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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Oct 24. 2023

‘자유인’ 장욱진이 그렸던 자신의 삶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1917∼1990)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2세대 서양화가로 꼽힌다. 서양화에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더해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장욱진의 그림을 보기 위해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을 찾았다.

사진=유창선


시기별로 구분된 4개의 전시실을 돌아보면 장욱진의 미술 60여 년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소재들이 몇 가지 있다. 까치, 나무, 해와 달, 마을, 집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거창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변에서 보이는 일상의 풍경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의 그림들이 유난히도 친근하고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삶과 가까이 있는 소재들을 그렸기 때문일 것 같다. 하지만 반복되는 소재들은 작품마다 다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다양한 재료와 기법들을 찾아가면서 고정되지 않는 변화를 항상 추구했던 작가 정신이 전해진다.

<자화상>


내게 가장 인상적인 그림들은 장욱진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었다. 1 전시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 <자화상>이다. 그림의 크기가 아주 작은 것이 인상적이다. 한  뼘 크기의 작은 종이 위에 유채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은 작지 않았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한국전쟁기인 1951년. 서울 광화문 근처에 살았던 장욱진의 가족들은 언제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지냈다. 결국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부인만 그곳에 남고 장욱진과 딸, 아들은 충남 연기군으로 가서 한동안 머물렀다. 이 무렵에 그린 것이 <자화상>이다. 그림에 나오는 콧수염을 기른 모던한 모습의 남자가 장욱진 자신이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결혼식 때 입었던 하이칼라 프록코트. 황금빛 벼 이삭들과 붉은 논두렁 길이 있고 청록색 하늘에는 구름들이 떠 있다. 귀향하는 장욱진의 뒤로 검둥개와 새들이 함께 뒤따르고 있다.

전쟁이 한복판에서 그려진 그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장욱진은 전쟁의 공포를 느끼지 못할 만큼 무사태평한 인물이었던 것인가. 그 반대였다. 전쟁 속에서 장욱진은 많이 고통스러워하며 고독과 슬픔을 느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표현한 것이다.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을 다시 그리며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린 것은 비참한 현실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비참함과 슬픔 속에서 행복을 찾아 자기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사연이 많은 작품이다. 장욱진 스스로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에 오색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강아지와 새들도 함께 따르고 있으니 아무리 고독해도 그는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가족>


장욱진의 그림에는 가족도가 많다. 거기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이 담겨있다. 장욱진의 평소 가족들에게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다”라고 말하곤 했다 한다. 많은 가족도 가운데서 이번 전시회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그림이 1955년에 그려진 <가족>이다. 장욱진의 최초의 가족도란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크다는 얘기이다. 그림 속 한가운데 있는 집 안에 네 명의 가족이 앞을 바라보고 있고, 집 좌우로 나무, 주변으로 두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다.


일본인 사업가에게 판매된 이후 공개된 적이 없다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발굴되어 60년 만에 출품된 작품이다. 장욱진이 항상 머리맡에 걸어둘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고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다. 그리고는 아쉬워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다른 그림들을 다시 그릴 정도였다고 한다.


<밤과 노인>


또 하나 인상적인 그림 하나를 꼽으라면 <밤과 노인>(1990)을 들고 싶다.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그린 그림이다. 왼쪽 상단에는 흰 도포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인이 있다. 죽음이 멀지 않은 장욱진 자신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오른쪽에는 화가가 사랑했던 것들,  집, 까치, 나무, 아이가 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표정의 노인은 하늘로 날아가고 있지만 그가 사랑했던 것들은 땅에 있다. 노인은 죽음으로 가고 있지만 슬퍼하지 않고 그림은 지극히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장욱진은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꿈을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화가였다.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그리던 그의 그림들 가운데는 하늘로 날아가는 샤갈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도> 같은 작품들도 여럿 있다.


장욱진의 큰 딸 장경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내 아버지 장욱진』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피난 생활 등 고단하고 힘든 시기에 화가로 일생을 보낸 아버지, 섬세하고 예민한 아버지에게는 너무 혹독한 세월의 연속이었다. 그 어려운 세월을 "나는 그림 그린 죄  밖에 없다."라고 하시며 평생 붓 하나 들고 철저하게 외통수로 흔들 림 없이 화가의 길을 가신 분이 우리 아버지시다.”


장욱진의 그림들을 보면 그의 삶이 나타난다.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했음을 읽을 수 있다.  삶과 작품의 일치가 전해진다. 지극히 소박하고 작은 소재들을 그렸건만, 그림마다 화가 장욱진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올렸습니다. 좀 들쑥날쑥 해도 이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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