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조라 불렸던 사람이 본 판소리 뮤지컬 '적벽'

해학에서 판소리의 본새를, 꽉 채워진 사운드에서 뮤지컬의 본새를.

by 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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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의 별명은 '조조'였다. 십여년이 지나 삼국지의 인물 조조를 다룬 판소리 뮤지컬 [적벽]을 볼 기회가 생겼고, 공연을 보고 난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왜 조조로 불리었는지를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그 별명은 외할머니가 지어주신 별명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꾀가 많았고 영리하기도 해서 그렇게 부르시곤 하셨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 직접 여쭤보면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할머니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내가 첫 직장에 첫 출근을 한 날 갑작스레 돌아가셨기에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적벽]을 관람하고 나니 그리고 관람 이후 [삼국지], 정확히는 역사를 소설형식으로 기술한 [삼국지연의]를 대략 읽고 나니,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조조는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조조는 내가 듣고 자라온 그 조조의 모습보다 더욱 '꾀돌이'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꾀가 많은'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방법을 궁구하고, 그렇게 결국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마는 성미를 가진 사람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책략가이자 조조의 부하인 정욱 또한 꾀가 많지만, 조조야말로 그 형용사에 적격인 사람일 것이다.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대대적으로 패한 후, 지금 상황을 둘러봤을 때 자신의 목숨이 관우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 앞에 있는 상대는 은혜 갚는 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재빠르게 캐치하고는, 이전에 관우가 자신의 부하를 여럿 죽이고도 목숨을 살려주었던 때를 언급하면서 오늘 그에 대한 은혜를 갚도록 하는 것이 어떨지 관우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이라 하면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기 마련인데, 조조는 [적벽]에서 다뤄진 장면 이외에도 자신이 죽을 위기에 닥쳤다 싶으면 최선을 다해 도망간다. 그런 점에서 조조는 간웅-간사한 꾀를 가진 영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실리를 따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한때는 부하로 부리던 관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면서까지 살려달라고 빌지만, 결국엔 자기 자신을 비롯한 자기 부하들까지 모두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꾀가 많은 자로는 제갈공명이 있다. 어렸을 적 삼국지를 읽었을 때도 제갈공명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에서 그런 사람인지를 이번 [적벽]과 [삼국지연의]를 함께 다시-보기 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유비와 주유의 군대가 화공(火功)의 방법으로 조조의 군대를 치려고 하니 동남풍이 불지 않고 북서풍만 불어 치고 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제갈공명이 칠성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어 정확히 군대를 몰고 나가야 하는 날 동남풍을 불게 한다.


또 다음의 장면이 제갈공명의 지혜를 더욱 돋보이도록 한다. 주유가 제갈공명을 견제한 나머지 그를 제거하기 위한 계략으로 적진을 치기 위한 화살 10만 개를 10일 만에 준비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제갈공명이 3일 만에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는 유비가 보낸 20척의 배를 연결하여 조조의 군대에 북소리를 내며 다가가 혼란에 빠트리고, 놀란 조조의 군대가 빗발치듯 그 배들에 화살을 퍼부은 덕분에 제갈공명은 약속대로 10일 만에 10만 개의 화살을 3일 만에 모을 수가 있었다.


조조와 제갈공명의 지략에 견주지는 못하지만 필자는 초등학생 때 새로 출시된 고가의 닌텐도와 소프트웨어 칩을 사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심부름 리스트를 작성하여 갖가지의 방법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무일푼에서 시작했지만 구두 닦기, 설거지하기, 신발 정리하기 등등의 각가지 리스트를 찾아내어 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들에게 무자비하게 돈을 갈취(?)하곤 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반년 만에 22만원 가량이 12살의 손에 거머쥘 수 있게 되었고, 당당하게 그 돈을 쥐고 동네 대형마트에 가서 직접 골라 현금을 내밀었던 그러한 집념의 역사가 나에게도 존재한다. 그때부터 아마 본격적으로 조조라고 불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원하는 건 꼭 손에 넣고야 마는 집념을 가진 나의 모습이 혀를 내두르셨다.


지금은 그때의 집념이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어렸을 때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마침내 실현해내고야 마는 그때의 그 경험이 나에게 아직까지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삼국지 이야기는 끝없는 전쟁 속에서 삶과 죽음이 오가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 접한 삼국지 이야기는 나에게 조금 정제된 형태(삶과 죽음이 오가는 정도까지는 아닌 선에서)로 뜻하는 바를 꿈꾸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미시적인 일이었지만, 내 힘으로 전략을 짜고 결국엔 성취해낸 경험에 대한 선명한 그 느낌이 현재의 내가 다음의 무엇을 꿈꾸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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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판소리 뮤지컬 [적벽]은 한나라 말엽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운 실정의 상황으로부터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의형제가 되기로 결의하는 도원결의 장면 그리고 조조(위나라)의 백만대군을 유비(한나라)와 주유(오나라)의 군대가 무찌르는 적벽대전 장면 등의 [삼국지연의]에서 다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장면들을 압축적이면서도 잘 구현해내고 있다. 배우들의 옷에 달린 선의 자태들은 각 배우들이 움직이면서 그것이 흩날려질 때 그 모습이 유려하다. 무대 세트는 높낮이를 이용하여 능선을 만들어냄으로써 작은 규모의 무대 안에서도 전쟁의 긴박함을 충실히 드러낸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에 국립정동극장에 하우스 어셔로서 근무할 때 상연되었던 공연인지라, 더욱 애정이 가는 공연이기도 했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음악이 더욱 다채롭고 화려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연주진들이 장면 곳곳에 배치되어 극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에서 판소리의 본새를, 그리고 꽉 채워진 연주와 합창의 사운드는 뮤지컬의 본새를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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