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발표회가 대체 뭐라고

엄마는 육아 실격

by 에센티아


요즘 아이가 유치원에서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하다. 최근 들어 선생님께 자주 혼이 나고 있는지, 하원 할 때 주저리주저리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하소연을 하곤 한다.


일곱 살 남자아이가 하는 말을 전부 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면 불끈 화가 솟구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아니 왜 남의 집 귀한 아들을 그렇게 혼내고 난린겨! 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지 새끼라면 끔찍이 여기는 한낱 엄마.


우리 부부는 아무래도 외동인 아들을 좀처럼 혼내지 않고 키웠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칭찬에는 매우 익숙한 반면, 조금이라도 혼이 나면 그걸 크게 받아들이고 상처도 잘 받는 성향이 되었다. 어쩌란 말이냐.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도통 칭찬을 못 받고 자랐기에, 칭찬에 처절하게 굶주려있던 사람이다 보니,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에게 칭찬이라도 실컷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에도 인정사정없이 칭찬을 쏘아댔다.

물론, 수많은 육아서에서 과잉 칭찬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읽은 적도 있다. 칭찬을 하려면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라느니 하는 이야기들. 칭찬이 후한 나는 그 경계를 칼같이 나눌 만큼 면밀하고 용의주도한 엄마는 아니었다. 칭찬은 우리 아이를 엄청나게 춤추게 했고,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아이는 실제로도 대체로 또래보다 다방면에서 빠르고 잘 해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내게 서서히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늦가을 무렵, 코로나 시국에서도 유치원에서는 영어 연극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그 '보여주기'를 위해 아이들에게 얼마나 특훈을 시키고 있는 걸까? 요즘 들어 뜬금없이 아들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영어 시간에는 부쩍 혼나는 일도 늘었나 보다. 결국 그 모든 화 받이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내 속내는 이번 역경을 어떻게 해서든 조용히 버티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에 나름 엄청나게 욕심이 많았던 나는 교내 학예회나 발표행사가 있을 때면 반드시 한 자리씩 꿰차곤 했다. 그리고 그런 프로젝트들에 참여해 대중들 앞에서 공연이나 발표를 해보는 것은 훗날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됨은 물론, 성장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이것 역시 욕심 많은 엄마 혼자만의 뇌피셜이긴 하지만.


어차피 이번 연극발표회만 지나가면, 두어 달 뒤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장으로 진학하게 될 터인데. 지금부터 남은 몇 달간은 그저 현행 체제(?)를 유지하며 조용하고 평안하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도 컸다. 지금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최적의 시스템인데, 아들아 너도 그냥 좀 이 시스템에 금이 가는 그 어떤 분란도 일으키지 말아 줄래?라는 그런 나만의 바람.


57e2d14b4d54a514f6da8c7dda79337c143adbe1534c704f75297cd69445c150_1280.jpg?type=w1 © MustangJoe, 출처 Pixabay


하지만, 결국 오늘 나는 유치원 선생님과의 정기적인 통화를 하면서, 모성에 등 떠밀 린 의사 표명을 감행하고야 말았다. 내 나름 최대한 정제되고 간결한 표현을 사용해, 영어 연극 연습으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으니, 감안해 달라(?)는 요청을 드렸다. 해석하자면, 학부모들에게 너무 잘 보이려고 괜히 애들을 빡세게 연습시키거나 자꾸 혼내지 마시고, 그런 거는 잘 못해도 되니, 애들이 즐겁게 생활하는데나 힘써주시길 당부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상대는 수긍하기보다는 교묘하게 반발하는 톤으로 말했다.

"말씀은 알겠는데, 아주 잘 따라오구 있구요~, 아주 살짝 주의를 준 것뿐인데, 우리 가 평소에 칭찬만 많이 받던 친구이다 보니 서운했는가 봐요~제가 더 마음 쓰도록 할게요~"

물론 아주 쾌활하면서도 명랑한 유치원 선생님 특유의 하이톤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그 하이톤이 뿜는 기에 눌려 항상 나는 위축되곤 하였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힘이 많이 드시겠어요~"

행여나 우리 아들에게 뭔가 불이익이나 피해라도 갈까 봐, 끝맺음은 그래도 항상 친절하고 상대를 위해드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모성의 모습.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심난한 기분이 들었다. 나 때문에 혹시 우리 아들만 영어 연극에서 제외된다거나, 그 어떤 형태로든지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냥 가만있을걸 그랬나 기타 등등... 선생님과의 통화를 혼자서 머릿속에 수십 번 리플레이하며, 혹시라도 내가 뭔가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았을지 검열하고 또 검열하고.

갈대처럼 한참을 흔들리다가 결국엔 마음을 정했다.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이고, 나는 그다지 뭐 예의에 어긋나거나 무리한 발언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그 정도 피드백을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닌가! 어차피 앞으로 일어날 선생님의 대응은 그분의 재량에 대한 것이지, 더는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도 아이가 헤쳐나가야 할 인생의 몫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연극 연습이 자신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겠지만, 어차피 세상 모든 일은 어느 정도 연단과 시련이 따르는 법임을 아이도 배워야 할 것이다. 일단 나는 내 할 일을 했고, 나머지는 선생님과 아이가 헤쳐나가야 한다.


내 욕심 같아서는 아이도 세상 사에 어느 정도는 욕심을 내주었으면 싶다. 그런 아이는 옆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승부욕을 불태우며 잘 배우고 해 나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온갖 간섭을 하며 체크를 하는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 그렇게 사는 삶은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나 혼자만의 바람일 뿐, 내가 무얼 바라던 아이는 자기 생긴 대로 살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맞추어 엄마의 할 도리를 해야 할터이고.


1514246.jpg?type=w1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육아는 정말이지 끝도 없는 도전이자 과제이다. 앞으로도 아이를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지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선 기분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방임형 엄마에 매우 가까운 편이라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맏이로 자라나, 엄마의 별다른 관심과 케어 없이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크다 보니, 아이에게도 자꾸 그걸 바라게 된다. 아이는 내 시절 내 세대와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나고 자라났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어찌 됐든 이 세상에 한 생명을 내보낸 이상, 잘하든 못하든 나는 어떻게든 이 과업을 해낼 수 밖에는 없다. 다른 모든 일을 대하는 내 자세처럼, 이왕이면 이 일도 최선을 다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해내고 싶다.


그래도 다들 자식은 뜻대로 안 된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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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티아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육아스토리'를 더 읽고 싶다면->

https://blog.naver.com/yubinssk82/222136898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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