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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Aug 02. 2020

소호에서 허드슨 야드까지
내가 사랑한 커피 로드 (1)

아메리카 기행 - 뉴욕 7

숙소가 있는 로어이스트에서 위로 2블록 올라가면 소호까지 이어지는 South of Houston 거리가 좌우로 길게 뻗어있다. 소호(SoHo)라는 지명도 이 거리명에서 따왔다. 한 가지 특이한 건 Houston의 발음이 '휴스턴'이 아닌 '하우스턴'이라는 것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수 (지금은 작고하신) 휘트니 휴스턴도 휴스턴이고, 미국 텍사스 주의 공업 도시 휴스턴도 그냥 휴스턴인데, 왜 '굳이' 뉴요커들은 하우스턴으로 발음하는 것일까? 텍사스의 휴스턴은 텍사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샘 휴스턴(Sam Houston)에서 유래되었고, 뉴욕의 하우스턴은 미국 식민지 대륙회의의 대표였던 윌리엄 하우스턴(Willam Houston)의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라고 한다. 같은 스펠링이라도 사람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 영어의 발음 체계는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확한 리스닝을 위해 링크 하나를 공유하니 참고하시길.


처음부터 이름이 헷갈리긴 했지만, 이 하우스턴 거리는 숙소에서 시내로 나가는 첫 관문이자 뉴욕에서 가장 많이 걸었던 길이다. 녹지형 중앙분리대가 있는 6~8차선의 거대한 도로가 이스트에서 소호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길찾기도 쉽다. 이 도로를 따라 일단 소호까지만 가면 그 위로 그리니치와 챌시, 그리고 허드슨 야드까지 죽 이어지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보통의 하루는 오전 10시쯤 숙소를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 다다를 하우스턴 거리에서 적당한 카페에 들러 그날의 커피를 음미해본다. 공공도서관의 무료 강좌가 시작되기 전 1~2시간의 카페 탐방은 뉴욕의 아침을 더욱 설레고 풍요롭게 해 주었다.

뉴욕에서의 첫 카페 경험은 다름 아닌 블루보틀. 특별히 여기를 가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고, 그냥 로어이스트의 어느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 설마 저 한가한 동네 카페가 그 유명한 블루보틀이란 말인가? 분명 내가 뉴욕으로 떠나올 때쯤 한국에 막 상륙한 블루보틀 1호점에서는 몇 시간 동안 기나긴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명성에 비하면 첫인상이 너무나 소박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참을 수 없는 여유로움'도 로어맨해튼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미드타운 쪽으로 갈수록 블루보틀이든 스타벅스든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주문도 서바이벌급으로 빠르게 진행되니까.


화이트와 나무톤이 어우러진 정갈한 매장에서 시그니처 메뉴인 뉴올리언스를 시켜보았다. (비록 난 black coffee person이지만.) 콜드 브루 베이스에 유기농 우유가 들어갔다는데, 커알못인 나에게는 그냥 진한 믹스커피 맛. 하지만 우유 취향도 물어봐주고, 종이 빨대가 괜찮겠냐며 뭔가 많이 신경 써주는 듯한 직원의 어투에 심쿵했고, 그 서비스 정신 때문에 여기를 아주 자주 찾게 되었다. 더군다나 저 심플한 창가 자리는 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한결같이 비어있었다.

로어이스트에서 하우스턴 거리를 따라 소호로 내려가 본다. 원래 공장 지대였던 소호는 대공황을 거치면서 공장들이 하나둘씩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비어 있는 건물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활기찬 예술의 중심지로 재탄생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소호의 임대료는 점점 치솟게 되는데, 이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등 외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결과 현재 소호에는 비싼 수준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명품샵과 부티크 위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처음부터 소호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쇼핑가를 굳이 시간 내서 방문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우스턴 거리를 지나는 길에 어쩌다 잠시 들르게 된다면 모를까. 그런 내가 작정하고 소호로 향하게 된 이유는 바로 중고샵 때문이었다. 외지에서 없으면 불편하지만 새 것을 사기에는 애매할 때 중고샵은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thrift shop이 바로 소호에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thrift shop은 중고를 파는 곳이긴 했다. 그 분야가 책에 한정되었을 뿐. 풀네임은 Housing Works Bookstore Cafe. 어찌 됐든 오랜만에 발견한 서점이 반갑긴 하다. 서점은 정적인 도서관과는 다른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므로. 더군다나 새책이 아닌 헌책을 팔기 때문에 부담 없이 둘러볼 수도 있고, 곳곳에 앉아서 읽을 공간도 많았다. 물론 나는 거의 커피를 마시러 왔지만. 창가 자리가 아닌 책장 옆자리도 커피를 마시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었다. 저 헌책들은 저마다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상상하며 시원한 라테를 홀짝이던 여름날의 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중고가 필요해서 우연히 찾아오긴 했지만, 여기는 알고 보니 꽤 핫한 북카페였다. 이곳의 책은 뉴욕 시민의 기부로 모아진 것이고, 직원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며, 수익금 전액은 에이즈 환자와 노숙자들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룩한 취지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의 몇 안 되는 도시를 둘러보는 동안 거리마다 넘쳐나는 노숙자들을 보며 좀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이런 경제 대국에 어찌 거지가 인도만큼이나 넘쳐날까. 소호의 Housing Works Bookstore Cafe처럼 사적이든 공적이든 복지수급자들을 위한 정책을 그동안 수없이 실행해왔을 텐데도 그 수치는 절대 줄어들지 않는 걸까... 이건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자꾸 같은 패턴이 반복되니 언제부턴가 정체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연히 찾은 이 조그만 동네 헌책방이 이렇게 또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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