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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Oct 29. 2020

기억 조리법

딸이 좋아하는 오므라이스 만들기에선 완성된 밥 위에 계란을 살포시 덮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조금은 복잡해진 맛을 폭신하고 보드라운 계란이 조용히 휘말아 감싸 안으면 입안에는 기분 좋은 조화로 움이 가득 넘친다.  


어느 영화에선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저승사자가 이승의 기억을 추억하는 망자를 보며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한 평생에 어찌 아름다운 순간만 있겠는가. 허나 웃음과 환희의 순간뿐 아니라 때론 고통과 좌절의 순간까지도 추억이란 조미료와 함께 기억의 덮개가 폭신히 덮이고 나면 제법 달달한 맛을 내는 요리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애초에 재료 자체가 썩어빠진 거라면 아무리 조미료를 시간을 치고 시간을 덮고 덮어도 그 맛을 바꿀 순 없을 테니 항상 예외는 있다.  


우리 가족은 미국 아이오아주의 에임스라는 소도시에서 2년을 보내고 왔다. 미국인들조차도 간혹 헷갈려하는 아이오와주는 남한 면적보다 큰 대지에 끝없는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미국 50개 주 중 가장 유색인종이 적다는 그곳에서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장 싼 비행기를 찾고 찾아 혹은 가장 저렴한 차를 렌트해서 이곳저곳을 열심히도 다녔다. 

남편과 나는 성향이 아주 다른 사람이라 도장 찍기 하듯 하나라도 더 많은 곳을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편이 종종 마음에 들지 않은 데다가 최대한 비용을 아껴야 하는지라 여행을 가서도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을 하고 점심 도시락까지 싸야 했던 나는 이 도장 찍기 투어가 썩 내키진 않았었다. 장시간의 운전으로 남편은 목과 어깨 통증을 달고 살았고 아이들은 기나긴 자동차 여행에 지쳐 종종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추위에 벌벌 떨었던 한여름의 옐로우 스톤에서는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당장 한국으로 달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의 마법은 점점 나의 기억에 장막을 덮고 조금씩 뿌옇고 바랜 이미지들로 하나둘씩 잔상처럼 박혀가기에 나는 조금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 피로와 짜증의 순간조차 그냥 막연히 좋았었다고 맥없이  추억의 편으로 보내버리고 싶지 않기에 나는 기록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미국 60개의 국립공원 중  25곳에 달하는 공원을 방문했는데 걔 중에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린 곳도 있기에 감히 그 광활한 곳을 가보았다고 말하기는 어폐가 있어 20곳 정도라도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누군가 미국이 가장 잘한 일은 국립공원을 만든 것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파크레인저와 그곳을 방문한 많은 이들은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제대로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바뀌어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어릴 때만 하더라도 관광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왁자지껄한 야유회 관경과 술판들이 난무하던 야외 숲은 다소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미국 공원이 주는 그 절대적인 고요함의 매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자, 이제 재료는 마련되었다. 이제 이 재료들을 어떻게 잘 다듬어 적당히 맛깔나게 조미료를 치고 재료를 먹기 좋게  조리할지는 이제 주방장인 나의 손에 달려있겠지. 너무 짜서 물을 타지 않게 맹탕이라 아무 맛도 안나지 않게 조심조심 맛깔나게 조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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