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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Jun 06. 2021

아무것도 켜지 않는 아이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작은 성냥 한 갑을 갖고 산다.


성냥은 나도 모르는 사이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켜지고,

놀라운 기분이 들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새로운 기분이

느껴질 때에도 직접 켜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배움에 불꽃이 타오르기도 하고,

사랑에 피어오르기도 하고,

돈이나 명예에도 활활 타오른다.

삶의 의지나 죽음에 대한 비밀도

어쩌면 이 작은 불꽃이

피고 지는 것에 달려있는지 모른다.


성냥 하나가 밝게 타올랐다가

훅 꺼지는 걸 그냥 지켜보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해서든 불이 꺼지지 않게

새로운 생각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마음속에 타오르는

12가지 기회를 주는 일을 한다.


아무도 모르게,

심장세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성냥 12개를 아주 작게 만들어서

몰래 심어 놓는 일을 맡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다.




사실 내가 만드는 12개의 성냥에는 비밀이 있는데,

그중에 6개는 일부러 잘 안 켜지게 만들어 놓았다.

열심히 긁어도 잘 안될 거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놓았으니까.  


가짜 불꽃과 진짜 불꽃을

구분할 수 있게 해 놓은 건데,

처음엔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가짜 불꽃을 두어 번 겪고 나면

진짜 불꽃을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성냥을 쓴 대가로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방식의 비용을 받는다.

성냥의 값을 제대로 받을 때도 있고,

못 받을 때도 있다.


성냥의 대가를 받으려면,

그 사람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성냥 하나를 켜면 작은 불꽃이 생기는데,

그 불꽃이 2주 동안 꺼지지 않고

쭉 이어질 때에만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성냥의 대가로 받은 것들이 아주 다양하다.

그중에는 직접 만든 빵도 있고,

새를 꼼꼼히 관찰한 탐조일기도 있으며,

상상 속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준 아이도 있다.

누구나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문장을 선물 받기도 한다.

물론, 돈도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주 예전에 받은 그 아이의 것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한 번도 받지 못한

신기한 선물을 준 특별한 아이였다.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아이였다.

성냥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켜지 않는 아이였다.



그 아이의 친구들 중에는

12개의 성냥을 금방 다 써버려서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있었고,

미뤄두었다가 왕창 몰아서

불꽃을 피우는 아이도 있었다.

가짜 성냥에 실망해서 아예 처박아둔 아이,

작은 불꽃을 꺼지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 아이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오던 깜깜한 시골에 갔을 때에도,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을 때에도,

심지어 놀이공원에 갔을 때에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그 아이의 하루가 가장 어둡고

캄캄했던 날이 있었다.

너무 어두워서 눈을 크게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냥을 켜지 않았는데

그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그마한 빛이 새어 나왔다.


작은 별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성냥을 켜지 않았는데, 빛이 생기다니.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어둠 속에서 자기 안의 빛을

발견한 아이가 직접 성냥을 하나 켠 것이다.


꺼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불이 계속 피어올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열네 번째 밤이 지나도록

불꽃이 꺼지지 않고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아이에게

성냥의 대가로 처음 선물을 받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도 따뜻

기분이 드는 묘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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