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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Aug 08. 2020

자유의 여신상과 이민 역사

아메리카 기행 - 뉴욕 11

어린 시절 나의 취미는 집에 있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보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알라딘>은 설화 문학 <아라비안 나이트>를 모티프로 중동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수준 높은 그래픽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보여준 인생 최고의 만화였다. 얼마나 자주 돌려봤으면 대사를 거의 외울 지경이었는데,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전지전능하지만 램프에 속박될 수밖에 없었던 웃픈 캐릭터, 지니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소원을 말했을 때이다.


Freedom.


'자유'는 지니의 소원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알라딘>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의 공통된 소원이기도 하다. 하층민 알라딘은 신분의 자유를, 공주 자스민은 가고 싶을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자파는 왕의 제재에서 벗어나 직접 통치하고픈 자유를, 왕은 책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지혜의 자유를, 그리고 앵무새 이아고는 아마도 자파의 간신배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디즈니사에서는 자유를 'freedom'으로 표현했지만, 미국에서 이보다 더 많이 들었던 단어는 바로 'liberty'였다. 이 두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Freedom is the state of being allowed to do what you want to do.

Liberty is the freedom to live your life in the way that you want, without interference from other people or the authorities.


간단히 말하면 freedom은 개인의 자유이고, liberty는 공공의 자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알라딘>의 지니가 말한 자유는 개인적인 freedom이고, 내가 뉴욕과 워싱턴 등 미국의 도시에서 보고 들었던 자유는 미국이라는 이민 정착의 역사로 이루어진 독특한 사회에서 가장 중시될 수밖에 없었던 공공의 이념 liberty였던 것이다. 오늘은 이 liberty의 결정체,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 본다.

맨해튼의 최남단 땅끝마을에 Battery Park라는 멋진 공원이 있다. 넓은 잔디밭 너머로 서쪽의 허드슨 강과 동쪽의 이스트 강이 만나는 절경을 해질녘쯤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공원의 한쪽에는 1808~1811년 동안 영국과의 전쟁을 대비하여 쌓아 올린 클린턴 요새(Castle Clinton)가 있다. 마천루 앞으로 예스러운 붉은 성벽이 있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인데, 그 앞에 더욱 시선을 강탈하는 구조물이 보인다. 바로 세상의 모든 이민자들에게 바친다는 동상 'The Immigrants'이다.


동상의 포즈와 표정은 하나같이 역동적이면서 생생하다. 그 모습이 마치 <알라딘>의 지니가 소원을 말했을 때의 절박했던 표정과 사뭇 닮았다. 그들은 신분과 계급이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유럽 사회에서 벗어나 신대륙에서의 새로운 희망을 좇아서 이곳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이들을 맞이했던 첫 번째 관문이 엘리스 섬에 있는 이민국이었을 테고, 두 번째로 거쳐간 곳이 바로 클린턴 요새였다. 영국과의 전쟁 후 클린턴 요새는 한동안 이민국 사무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엘리스 섬의 이민국에 대한 모습은 영화 <대부 2>와 <브루클린>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브루클린>에서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이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뉴욕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그 시절의 이민 심사가 얼마나 까다롭고 긴장되는 과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절대 쫄지 말고 당당하게 대답할 것. 같은 배에 탔던 이민 선배가 해준 말이다. 가고자 하는 명분이 바르게 섰다면 을이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고자 하는 명분이라...


사실 나도 한때 '탈조선'을 꿈꾼 적이 있다. 회사에서는 미래가 안 보이는데, 같은 엔지니어링 학위를 유럽 사회에서는 높게 쳐준다고 하니 한동안 혹해서 카페에도 가입하고 ielts를 준비하기도 했었다. 그 나라의 언어도 안 되면서 '감히' 그랬다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감히' 그랬다는 것이다. 이민은 커리어 하나로 퉁쳐지는 게 아닌데... 어리석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페리에 올랐다.

배가 출발하자 그제서야 맨해튼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운이다. 그것도 공짜 페리를 타고서. 고맙게도 뉴욕시에서는 맨해튼과 스테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 사이를 왕복하는 주민들을 위해 무료 페리를 운행하고 있었다.

곧 푸른색의 자유의 여신이 가까워진다. 정식 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로마 신화에 나오는 자유의 여신 리베르타스(Libertas)와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 이민의 역사가 더해져 이념으로써의 liberty가 더욱 온몸으로 와 닿는다. 무더운 여름날 선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

너의 풍성한 해안가의 가련한 족속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 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 올릴 터이니.

- 에머 래저러스의 <새로운 거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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