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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Nov 04. 2018

"바스러질 삶, 결국 남는 것은 감정이다"

홍상수의 <풀잎들>

홍상수의 <풀잎들>. 아름(김민희)는 카페 구석에 앉아 노트북에 사람들의 대화를 기록하는 관찰자이다. 카페에 앉아, 밥집에 앉아 얘기 나누는 사람들은 모두가 죽은 사람을 소환하며 각자의 감정을 말한다. 그러면서 정작 죽음과 자신은 분리하고 있다.

그래서 관찰하던 아름의 눈에는 ‘별 거 아닌 것들’이다. 삶은 덧없는 것이다. “결국 다 죽을 거면서. 죽은 친구가 옆에 있어도 자기 죽을 건 생각 안하는 것들....”


하지만 그 덧없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에 매달린다. “사랑이 최고야. 나머지는 그게 안되서 하는 거야.”

60여분 동안 등장하는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에 얽힌 감정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쌓여있는 회한의 감정을 말하며 깡소주를 마신다. 극단을 그만 두고 갈 곳이 없는 늙은 배우 기주봉은 말한다. “가을밤에 소주까니까 정말 보기 좋다.” 

이래저래 바스라지고 말 삶이지만, 결국 남는 것은 감정이다. 홍상수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 자신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이다. 상영관의 자리는 많이 비어 있고, 작품에 몰입하려는 표정이 역력한 사람들만이 자리를 듬성듬성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등장 인물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에 귀를 세우고 몰입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살았는지, 사연없는 삶이 없음을 생각함으로써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김민희의 연기가 이 정도로 발전했는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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