기지 않고 만인이 드나드는 박물관에 전시해놓음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는 그 태도가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의 지식 증진과 보급에 이바지하겠다'는 스미스슨의 이념 역시. 워싱턴의 이념과 스미스슨의 이념, 이것만으로도 워싱턴 D.C.는 충분히 올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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