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꼰대 친구가 있다

by 유담

요즘 나의 관심은 길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어느 한 사람에게 가 있다.

6년째 독거인의 삶을 살고, 10년 된 반려견과 함께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는 어느 꼰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는 어느 틀에 박힌 것도,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사람도 아닌데 스스로를 '꼰대'라는 틀에 가두려 한다.


언제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무미건조하게 말을 하지만, 언젠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기 전 캡슐 속에 들어가 버튼 하나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한다. 네이버 검색창에 ‘조력사망’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기도 하고 한국인은 수준이 낮다고 툭 던지듯 말하던 어느 한 꼰대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점심 초대에 나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음식을 선택하게 한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

“넌 이것을 먹고, 난 다른 것을 먹을게”라고 한다 보통은 같은 음식으로 나누어 먹지 않나? 특이하게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느껴졌던지 식당에서도 각자 다른 메뉴를 고르지 않냐고 나를 설득하기도 이해시키기도 하는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상하다고 한다는데 나는 이상하지 않지만 보통사람은 아니며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라고 했다. 사실 이런 사람은 반백년 넘게 살면서 처음 만나보았다.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하고, 기타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그. 베짱이의 삶이 누구에게는 부러운 삶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퇴사할 때 회사에 남아 일할 사람들을 위해 업무 기록을 남겨두었다며, 자신이 얼마나 배려심 많은 사람인지 강조하는 모습엔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난 그가 여전히 궁금하다.


우리는 함께 주민센터의 사회화 프로그램을 검색하며, 어떤 걸 해보면 좋을지 이야기하고, 서로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정치적 성향을 묻다가 논쟁을 벌이고, 종교를 이야기하다 비판도 하고, 음식을 이야기하다 호응도 한다.


어쩌다 이런 사람과 친구가 되었을까?


나는 말벗이 되어주고, 안부를 물어주고, 지난 6년간 제대로 된 맛을 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만들어준다. 그는 나에게 경청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하고, 가식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포장한다. 때에 맞추어 포장지 색을 바꿔가면서. 화려한 포장지를 뜯기 전까지는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포장지를 사용하든지, 혹은 포장하지 않고 안의 것을 그대로 드러내든지, 솔직하고 부끄럽지 않은 관계는 내면의 건강함과 편안함을 준다.


그 친구와 나는 이야기할 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 다르다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우리 모두의 생김새가 다르듯, 생각과 환경, 습관의 차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서로의 결함이 드러나도 "어차피 부족한 인간이니까" 생각되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되었다. 솔직한 감정을 나누며 슬픔이 위로가 되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이 친구와 오랫동안 잘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