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황희정승이 되어가는 이유
일요일 아침. 어느 단체톡방이 떠들썩하다. 사교육계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도 많고, 본인의 생각과 말을 조리 있게 정리하는 능력에, 단단한 에고까지 가진 듯 보이시는 분이 아이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한 번씩 그분의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 귀를 쫑긋하는 게 온라인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알아 달관한 듯한 현인 같은 말이 처음에는 조금의 고깝기도 했지만, 들을수록 무릎을 치는 혜안들이 툭툭 튀어져 나와 근래에는 내게 필요한 것들은 추려서 감사히 듣고 있다.
특히 이 날은 나의 마음과 백 퍼센트 일치하는 말이 나와 더욱 깊은 공감을 했는데, 할 일 많은 아침임에도 나를 톡방으로 잡아끌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교육의 완성은 결국 엄마의 만족감이에요."
나는 사교육 영어강사다. 캐나다에 다녀온 이후 취업전선에 뛰어들 엄두가 없던 나에게 딱히 선택권이 없었다. 누구도 등 떠밀지 않았음에도 이런저런 사정에 내몰린 사람 마냥 시작한 일이었지만 여러 학원을 거치고 나 스스로 공부방, 교습소, 학원을 차리며 차츰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쌓아온 20여 년의 시간 동안 감사하게 쌓인 연륜 덕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어렵거나 무섭지는 않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나는 되도록 영어공부에 대한 특히 자녀의 영어교육에 대한 첨언을 하지 않는 편이다.
한 어머니는 도대체 늘지 않는 둘째 남자아이의 영어실력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내로라하는 학원에 보내봤자 아이가 전기세만 내고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브랜드 욕심을 버리고 내게 과외를 문의해 오셨다. 둘째와는 달리 자신의 계획대로 제법 따라오는 큰 딸 덕분에 그 어머니는 이 근방 수많은 학원들의 커리큘럼과 거기서 쓰는 교재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계신다. 나를 볼 때마다 "선생님, 이 문제집 아세요? 저 교재는 아세요?"가 그녀의 단골멘트이다. 간혹 20여 년째 가르치고 있는 나도 모르는 문제집들이 나온다. 그녀의 방식대로 공부한 딸은 고등학교도 가기 전 고등학교 1학년 모의고사에서 임시로 본 결과 국어가 1등급이 나왔다고 했다. 즐거운 일이다. 엄마가 열심히 정보를 얻고 딸아이가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 나는 그분의 나름의 방식이 훌륭하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이사를 오고 이 동네에 대해 잘 모를 때 네일숍에 갔다. 나의 손톱을 만져주는 한 시간 동안 네일숍 원장님은 이 동네 잘 나가는 학원들에 대해 열심히 얘기해 준다. 얼마나 대단한 학원인지 아이들의 대기가 줄 서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의 딸은 그 학원과 맞지 않은 것 같아 아이가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다른 곳을 골랐고 그곳에서 너무 잘 배우고 있다고 했다. 너무 잘 배우는 기준이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엄마가 자신이 고른 마지막 학원에 그리 뿌듯함을 느끼고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표 영어로 공부한 아이들의 엄마가 자부심으로 얼굴이 반짝 빛나는 것도 보았다.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아도 꾸준한 독서로 읽고 말하기가 자연스럽게 되는 아이를 쳐다보는 엄마의 믿음 가득한 눈빛 또한 보았다.
'전 사람보다는 시스템을 믿어요' 라며 조금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던 큰 아이의 친구 엄마도 있었다.
영어 원서가 흔하지 않던 그 시절 힘들게 외국에서 들여온 어린이 원서로 학원 한번 보내지 않고 영어 수재를 만들어 주변 엄마들에게 엄마표 영어의 전설이 된 지인은, 그 큰 아이와 터울이 크게 나는 셋째 딸은 우리 딸과 같은 영어유치원을 2년이나 보냈다.
20년간 이 일을 하며 내가 느낀 건 딱 한 가지이다. 엄마가 만족해야 한다는 것.
물론 엄마의 만족도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아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이의 높은 레벨 점수에 만족감을 찾기도 한다.
앞서 말했던 아이 교육의 대가인 분이"애가 원서를 줄줄 읽어도 엄마가 만족 못하면 그 집 영어교육은 산 넘어 산"이라 말했는데 실제로 지난 이십 년간 이런 모습들을 한 두 번 보았으랴?
그래서 아이 영어교육의 비결이 뭐냐고?
지금껏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엄마의 만. 족. 감.
내 아이가 영어공부 따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놀아도 될 것이고, 내 아이가 적당히 학원에서 따라가고 있음으로 만족한다면 그 또한 맞다. 엄마표와 적절한 사교육으로 중간중간 빈 곳을 채워준다고 한다면 훌륭하시다 손뼉 쳐 드리고 싶다. 제법 이름 있는 학원들의 탑반에 있거나 여러 공인된 높은 점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축하드린다.
세상에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듯 아이의 교육 또한 그러하리라. 그러니 나는 황희정승이 되어볼까 한다.
그래, 네 말도 옳구나.
그렇지! 네 말도 옳구나.
내 말이 옳다면 - 그것이 남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그것이 우리 아이를 힘들고 외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말이 옳다고 믿는 당신이 행복하다면 - "당신이 옳다."
#글루틴 #팀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