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카 Jul 11. 2021

슬기로운 곱슬머리 생활

적당히라는 게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기분과

곱슬머리.     


적당한 기분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적당한 곱슬머리란 과연 존재하는지.

 

나는 흔히 말하는 반곱슬이다.

어떤 날은 심한 반곱슬이고,

어떤 날은 자연스러운 반곱슬이다.


기분도 그렇다.

어떤 날은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나쁘고,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좋다.

적당히라는 게 없다.      


미용실에 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 건데,

곱슬머리에게 미용실이란

약간 두렵고 껄끄러운 곳이다.

일단, 이런 소리를 수없이 듣는다.  

    

숱이 진-짜 많으시네요.

곱슬이 심하시네요.

매직펌 하면 금방 깔끔해져요. 하실 거죠?     


미용사들은 곱슬거리는 것들은

모두 펴버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는 건지,

절대, 한 번도, 아무도,

"어머, 곱슬이시네요. 곱슬머리는

이렇게 하면 좋은데 그렇게 해드릴까요?"

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 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건지.      


어쨌든 하나밖에 없는 선택권

(뿌리는 펴고, 아래쪽은 컬을 내고)에 질린 나는

그렇게 하길 10년째에 그만두기로 했다.

곱슬머리의 주체성을 찾아보기로 했다.

뭐 지저분해지면 얼마나 지저분해질까.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며,

어찌어찌 버티고 버텨서

100% 본연의 머리카락이 되었을 때,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정돈만 하고 싶어서 커트하기 위해 미용실에 간다.

미용사는 샴푸를 하자고 한다.

혹은 분무기로 물이 뚝뚝 흐를 정도까지 적신다.

나는 내 머리카락의 성질을 잘 알지만,

미용사는 잘 모른다.


미용실에 가면 당당하게

"저는 이렇게 하고 싶고,

요기는 이렇게 잘라주시면 좋겠고,

이런 식으로 해주세요."라고 말하리라 다짐하지만,

머리를 감고 나오면

원시적인 나의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그 모습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당당함이라는건 진작에 사라지고 없다.   

   

물기를 머금은 곱슬머리를 가위로 쓱쓱 자르고,

뜨거운 바람에 말리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머리카락이 불려놓은 미역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미용사는 당황한다.

예정에 없던 고데기를 사용하여

머리를 급하게 물미역처럼 만들어주신다.

“다음엔 매직펌 하러 오세요~”라며 인사를 받고,

세상에서 가장 단아한 모습으로 미용실에서 나온다.

머리카락을 펴야 예쁘다는 강요를 받는 것 같아

피곤해진 나는 다음부터 드라이는 필요 없다고

말하리라 다짐하고 미용실을 나온다.


나의 방식으로 머리를 관리하러

집으로 곧장 달려간다.

아무래도 곱슬머리 전용 미용실이 너무 절실히 필요하다.      




사실, 3년째 천연 곱슬머리로 살면서

나만의 관리법을 알고 있다.

일단, 저녁에 머리를 감고

시원한 바람에 머리를 말린다.

잘 말리고 잠을 자면

아침에 정돈되어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차분해진 머리카락은 질끈 묶으면 끝.


하지만, 그것도 3년이라 지겨울 대로 지겨워졌다.

곱슬머리를 자연스럽게 풀고 다닐 수는 없는지,

뭔가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던 찰나에

곱슬머리 커뮤니티를 발견했다.

(이름도 귀여운 꼽쓰리! 여기에 가면 내가 어떤 타입의 곱슬머리인지, 어떻게 관리해야 좋아지는지 알 수 있다. 관계자아님)


보통 '곱슬머리'를 검색해보면

곱슬머리의 본래 모습을 어떻게 관리해야

효과적인지를 알려주는 내용보다

시술을 받으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비포 애프터로 내용들만 가득한데,

그 가운데서 찐 곱슬머리 선배님들을 발견한 거다.


곱슬머리인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에서는

‘악성’곱슬이라는 말 대신(곱슬이 왜 유해하죠?),

하나도 똑같지 않은 다양한 자기만의 머리카락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너무 예쁜 컬이라고 부럽다는 말이 오가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곱슬머리는 컬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헤어 타입의 종류가

직모와 곱슬 2가지로 나뉘는 게 아니라

12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ype 1. Straight 직모

Type 2. Wavy 웨이비

Type 3. Curly 컬리

Type 4. Coily 코일리

딱 하나로 정해지는게 아니라 여러 개일수도 있다




야매로 터득한 셀프 관리법을 넘어

전문적인 관리법도 배웠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타입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당장 해보기로 한 것은 이것!


1. 곱슬머리는 건조해서 부스스해 보인다는 것을 알고,

2. 머리를 감고 '리브 인 컨디셔너'와 '오일'을 발라 본연의 컬을 살리기.

3. 찬바람에 말리고, 극세사 수건으로 마찰을 줄여 말리기.

4. 마른 상태에서는 절대 빗질을 하지 않기!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머리카락도 이렇게나 다양하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관리법은

대부분 직모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더 부스스할 수밖에.


틀에 박힌 미의 기준 때문에

곱슬은 무조건 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남의 시선에서  발짝 벗어난 기분!

(이제 고데기는 안녕…)


                   

아, 그러고 보니,

기분과 곱슬머리의 공통점은 또 있다.

날씨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후후...







Instagram @kimpac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