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이야기, 일방의 기록
#9
나는 나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눈 앞에 보일 리 없는 그녀가 내 앞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푸른 풀들이 돋아나 있는 한강 고수부지 였다. 오후 네 시 정도로 생각되는 햇살이 그런 광경을 비추며 나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어쩐지 뻔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그녀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듯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지금의 평화로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녀에게 손을 건네 보았고 그녀는 잡아주었다. 우리는 버스를 탔고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버스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난 잘 지내.
여전히 창 밖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그 짧은 한 문장으로 내 머리 속에 그다지도 많은 의미들을 떠오르게 하다니 꿈에서도 그녀는 그녀구나 싶었다. 서도호 알지? 내가 물었다. 너도 「paratrooperⅤ」 속 삼천 개의 이름 중 하나일까? 그녀에게 말한 다기보단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잠시 날 쳐다보던 그녀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풍경을 바라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녀가 버스 유리창을 활짝 열고 고개를 창 밖으로 반쯤 내밀었다. 바람이 그녀를 지나 내게로 왔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그녀와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그녀와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녀는 왼쪽 길을 선택했고, 나는 오른 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 뒤 창문을 내다보았다. 적당하게 당겨진 전깃줄이 우리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확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라고도 말할 수 없는, 내 삶의 어느 한 시절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끝)
# 에필로그
군 복무 시절 국장과 북한의 도발 등으로 꽤 오랜 기간 비서실에 반 감금된 적이 있다.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독서 뿐인데 이 역시 소일거리 삼아 끼적거려본 글이다.
계간 창비 읽다가 어떤 단편 소설이 트리거가 되어 마구 뱉어낸 습작이다.
작가 님과 글 제목이라도 밝히고 싶었는데 구글링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 시점에 그 글도 다시 읽어 보고 싶으므로 날 잡고 더 찾아봐야겠다.
간만에 다시 읽어보니 (일단 글의 수준에 창피했고) 몇 가지 재밌는 점이 있었다.
- 애매함 그 자체인 롱디는 그 마지막조차 애매하더라는 것을 적고 싶었나보다. 글도 애매한 건..
한 없이 특별한 줄 알았던 둘의 시작도 관계 유지에 필요한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되더라는.
- (‘그녀’에게 너무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글 곳곳에서 내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더라.-_-
그게 다 군더더기로 느껴졌고 옮겨 적는 과정에서 꽤 많이 덜어냈다. 덜어낸게 이거다.
- 마지막 #9에서는 꿈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최대한 기억해내 묘샤하듯이 (구어체처럼) 적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 남용되었다. 조,좋은 변명이다.
기본적으로 감정적이지 않은 내가 롱디스턴스의 연애에 대해 써 본 글이다.
높은 수준의 글이 아님에도 며칠에 걸쳐 업로드 한 것은 아카이브 목적이 크다.
그런 면에서 많은 글자들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브런치에 이런 종류의 글을 올릴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