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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Sep 22. 2023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사람은 없다.

인생은 언제나 예고 없이 들어닥친다.

선생님, 저도 제가 장애아를 키우게 될지는 몰랐어요.


나의 학생 중 한 분은 언어치료사이다. 그녀는 젊고 예쁘며 출중하다. 다만 그녀는 장애아를 키우고 있다. 처음 만난 줌 화면의 그녀는 자기 계발과 더 높은 단계의 자격증을 위해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30대의 직장인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함께한 1년여의 시간 동안 갑작스레 급한 일이 생겼다며 수업을 취소하는 문자가 오갈 때쯤  나는 조금씩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지방 병원에서 포기한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서울 병원까지 데려가 살려냈으며, 살아있으라는 그녀의 간절한 기도 끝에 단지 그 살아만 있어 줘라는 마지막구절이 이뤄진 아이를 지난 8년간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만 내가 어찌  그녀 마음의 백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남들과 똑같은 평범하던 일상에 어느 날 일어나 버린 일들을  그렇게 어깨에 짊어진 채 살아내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지니고 갈 삶의 무게를 다만 머릿속으로나마 상상해 볼 뿐이다. 청각장애 아이들을 치료하는 그녀는 아이의 청각장애로 많이 힘들어하는 부모에게는 '나를 밟고 일어나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오픈한다고 했다. 그러면 절망에 빠져있던 부모들은 자신의 처지보다 훨씬 더 힘든 그녀의 이야기에 그래도 나은 자신의 사정을 돌아보며 조금은 기운을 얻게 된다고 했다. 나는 어느 한 템포도 아프지 않은 그 이야기를 담담한 목소리로 전하던 그녀의 처연한 목소리를   오래 시간  잊을 수 없으리라


물어본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지만 1여 년간 내가 느껴온 그녀는 아기를 낳고 자신의 삶이 달라지기 전까지 유능하고 어여쁘고 어느 누구의 눈에도 제법 괜찮은 삶을 영위하는 전문직업인이자 신혼의 젊은이 였으리라. 남들과 똑같이 아기를 가지고 기뻐하며 임신 생활을 하던 그녀가 출산 즈음에  의료사고를 당하고 장애아의 엄마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줄은 그녀 또한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우리 중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내 앞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어느 날 불현듯 내 삶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온라인에서 알게 된 한 동안의 뽀얀 피부를 가진 지인은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였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는 어느 날 말했다.

"내가 자폐아를 키우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녀는 커다랗고 빛나는 웃음 가진 사람이었다. 앳된 목소리와 기분 좋은 하이톤은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어찌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런 그녀가 15년간 자폐아를 키우며 종종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자신에게 어느 날 닥쳐온 인생의 몫과 싸워내고 있을지를.


지난봄부터 초등 2학년의 시작 장애인 아이를 매주 1회 가르치고 있다. 그 아이의 엄마는 큰 아이의 첼로 레슨으로 매주 우리 동네에 온다고 했다. 형의 레슨 동안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둘째 아이는 영어를 좋아했고 그 아이에게 그 시간 동안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학원에 문의했지만 거절당하셨다고 하셨다. 개인 교습을 할 만한 곳을 찾다 나와 만나게 되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만나보고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 날, 실은 이 동네 모든 선생님을 다 찾아보며 되도록 많은 분을 만나보느라 선생님께 연락드리기까지 열흘이 넘게 걸렸노라 고백해 왔다.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큰 아이와는 달리 전맹인 둘째 아이는 더 마음이 쓰이고 모든 것에걱정이 앞섰으리라. 두 아이를 매일 아침 맹아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이후에도,  첼로에 재능이 있어 무료 레슨을 받게 된 큰 아이를 위해 레슨을 위해 매일 차로 픽업하는 일상을 보내는 그녀는 내색하지 않아도 분명 피곤했으리라. 아마 지금도 오늘도 두 아이를 재우고 자신의 내려앉을 듯한 어깨를 두드리며 잠들지도 모른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라는 단어에 공감하게 된다. 세상 무엇이든 다 집어삼킬 수 있고 바꾸어 나가야 한단 신념으로 가득 찼던 시절을 지나니 패배가 아닌 인정의 시기가 왔다. 그러므로 그 어느 한순간도 인생의 교만이란 단어와 친해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일의 내게 신이 또 어떤 과제를 또 던져줄는지 알 수가 없다. 조심스럽게 언급한 그녀들의 일상에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던 일상이 왔던 것처럼 나 또한 내 인생 내내 어떠한 일상이 주어질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내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 한가지 뿐이다.



"다만 겸허해 지라. 어떤 것도 자신하지 말라"


위인전을 읽고 자란 우리지만 그 위인 또한 결코 5분 앞의 자기 삶을 내다 볼 수 없는 인간이었음을 안다. 하지만 그 어떤 위인도 회의주의에 빠져 자신 앞의 삶의 과제를 내 팽개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을 회환이든 기쁨이든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을 그대, 아니 내 자신에게 말하노니 내일 어떤 삶이 펼쳐지더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살아내다 보면 그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일지니


이것은 나의 허세인지도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허세가 그 언젠가 삶의 지혜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오늘 밤이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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