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은 너무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오랫동안 나는 그것이 불행인 줄 알고 내던졌었다"
-아이리스 머독
아이리스 머독이 어느 소설에 썼다는 이 문구가 내게는 너무도 아름다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 우리의 행복은 때로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아차릴 수도 없게 고통과 실패의 모습을 하고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슬픔과 괴로움을 견디고 이겨낼 때야 비로소, 그 뒤에 얼굴을 감추고 있던 생의 기쁨이 살포시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짓듯, 행복이란 단박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녀석일지 모른다.
조금은 슬픈 얼굴로 내 곁에 찾아온 행복을 절대로 놓치지 않기로 한다. 살다 보면 보이는 대로가 진실은 아닌 경우가 많다. 내게 닥친 시련처럼 보이는 행복이 진짜 모습을 보여 줄 때까지, 가만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자. 그도 아니면, 최소한 불행인 줄 알고 내쳐버리는 과오만은 범하지 말자.
영혼의 눈으로 보면 결국 이 세상에는 슬픈 것들이야말로 순수하게 아름답다.
감성에 젖은 듯한 몇 자를 적었지만, 실은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지면에 발이 닿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사회적 배경은 도리어 꿈만 같이 아득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밖에만 나가지 않을 뿐, 집 안에서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음을 지각한다.
이제 코로나19는 더는 나에게 슬픔이 아니다. 슬픈 듯 보였던 그 얼굴은 자세히 바라보니 환하게 나를 향해 웃고 있는 행복이었다. 불손한 마음 한 점 없이 이제는 코로나에도 감사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던 것들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가르침 받았다. 마스크라도 쓰고 나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스크 없이도 있을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은 더욱 감사하다.
모두가 멈췄기에 도리어 바삐 가지 않아도 되니 감사하고, 재택근무하는 남편과 점심마다 함께 산책을 다녀오며 데이트를 하게 된 것도 감사하다. 집에서 해먹는 밥이 맛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감사하고, 운동은 어디 가지 않아도 혼자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임도 알게 되어 감사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없었더라면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실은 내가 적응해서 이토록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내가 실은 이처럼 강한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확인했을까? 우리가 이토록 서로를 아끼고 위한 다는 걸 어떤 식으로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 나는 감사드린다. 행복의 얼굴은 가끔 슬프고 또 아픈 듯하여 나를 겁에 질리게 하지만, 나는 결코 그걸 불행이라 여기며 내던지지 않으리.
삶은 나를 사랑한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살겠다. 나 한 명의 탄생과 생존을 위해, 온 우주와 세상이 이 모든 절묘한 시스템을 준비해 두었다고 그렇게 믿겠다. 그 누가 증거를 대어 굳이 반박할 것이며, 설사 틀리든 말든 뭣이 중한가? 삶과 나는 사랑에 빠져 그렇게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한바탕 미친 로맨스를 펼쳐나가면 그뿐. 나의 연인 삶이 보내주는 행복이라는 선물에 감사해 마지않으며, 나는 그렇게 살아가겠다. 그것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나의 삶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