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살아가며
인간은 최악의 삶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
특히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톨스토이
여느 때 같으면 거리마다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형형색색 일루미네이션으로 반짝이고 있을 시내가 온통 한산하다. 벌써 12월,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을 잠식해버린지도 어언 1년이 되어간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곧 있으면 눈송이도 흩날리겠지만, 전 세계를 뒤덮은 팬더믹은 때가 되면 물러나는 계절처럼 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
올 한 해 코로나 19는 나를 비롯한 이 지구 상의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큰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던가! 2020년 칠흑 같은 바다 위로 떠오르던 찬란한 새 태양을 올려다볼 적에는 정말이지 꿈에도 그리지 못했던 한 해가 된 것 같다.
2월에 용기를 내어 시작해보려던 오프라인 사업을 접게 된 건, 그야말로 코로나 19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작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던 당시에는 갑자기 펼쳐진 날벼락같은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 등원하지 않는 아이, 재택근무를 하게 된 남편과 더불어 세 식구가 그렇게 석 달 여를 하루 종일 한 집에서 지내는 수감생활이 시작되었다.
"곧 있으면 종식되겠지."
"기온이 높아지면 감기 바이러스는 약해진다더라."
이런 허망한 믿음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여름까지는 어찌어찌 꾸역꾸역 살아냈던 것 같다.
하지만, 한여름이 오자 되려 코로나의 확산 세는 더욱 심각해졌고, 이후로도 2, 3차 팬데믹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 올뿐이었다. 가까스로 잡고 있던 정신줄도 더는 한계에 도달했는지, 한도 끝도 없는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할 만큼 했다 싶을 정도로 우울의 바닥을 치고 나서야, 책을 한 권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미경의 [리부트].
'코로나는 쉽사리 종식되지 않을 거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이전부터 구독해왔던 김미경 TV에서 마치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외치던 목소리가 그제야 귀에 제대로 꽂히기 시작했다.
'어차피 태풍이 몰아닥쳐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 속에서 다시 살아갈 궁리를 해야겠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바로 가만히 주저앉아 우울함 속에 절어 있어 봐야 해결될 것은 하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늦더위가 겨우 진정되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나는 MKYU의 열정 대학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미 발 빠르고 의욕에 넘친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 열정에 자극을 받으면서 내가 너무 늦게 왔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끌리는 비즈니스 강좌들을 동시에 몇 개씩 수강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멈춰있던 내 일상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새로운 인생 공부를 말이다. 코로나 19가 몰고 온 우울감이나 침체는 어느덧 내 일상 그 어디에도 자라날 틈이 없어졌다.
지금의 이 시간들이 언젠가 아득한 옛날 얘기가 되어 있을 무렵엔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추억될까?
역사 속에 잠깐의 이벤트처럼 일어났다가 잦아든 현상이 될까?
아니면 이로 인해 시대의 거대한 물줄기가 전환을 맞는 갈림길로 남게 될까?
나 사는 동안에 그 의미가 한눈에 선명하게 들어올 만큼, 코로나의 영향력은 짧을 것인지, 아니면 내 생애를 넘어서까지 그 여파를 남길 만큼 거대한 사건이 될 것인지. 우리 모두가 이 코로나라는 역사적 사건의 산물이자 주역이라는 인식이 들자, 갑자기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100년이 넘게 지속된 십자군 전쟁의 세기에 여생을 살아야 했던 이에게는 전쟁이 삶 전반의 테마이자 배경이었을 것 아닌가? 일제 시대에 태어난 이에게는 삶의 절반 정도를 식민지의 신민이라는 운명으로 살았어야 했을 테고 말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어떤 시절과 환경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최선의 인생을 사는 것만이 그 모든 숱한 위기와 역경의 세월을 이겨낸 모든 인류에게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이 시대를 최대한 잘 살아내기 위한 희망의 촛불 하나를 밝혀본다.
먼 훗날 우리는 이 모든 시련의 의미를 다 알 수 있게 될 날을 맞을 것이다. 모든 점들은 언젠가 선으로 이어지며 거대한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때에는 모든 흐름과 의미가 한눈에 들어오리라. 그 날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결말로 내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또 잘 살아보리라.
우리의 찌그러진 여행 가방은 다시 길 위에 나와 쌓여있고, 우리에게는 앞으로 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길이 바로 인생이니까.
- 잭 케루악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