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흠미로운 후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앞 부분은 이야기의 무대인 멜크 수도원에 대한 소상한 내용들이 나온다. 에코는 후일 출판된 <장미의 이름 작가노트>에서 소설의 처음 백 페이지의 부분을 없앴더라면 좋았겠다는 독자의 의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 독자가 소설의 처음 백 페이지라고 하는 잠재적인 난관을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거기에 이어지는 것을 읽어 낼만한 힘을 지닌다는 뜻이다. 따라서 작가가 소설의 모두(冒頭)에다 백 페이지의 잠재적인 난관을 매설하는 것은 자기의 독자층을 조직하는 작업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에코는 글을 쓰는 작가의 두 가지 유형을 말한다. 우선 거리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텍스트를 쓸 경우 “작가는 일종의 시장 동향 분석가가 되어 자기 작업이 환기시킬 결과를 작업의 과녁으로 삼는다.” 대중이 그 작가에게 요구하는 소설을 쓴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새로운 소설, 전혀 다른 종류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려고 할 경우 작가는, 독자가 드러낸 요구를 분류하는 시장 동향 분석가가 아닌, 시대 정신의 흐름을 간취하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작가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해야 하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물론 에코는 후자의 경우였다. <장미의 이름 작가노트>는 아주 얇은 분량인데,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얼마나 세심하게 공들여 썼는가를 알 수 있는 뒷 얘기들이 소개되어 있다. 에코는 아드소의 정사 장면을 쓸 때 쓰는 시간을 실제 정사 시간과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할 정도였다 . <장미의 이름>을 읽은 분들은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