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발레의 정체성 구축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공연]

by 윱인

한국 역사의 굵직한 획을 그었던 인물인 도마 '안중근'의 삶을 발레의 언어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나 역시 발레가 표현해낼 수 있는 이야기와 서사의 경계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 정도이지 않을까 하고 편협하게 생각해온 사람 중 한 명이었음을 부끄럽지만 여기서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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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레의 정체성 구축'. 이것이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과 같은 발레 레퍼토리를 기획한 M 발레단의 창작 모토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 걸까?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리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한국이 처한 역사적 위치는 현재 다음과 같은 단계에 놓여 있다고 감히 말해보고자 한다.


즉, 한국의 역사는 제국주의적 문화권으로부터 위압에 가까운 영향을 받아왔지만, 그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교류이건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 안에서 끊임없이 재구성하면서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적 발전을 이뤄내 왔는지에 대한 자기-구현의 단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역시 나실인 및 김은지 작곡가의 창작곡으로 이 극의 고유한 분위기를 구현해내는 발레곡을 배치한 동시에 파가니니, 차이코프스키, 생상스 등의 익숙한 클래식 음악을 추가로 배치함으로써 그 풍요로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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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제 더 이상 예술은 아름답고 어여쁜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는다. 자기 역사를 가진 인간으로서 '다뤄야 할' 이야기를 예술은, 그리고 나아가 발레는 이제는 다룬다.


인간은 기억하고 기록하는 존재이기에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길 원하는 그 누구든 발레의 언어를 통해 구현되고 표현되는 안중근 열사와 그 주변에 있는 여러 인물들을 우리는 독창적인 발레의 언어로 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예술의 성공은 장르 고유의 추상성이 관객의 언어로 치환되어 소통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해온 바 있다.


발레라는 춤의 언어가 익숙한 관객, 그리고 그것이 익숙하지 않고 말의 언어가 더 익숙한 관객 등등의 편차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때 다양한 관객이 존재하기에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연출적 요소를 더함으로써 그것을 정면 돌파해낸다.


예를 들어, 무용수들이 움직이고 활약하는 곳은 평지의 스테이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4장에서 안중근의 의병들이 이시다 부대를 피해 역동적으로 숨을 곳을 찾을 때 그들은 경사면으로 채워진 오케스트라 피트를 의병대의 기지로 적극 활용하는 등의 독창적 연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아름답고 곡선 미학의 정수를 보여줬던 클래식한 발레라는, 발레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definition)의 외연을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일본군이 칼을 들고 그것을 휘두른다거나 제6장 '단지동맹'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이토 히로부미를 엄단할 계획을 세우는 등의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투쟁의 안무를 더함으로써 확장해낸다.


마지막으로 발레와 현대 무용의 경계에서 한국적인 무용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듯한 움직임이 제5장 '안중근의 꿈'에서 여실히 표현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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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레를 배우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말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발레를 배우지 못했고, 그 아쉬움은 그렇게 오랫동안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이제는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이날 나에게 무대 위 무용수들이 보여준 몸의 언어는 그 아쉬움을 다시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비록 시작은 거창하지 않은 취미 발레일지라도, 이제는 그 언어를 내 몸으로 직접 익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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