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애호의 초심을 다시 찾아서

WONDERLAND FESTIVAL 2025 [공연]

by 윱인

뮤지컬을 좋아한 지도 벌써 11년 차가 되어간다. 제대로 된 공연을 처음 본 건 대학교 2학년이 된 해였던 2016년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한 오스트리아 뮤지컬인 '모차르트!'였다. 나는 그날 그 공연을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날 모차르트를 연기했던 배우를 여전히 지금까지도 덕질하고 있는 중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공연 실황 영상들을 보며 고3 시절을 보내왔다지만, 직접 실제로 공연을 본 순간 '아, 나 이거 엄청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다.'라는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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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업만 보고도 기대가 되긴 또 오래간만이었다. 나는 특히 '라민 카림루'와 '브랜든리'로 인해 이 공연을 꼭 보러 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애초 봄과 여름 사이에 야외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던 이 페스티벌은 악천후로 인해 겨울로 미뤄졌다. 공연 당일인 2026년 1월 11일은 정말 추운 한파의 날씨였지만, 라인업을 기대하며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대조적으로 가벼웠다. 그리고 공개된 라인업보다 실제 공연은 훨씬 더 풍요로웠다.


공연은 브랜든리의 대표 창작 뮤지컬인 <프랑켄슈타인>의 '서곡(Overture)'으로 시작되었다. 그 곡을 듣자마자 나는 눈물이 눈에 맺히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곤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리스트에 TOP으로 손꼽는 뮤지컬 중 하나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엔 공연을 봐도 눈물을 흘릴 만큼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되지는 않으려곤 하는데, 뮤지컬을 처음 실제로 보았을 당시만 해도 극속의 곡에서 표출되는 '감정적인 포인트'에 감화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내게는 <프랑켄슈타인>의 대표 멜로디가 마치 동화 '플란더스의 개'가 하는 조건 반사 행동 마냥 자동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곡이었던 것이다.


공연은 유수의 뮤지컬 배우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뮤지컬 속 여러 넘버를 선보이며 공연의 열기를 더해갔다. 새삼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내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판 지가 도합 1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뮤지컬과 넘버가 다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내 뮤지컬 애호가 가진 편식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 애호란 본디 편향되기 마련 아닌가?'라고 합리화하면서도, 여전히 더 좋아할 수 있는 여지와 미지의 영역이 있어 설렐 수 있음에 감사해했다.


편식과 골고루 먹기 사이에서 균형추를 재보던 와중, 내가 기다리던 두 번째 배우인 '라민 카림루'가 등장했다. 라민 카림루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제작자이자 작곡가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유령 역할을 연기했던 세계적인 배우이다. 그러니까 짧게 요약하자면, 나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연의 가장 베스트 버전을 연기한 배우를 내 눈 앞에서 실제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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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년 기념 콘서트 버전 <오페라의 유령>은 음악 교사셨던 엄마의 보물 창고에 있는 뮤지컬 DVD를 우연히 집에서 틀어보다가 알게 된 전설의 공연이다. 고전 정통의 비극적 면모를 보이면서도 장렬미가 느껴지는 이 뮤지컬은 그 이후 나의 20대 중반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열렬히 희망하고 바라며 듣던 와중, 2018년도에 그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념 콘서트를 보러 갔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8년만에 다시 그를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다.


이날 라민은 한국에서 '크리스틴'을 연기한 손지수 배우와 함께 환상의 호흡을 맞추면서, 오페라의 유령 속 유령이 되기도 또 라울이 되기도 했다. 그들의 듀엣곡 그리고 솔로곡을 들을 때면, 내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좋아했던 나날들에 대한 애절한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아, 이래서 내가 뮤지컬을 좋아했구나." 묵직한 감동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어둑한 그래서 한정된 몇 피트의 공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악기 연주 소리만으로 장내의 분위기를 장악시키고, 나는 이내 장악되는 그 느낌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뭐든지 오래 좋아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시금 내가 뮤지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진심과 울림의 감정에 대한 초심'을 묵직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 뮤지컬로 인해 내가 꾸었던 꿈이 주는 설렘을 다시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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