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aveLife Aug 04. 2020

로어맨해튼의 중심 차이나타운

아메리카 기행 - 뉴욕 9

처음 뉴욕에 왔을 때, 그러니까 한 달 살이 숙소를 구하기 전의 일이다. 숙소가 어디로 구해질지 알 수 없으니 그때까지는 맨해튼의 심장부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서 일부러 타임스퀘어 인근의 호스텔에 묵었다. 과연 온갖 주요 시설과 랜드마크가 집적된 CBD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거의 분 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타임스퀘어의 광고판부터 삐까뻔쩍한 명품거리 5번가, 그리고 도심 속의 숲과 같은 센트럴 파크는 이른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절대 인적이 끊이지 않았다. 듣던 대로 맨해튼은 잠들지 않는 도시였다. 그리고 꽤 안전한 곳이라고도 생각했다. 한밤중에 혼자 돌아다니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한 달 살이 숙소를 보러 가던 날, 타임스퀘어에서 한없이 멀어져가는 길이 점점 불안해졌다. 시내에서 너무 떨어진 건 아닐까... 그러던 중 하우스턴 거리를 지나자마자 고풍스러운 바워리 은행이 눈에 들어왔고, 건너편에는 한자 간판이 얽히고설킨 차이나타운이 나타났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상하게 이 동네가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 건.

이 육중한 바워리 은행을 기점으로 뒤에는 리틀 이태리(Little Italy), 아래쪽으로는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리틀 이태리는 누아르 영화의 끝판왕 <대부 2>의 배경이기도 하다. 1편보다 더 재미있었던 프리퀄 형식의 2편에는 젊은 시절의 비토가 어떻게 미국까지 오게 되었으며, 엘리스 섬의 이민 관문을 거쳐 대부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주연을 맡았던 로버트 드니로가 꽤 강렬하게 나와서 이탈리아 이민 사회는 꽤 방대할 줄 알았는데, 몇 블록이 채 안 되는 조그만 구역이었고, 실제 로어맨해튼의 중심은 다름 아닌 차이나타운이었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차이나타운은 남부 맨해튼의 정중앙에 V자로 분포해 있어서 이 일대를 다니다 보면 어떻게든 지나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쪽의 소호, 북쪽의 리틀 이태리, 쪽의 로어이스트, 남쪽의 파이낸셜 디스트릭트가 전부 차이나타운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숙소는 정확히 차이나타운과 로어이스트 사이에 있었는데, 중국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와 같은 입지가 최고의 장점으로 다가왔다. 우선은 낯선 땅에서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제일 컸고, 무엇보다 맛있고 저렴한 중국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동네는 택스도 안 붙는다.

숙소 때문에 의도치 않게 동네 주민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여행지가 아닌 맨해튼의 한 구역으로 받아들였기에 차이나타운의 일상이 곧 내 일상이 되었다. 여기는 맨해튼의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시끄럽고 조금 더 무뚝뚝하며, 어떤 곳은 참을 수 없이 지저분했다. 하지만 미드타운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노숙자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악취도 만만찮았기에 냄새에는 곧 둔감해졌고, 동네 주민 같은 마인드가 되다 보니 스쳐가는 수많은 인종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왔으며, 맨해튼을 씹어 삼킬 듯이 걸어 다녔던 나는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심성의껏 가르쳐주었다. 그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이 동네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중국을 알기 전에는 나 역시 중국이 두려웠다. 길에서 납치 당하고 택시 타면 장기 떼어가는 나라라는 유언비어를 믿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도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늘 관심을 가지고 그 문화를 존중하는 과정에서 나의 지식도 어느새 더욱 단단해진 느낌. 아는 만큼 두려움도 사라지는 법이다. 그렇게 쌓인 내공이 타지에서 중국을 만났을 때 여지없이 발휘되는 걸 보면.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못지않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나를 보면.

이전 09화 소호에서 허드슨 야드까지 내가 사랑한 커피 로드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