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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Aug 03. 2020

소호에서 허드슨 야드까지
내가 사랑한 커피 로드 (2)

아메리카 기행 - 뉴욕 8

소호에서 하우스턴 거리를 지나 뉴욕대 쪽으로 올라가 본다. 우리나라의 대학가처럼 캠퍼스가 조성된 게 아니라 여러 단과대학이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산재해 있는 뉴욕대. 육중한 붉은색의 도서관 Bobst Library 건물이 아니었다면 대학가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다. 이런 곳에 웅장한 개선문이 있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이 있다는 건 신의 한 수나 다름없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은 센트럴 파크나 브라이언트 공원에 버금갈 만큼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감미로운 OST로 유명한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기억하는가. 영화 음악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연주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음악적 소울이 충만한 버스킹 아티스트들을 여기서는 꽤 자주 만나게 된다.


음악은 사랑을 만들고, 사랑은 음악을 만든다.


영화의 명대사처럼 그 울림이 서로에게 전해진 건지 영화 주인공인 천재 음악 소년과 아버지는 이 공원에서 조우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은 현실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여행자로 돌아와 계속 댄디하게 걸어가 본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Bleecker Street를 따라 그리니치 빌리지를 가로지르면 익숙한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거대한 커피 백화점이라 할 수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Starbucks Reserve Roastery)이다. 국내에는 아직 프리미엄 커피를 판매하는 스타벅스 리저브까지만 들어왔는데, 로스터리는 거기에 커피빈을 볶아내는 공장까지 있는 것이다. 천장을 휘감고 있는 관으로 로스팅된 콩이 이동하는 가운데 바리스타들이 직접 커피를 내려주고, 거의 모든 굿즈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의 경험은 독특했지만 결코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안 계속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통에 정신이 없어서 커피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카페 문화를 선호한다면 로스터리보다는 그냥 일반 스벅 매장을 추천하고 싶다.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를 지나면 바로 다음 블록에 첼시 마켓(Chelsea Market)이 나온다. 과거에 과자 공장이었던 이곳은 현재 여러 가지 식품 매장이 들어서 있어 지나는 길에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곳이다. 특별히 맛집 찾아다니는 걸 즐기지 않는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첼시 마켓 끝에서 시작되는 하이라인 산책로 때문이었다.


하이라인(High Line)은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처럼 버려진 고가철도에 산책로를 만들어 공원처럼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사진상으로는 감이 잘 안 잡히겠지만, 거의 육교와 같은 높이에 이런 기다란 산책로가 도심 속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소호와 함께 갤러리 문화가 발달했던 챌시 지역의 독특한 건물 디자인과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 끝은 허드슨 야드(Hudson Yards)로 이어지는데, 거기에 또 하나의 환상적인 구조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2019년 3월에 완공된 베슬(Vessel)은 로즈골드 빛깔의 벌집 모양 같은 독특한 구조물로, 그 안에는 끝없는 계단과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만이 존재한다. 천장이 뚫려 있어서 위로 올려다보나 아래로 내려다보나 어디서든 장관을 연출하는데,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마주하는 허드슨 강과 뉴저지의 전망이 압권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건 브루클린과 비슷한데, 뉴욕시와 다른 행정구역이라는 점이 뉴저지를 좀 더 특별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전설적인 락 밴드 본 조비(Bon Jovi)도 뉴저지 출신이 아니던가. 오마주하는 느낌으로 그들의 4집 앨범 <New Jersey>를 들어주었다.

베슬에서 다시 하이라인으로 올라가는 길에 굉장히 철학적인 이름의 카페를 발견했다. 그저 조그만 동네 카페인 줄 알았는데, 띵크커피(Think Coffee)는 공정 무역을 슬로건으로 하는 뉴욕의 유명한 커피 브랜드였다. 내부는 어딘가 7080스러웠고, 메뉴판에는 cafe latte와 cafe con leche와 spanish latte가 혼재하여 뭔가 체계적이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가격이 다른 곳보다 저렴하고 커피 맛도 은은했다.


이곳 띵크커피 매장에서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바로 와이파이가 안 되는 거였다. 카페에서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없다니 말도 안 된다며 두 번 다시 안 올 거라 생각했지만, 뉴욕에 있는 동안 나는 로어이스트에서 소호를 거쳐 하이라인까지 꽤 자주 산책을 했고, 그럴 때마다 손에는 띵크커피가 들려 있었다. 매장의 와이파이가 안 되는 대신 띵크커피는 이름 그대로 산책하며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다. 그렇게 하이라인에서의 산책은 공공도서관 다음으로 뉴욕의 커다란 즐거움이자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What's next?


하이라인의 끝에 있는 표지판에 새겨진 문구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여기까지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가게 될까? 나는 또 어떻게 될까... 생각으로 인도하는 이 커피 로드가 언젠가 내게 답을 찾아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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