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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Aug 29. 2020

워싱턴 DC에 가야 하는 이유

아메리카 기행 - 워싱턴 1

미국 경제의 중심이자 필라델피아가 수도로 지정되기 전에 임시 수도이기도 했던 뉴욕에서 한 달이나 있었기 때문에, 행정수도로 건설된 계획도시 워싱턴(Washington, D.C., 이하 워싱턴)을 굳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히 고민했었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신행정수도를 건설한 사례는 여럿 있었지만, 기존 수도의 역할이 일부 분산되었을 뿐 여전히 사람들은 오랜 역사가 담긴 옛 수도로 몰리는 현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획도시'라는 말에서 풍겨 나오는 획일적이고도 심심한 어감 또한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기존의 행정수도 이전 사례와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1790년에 수도로 지정된 이후 1800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계획 과정을 거쳤고, 그 후 1814년에 발발한 영국과의 2번째 독립전쟁에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등 주요 정부 기관이 소실되고 복구되기를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200여 년이란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1945년 광복 이래 대한민국의 수도로 활약해온 서울보다 더 깊은 현대의 역사를 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워싱턴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세계 최대 박물관 테마 파크인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에도 박물관은 많이 있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우위의 다양한 주제와 웅장한 규모, 그리고 무료입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곳만의 혜택이다. 그런 이유로 '박물관보다 시장'이었던 기존의 여행 패턴을 깨고 워싱턴에서 머무는 3일 내내 박물관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 일주일을 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전시문화공간이란 것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머무는 시간이 천차만별이기에.


내셔널 몰의 박물관에서 느꼈던 인상적인 것 중 또 하나는 바로 뿌리 깊이 배어 있는 기부 문화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습관처럼 기부함에 들러 소신껏 문화 비용을 지불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경험이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주는 혜택을 누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의무 또한 행할 줄 아는 이 도시의 시민 의식도 느껴졌다. 이런 걸 보면 그 지역의 문화 수준을 짐작하는 데에는 박물관만 한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워싱턴은 홈리스도 별로 없었다. 세계 경제의 상징이 모두 집적되어 있음에도 거리마다 넘쳐나는 노숙자로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었던 뉴욕에 비하면, 한층 깨끗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워싱턴은 확실히 그보다 우위의 클라스를 보여주었다. 이는 10년간의 꼼꼼한 계획 하에 조성된 도시답게 필요한 기관과 인력이 적절하게 배치되도록 한 노력의 결과이리라.

내셔널 몰 끝에 있는 링컨 기념관의 거대한 계단은 워싱턴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이다. 무더운 여름에도 해 질 녘엔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는 이곳에는 정면으로 펼쳐진 물길이 있어 하루 종일 들떠 있던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혀 준다. 그렇게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과 민주 정치를 실현했던 링컨 사이에서 하루를 정리하던 시간들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만하면 워싱턴에 가야 할 명분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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