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기행 - 워싱턴 2
미국에서 정부 기관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한다.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을 비롯하여 UN 본부 같은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홈페이지에서 유료나 무료로 운영되는 투어를 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수기에는 한 달 전부터 투어 일정을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다.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어 예약이 꽉 차는 경우가 허다한데, 내가 방문했던 8월 중순만 하더라도 국회의사당 투어 한 타임이 겨우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나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선택권인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길, 저 멀리 웅장하게 서 있는 화려한 웨딩 케이크 같은 외관에 잔뜩 기대했건만, 정작 여기서 머물렀던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방학 시즌이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그런지 투어를 속성으로 진행시킨 까닭이다. 영상 시청 15분에 내부 투어는 두어 군데만 돌아보고 끝. 인터넷에서 찾아봤던 장소의 반만 보고 나와야 하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 와중에도 귀에 수없이 꽂힌 단어가 있었다. 바로 뉴욕 자유의 여신상 편에 썼던 'Liberty'였다.
National Statuary Hall의 천장 구석에 자세히 보면 여신이 하나 서 있는데, 뉴욕에서 봤던 자유의 여신과 다른 형태지만 이 또한 'Liberty'이다. 무심코 지나쳤는데 국회의사당의 돔 꼭대기에 있는 동상 역시 자유의 여신이라고 한다. 실내의 여성미가 강조된 것과 달리 꼭대기에는 깃털 달린 호구를 쓰고서 칼까지 찬 여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홈페이지에는 'Statue of Freedom'이라고 나와 있지만 투어가이드는 'Liberty'라는 단어로 통일해서 설명했다. 세상 어디에 이토록 '자유'가 강조된 나라가 있을까.
여전사 바로 아래에 있는 돔의 천장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제목이 'The Apotheosis of Washington(워싱턴의 신격화)'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지은 만큼 이 도시에는 그를 오마주한 구조물이 많은데, 국회의사당 돔의 천장화로까지 새겨져 있을 줄이야. 게다가 여신의 형태라니! 이쯤 되면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로 불러야 할 판.
초대 대통령이어서 1달러짜리 지폐에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바로 조지 워싱턴이다. 1775년에 발발한 미국 독립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만장일치로 당선된 전대미문의 대통령이며, 두 번의 임기를 끝으로 깔끔하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금까지 모범적인 정치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
그 시절 만장일치로 지도자에 당선될 정도면 충분히 독재가 가능했을 텐데도, 권력에 취하지 않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몸소 실천했던 조지 워싱턴. 그의 청렴한 정치관은 퇴임할 때 발표했던 고별사에도 잘 나와 있는데, 그가 보여준 '떠날 때를 아는 자의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연임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잠식을 좋아하는 기질은 모든 부서의 권한을 하나로 통합하여 사실상 전제 정치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헌법적 권한의 배분이 잘못되었다는 국민의 여론이 나온다면, 그것은 헌법 규정에 따른 개정을 통해 시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다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 조지 워싱턴의 '고별사(Farewell Address)'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