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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나의 작은 결단

허경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리뷰

by 유창선

대안연구공동체에서 프랑스 철학 강의를 하고 있는 허경 선생께서 지난 여름에 낸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주셔서 읽었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사회의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대하는 우리들의 삶의 태도를 철학자의 시선으로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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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한민국이 핼 조선이라는 명제는 하나의 가치판단이기는 하지만, 삐뚤어진 일부의 부정적 편견만은 아님을 논증하고 있다. 광우병, 세월호, 옥시, 강남역 같은 일들이 대한민국이 헬조선임을 보여 주는 여실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지배담론이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 담론임을 저자는 지적한다. 가해자들은 이 바닥에서는 다들 이렇게 하고 있고, 피해자도 아주 잘하기만 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피해자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고, 따라서 우리만 일방적으로 뒤집어쓸 일은 아니라는 식의 ‘물타기’ 담론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피해자의 개인적 신상에서 어떤 결점이든 무슨 문제든 여하튼 뭔가 부정적인 것을 찾아내어 인신공격을 일삼는다. 이 지배적 가해자 담론이 헬조선 대한민국의 일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헬조선이 진짜 헬조선인 이유는 내 삶의 고유한 영역을 남들이 함부로 재단하거나 심판하기 때문”이라며, “나의 일은 내가, 너의 일은 네가, 우리의 일은 우리가 함께 판단하도록 한다”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판단 원칙’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피해자 주체의 탄생을 의미하는 사회적 약자 중심의 담론을 이렇게 정식화하고 있다.

“나의 느낌과 의견은 무시 혹은 억압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잘 존중되고 경청되고 있는가? 나아가, 나의 느낌과 의견이 실제적 해결책의 구축 과정에 잘 반영되고 있는가?”


이 긍정적 변화를 현실적 변화의 힘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변화, 실은 나의 작은 결단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작은 결단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제 나의 느낌과 의견을 절대로 누군가가-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멋대로 판단하고 왜곡하게 억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와 타인의 이러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겠다. 그리고 이런 뜻을 나와 같이 나누는 사람들과 연대하겠다.”


* 책의 제목인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은, 이전에는 합리적이고 합당하던 것이 이제는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의미이다.

* 대안연구공동체에서 펴내고 있는 작은 책 기획이라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문고본이다. 헬조선 담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생각하려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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