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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Oct 29. 2020

내가 미국 거지야?

미국  생활 정착기


"유진아, 이것  봐 괜찮은 걸 발견했어." 신랑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를 또 발견한 모양이다. 난 벌써부터 또 한숨이 나온다. 이번엔 또 어떤 쓰레기를 주워 왔으려나.. 구석에는 남편이 지난 며칠간 나름 공들여 주워온 물건들이 제법 쌓여있다.


미국인들도 가끔 헷갈려하는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 도착한 지 일주일 아이오와주는 미국 50개 중 유색 인종 비율이 가장 적고 남한보다 면적은 크지만 더 적은 인구수를 가진 드넓은 옥수수밭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우리 가족은  남편의 국비유학으로 Iowa of University가 있는 에임스라는 작은 대학도시에 2년 거주를 목적으로 와 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7월 22일이지만 우리가 살게 될 집에 들어갈 날은 8월 3일이라 우리는 그 사이 임시 숙소에 머물고 있다.

2년간의 거주라 한국에 있는 이삿짐을 다 가지고 올 수 없었기에 이곳에 올 때는 간단한 냄비 정도의 살림살이와 옷가지만 가져왔다. 2년 동안 최대한 안사고 참고 살면 그만이라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둘이나 있으니 기본적인 가구들은 필요했다. 남편은 대학도시의 특성상 여름학기가 끝나면 버리고 가는 가구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쓸만한 것들을 찾아 용케도 가져왔다.


물론 고급주택단지에는 개 중에 중고샵에 팔기도 귀찮은 돈 많은 젊은이들이 버리고 간 쓸만한 가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인종도 모르는 사람들이  쓰고 간 가구들을 내가 다시 주워다 쓴다는 게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미국은 중고품 판매가 활발한 나리인지라 주재원이나 잠깐 유학 온 학생들이 중고가구를 사고파는 일이 흔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남들이 쓰던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내가 오히려 까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남편은 중고샵에서 파는 물건도 어차피 누가 썼는지 모르는 물건인 건 매한가지인데 유별을 떤다고 오히려 나에게 더 큰 목소리를 냈다. 물론 부부 침대는 아는 한국 부부에게 구했고 아이들의 침대는 이케아에서 새것을 샀다. 남편이 주워온 것은 깨끗이 닦아서 쓰면 괜찮은 것들도 제법 있어서 잘 골라서 쓰면 오히려 이득이 되는 일인지 나도 잘 알고 있는데도 왠지 모를 서러운 마음이 솟구치며 자꾸 심통이 났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우리 부부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였는데,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단연 GoodWill이라는 중고샵이었다. 굿윌은 사람들이 도네이션 한 물건을 재판매하는 곳으로 수익금은 기부가 되는 우리나라의 착한 가게와 같은 곳이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도시의 굿윌에는 제법 비싼 중고품들도 들어왔고 시골 작은 마을에는 옛 미국 드라마에서 나옴직한 물건들도 보이곤 했다. 처음 하루 이틀이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만 매일 아침 연례행사처럼 들리게 되니 그 특유의 냄새들이 신물 나게 지겨워졌다.


미국에 처음 온  나는 마트를 가도 월마트보다는 미국 중부지역에 특화된 마켓인 하이비나 조금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타켓에 가보고 싶었지만 새 것은 오직 월마트나 달러트리에서만 구매하고 식당도 던킨이나 맥도날드만 신랑이 원망스러워졌다. 


물론 신랑이 이러는 것에도 이유는 있다. 미국에 오기 전 우리 부부는 경제관념이 투철하지 못한 탓에 맞벌이로 벌어들이는 꽤 많은 돈을 저축보다는 소비에 올인했다. 현명하지 못한 생활로 남들보다 여유롭게 시작한 격차 점차 좁혀지더니 어느샌가 뒤쳐져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런 위기감이 들던 시기에 미국에 오게 되었고, 아무리 국비유학이고 2년이라는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라지만 높은 미국의 물가와 환율을 생각하면 아껴서 산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생에 다시 오지 못할 시간을 가진 신랑은 이 기회에   아이들에게 미국 대륙을  여행을 시켜주고 싶어 했기에 우리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신랑은 나와는 성향이 다른 사람이어서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메인 스트릿에 있는 모든 가게를 다 들어가 보고 싶어 하는 나를 보고 혀를 차 대거나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하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 중고샵에서 싼 물건을 사거나 남들이 버린 깨끗한 물건을 주워오면 횡재라도 한 듯  무척 행복해하는 신랑에게  차마 찬물을 끼얹을 수 없는 난 울며 겨자 먹기로 처음 일주일간은 장단을 맞줘줘야했다. 


하지만 이번에 들고 온 서랍장은 겉이 다 벗겨진 데다 문고리도 떨어져 있다. 가구 집 아들인 신랑은 나무가 얼마나 튼튼한 건지 아냐며 요즘 이런 나무는 한국에서 구할 수도 없다고 하지만 나는 나무가 튼튼하지 않아도 아니 그냥 합판 이러도 좋으니 그냥 깨끗한 새것을 가지고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남들은 미국에 올 때 부럽다고 했지만 난 오기 전 고생살이를 예상하고는 있었는데 내 예상은 틀렸다. 이건 상상 이상이다. 내가 미국 거지인가?라고 말도 안 되는 마음에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왔다.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철없어도 좋으니 말끔하고 보기 좋은 새 물건들도 깔끔하게 방을 채우고 단정하게 정돈된 곳에서 새맘으로 살고 싶다. 나는 그런 생각에 밤새 훌쩍거렸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딱히 할 일도 없지만 어김없이 차를 타고 나섰다. 또 굿윌을 가나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habitat for humanity라고 이곳도 Goodwill처럼 사람들의 도네이션으로 이루어지는 중고물품 샵이었지만 굿윌보다는 고가의 앤틱가구들이  깨끗하게 디스플레이되어 있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남편은 웬일인지 그곳에서 호기롭게 딸아이의 개인 소파와 거실에 놓을 소파를 구입했다. "마누라가 하도 서러워하길래 큰 마음먹은 거야"라며 생색내기 또한 잊지 않음은 물론이다. 300불도 넘지 않는 소파 하나 사면서 3000불의 생색을 내는 신랑을 위해 나는 그날 저녁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다해 닭고기 요리와 와인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를 눈물바람에 빠지게 했던 눈물의 서랍장은 다시 쓰레기장으로 향해졌고 대신 저렴한 중고품을 구입했다. 그 외에 가져온 것들 중 몇 개는 깨끗하게 닦아 사용하고 딸방에 놓을 화장대와 테이블 2개를 페인트를 사 와 열심히 칠을 했다. 2 틀간의 페인트칠을 마친 딸의 화장대는 중고 샵에서 산 거울과 제법 구색이 맞았고 다행히 딸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물론 제일 아래 서랍 칸은 열리지 않아 딸은 내내 마지막 서랍 칸은 열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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