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쓰는 아빠들의 육아일기 뉴스레터, 작업 비하인드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썬데이파더스클럽의 시즌 2를 위해 새롭게 로고와 비주얼을 작업했습니다. 비주얼 리뉴얼을 위해 몇 차례의 간단한 미팅을 가졌는데요. 아빠들의 요구사항은 간단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을 분유나 젖병 이미지로 한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덕분에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요.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아빠들의 (무채색) 물건들 사이에서 아이의 (알록달록한) 물건을 그려볼까?
아빠의 펜과 어린이용 점보 색연필을 각자 쥐고 있다가 아빠 걸 궁금해하는 아이가 펜을, 아빠가 아이 색연필로 쓰는 장면을 그려본다면? 이걸로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랑 외출할 때 실수로 또는 일부러 짝짝이 양말을 신은 아빠?
저는 뉴스레터 ‘썬데이파더스클럽’을 시즌 1부터 구독하던 독자이기도 합니다. 그중 멤버인 손현 님을 알고 있으니 사전 자료를 깊이 찾아보지 않아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었죠. 하지만 썬데이파더스클럽만의 또렷한 분위기를 좀 더 찾고자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몇 가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섯 아빠들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또는 새롭게 쓰는 물건
(육아로) 힘들었는데 좋아지는 기분으로 바뀌는 순간
육아에서 빠져나와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장소·장치
아이와 외출할 때 평소 옷차림, 자주 챙기는 아이템
아빠가 육아할 때 엄마랑 다른 점
특별히 좋아하는 문장이나 간직하고 싶은 메시지
간단한 질문들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긴 답변이 왔어요. 다섯 명 모두 생생하게 답변해 준 덕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어요. (답변들 전문도 아래 공유합니다.)
박정우: 물과 물통. 아이들과 외출할 때 늘 챙기게 됩니다. 거의 항상 목이 말라하거나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주면 마십니다. 그리고 바닥. 캐나다에 다녀온 뒤부터 저나 아이들이나 길바닥에 철퍼덕 잘 앉게 되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지저분하다고 못했을 행동이네요.
심규성: 흰색 종이와 2세대 아이패드, 페이퍼리스의 시대지만 이제 막 숫자와 글씨를 배우는 아이에게는 텅 빈 흰색 종이가 곧 장난감이자 메시지가 오가는 플랫폼입니다. 회사에서는 이제 펜도 잘 안 쓰지만 집에만 오면 색연필을 들고 아이랑 같이 종이의 빈 여백을 채우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일들을 합니다.
10년 전에 구입한 아이패드는 TV가 없는 집의 특성상 TV 대용이자, 유튜브 플레이어로 쓰고 있는 물건인데 매일 아침 어린이집 출근을 위해 새벽같이 깨울 때, 하기 싫어하는 목욕을 하고 나서 보상을 줄 때 매우 유용한 도파민으로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실수로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는데 새 모델을 살까 고민하다가 괜히 정이 들어 사설업체에 맡겨 수리 후 다시 쓰고 있습니다.
배정민: 공? 관심이 있다가 없다가 해서 버리진 못하고 계속 두고 있네요. 종류도 여러 가진데 요즘에는 배구공….
강혁진: 아이와 차에 타서 이동을 하거나 외출을 하면 종종 블루투스 스피커를 손에 들려주고 동화를 틀어줍니다. 스마트폰은 최대한 늦게 접하게 하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외출해서 아이를 달래주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얗고 동그란 저렴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아이에게 쥐어주고 유튜브에서 다양한 전래동화를 찾아서 들려줍니다. 아이는 좋아하는 동화가 여러 개인데요. 요즘은 ‘행복한 왕자’를 제일 좋아합니다.
손현: 육아를 하면서 자주 쓰게 되는 물건이 모자와 미니 크로스백인데요. 아침에 머리도 못 감고 아이와 외출하거나, 제 외모를 가꿀 시간 따윈 없으므로 주말에도 대충 모자를 쓰고 나오는 편이에요. (어차피 저녁에 땀 흘린 아이랑 또 샤워할 거니까…) 그리고 두 손이 자유로운 게 여러모로 편해서 요즘은 미니 크로스백도 애용하고 있어요. 여기에 휴대폰, 집 열쇠, 카드지갑, 자동차키 등 온갖 잡동사니를 다 넣어놓으면 아저씨룩 완성ㅋ
박정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 아이들이 자신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될 때, 길을 가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 때, 내가 해 준 밥을 잘 먹을 때.
심규성: 거의 에너지 고갈 상태로 (아내에게 차마 못하겠다는 말은 못 하고) 목욕을 시키는데 욕조 안 아이의 장난과 높은 텐션 덕에 덩달아 힘이 났었던 적이 있습니다.
배정민: 퇴근하고 들어올 때 아이들이 달려와 와락 안기면 좋아집니다. 근데 안기는 거 기대하며 문 열었는데 애들 게임하고 유튜브 보느라 본체만체하면 반대로 기분 처지죠.
강혁진: 아이가 환하게 웃을 때, 또는 함께 같이 놀자며 ‘아빠 ㅇㅇ 합시다’, ‘ㅇㅇ하러 갑시다’라고 말할 때. 아이와 입맞춤하는 걸 좋아하는데 엄마가 ‘아빠 입에 뽀뽀하지 마라’고 해서 엄마가 있을 때는 ‘볼에다가’라고 하며 볼에 해주고 엄마가 없거나 안보일 대는 제 입에 해주곤 하는데 그때가 참 좋습니다. (제가 면도를 안 해서 수염이 길게 자라면 아이가 종종 ‘아빠 따가워, 수염 빨리 없애’라고 하기도 합니다 ㅎㅎ)
손현: 체력적으로 지치거나 힘들 때면 주로 맥주와 감자칩(필스너+ 포테토칩 조합)으로 셀프 보상을 주곤 했는데요. 건강에 썩 좋진 않아서 자제하는 중입니다. 오히려 아이가 건네는 의외의 말 한마디, 어느새 한 뼘 자라난 모습을 보며 그날의 피로가 좋은 기분으로 바뀌곤 해요.
박정우: 설거지할 때 이어폰. 하루의 마무리이자 저의 도피처인 싱크대 앞. 아이들에게 미리 귀에 이어폰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해도 잘 안 들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설거지를 합니다. 물리적으로 도망갈 수 없기에 제가 선택한 잠시의 도망이랄까요. 기다려지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설거지 시간이 즐겁습니다. 육아휴직 전에는 물론 회사가 육아의 훌륭한 도피처였지요. 그리고 부모님 댁. 거리가 멀어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노리신 듯) 가면 저도 아이가 되어 투정도 부리고 아이들을 편하게 맡겨둡니다. 심지어 장인어른댁에 아내 없이 저와 아이들만 갈 때도 가끔 있습니다.
심규성: 세 명이 탔다가 두 명을 직장&어린이집에 내려주고 메탈리카나 익스트림, 그 외 좋아하는 락음악을 틀고서 혼자서 달리는 차 안.
배정민: 한두 시간 정도면 카페에 가거나 서점에 갑니다. 하루 이상이라면 여행…? 을 가고 싶지만 여건상 매번 가진 못하고요.
강혁진: 종종 아이가 잠든 후 아내와 거실에서 수다를 떱니다. 만삭인 아내는 3인용 소파에 눕고 저는 소음방지용 알집매트가 깔린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 나눕니다. 가끔은 아이용 테이블을 간이 식탁 삼아 술과 안주를 올려놓고 먹으면서 아내와 같이 TV를 보며 수다 떨 때도 있고요.
손현: 테니스 코트에서 게임할 때. 요즘은 게임을 자주 못하니 실내 코트에서 레슨 받을 때 온전히 현실을 잊고 운동에만 집중합니다.
박정우: 흰색 반팔티와 회색 반바지. 물통은 되도록 챙깁니다. 조금 멀리/오래 외출을 하게 되면 에코백에 고구마 말랭이 같은 간식을 챙기고 차에는 혹시나 몰라 반창고와 연고, 모기약, 물티슈 등을 늘 구비해 둡니다.
심규성: 감지 않은 머리를 가리는 ‘검정 모자’, 편한 반팔 티셔츠와 긴바지 (대게 블랙)
배정민: 무지 티셔츠에 청바지 또는 반바지. 너무 평범해서 아이들이 가끔 (저를) 다른 아저씨랑 헷갈려하기도 합니다.
강혁진: 요즘은 스파이더맨이 그려진 옷을 좋아합니다.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는 자기가 직접 자기 몸집만 한 어린이집 가방을 메는 걸 좋아하고요. 또 요새는 자, 막대기처럼 긴 물건을 휘두르며 ‘자기 칼’이라고, 나쁜 사람 오면 혼내준다고 하고 다니네요. (처음엔 혁진님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의 옷차림으로 잘못 이해하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이것마저도 웃긴 포인트)
손현: 아직까진 아이가 어리니, 안아달라고 보챌 때도 많은데요. 무거운 걸 든다는 생각(?)으로 신발은 무조건 편한 걸로 신으려는 편이에요. 쿠션감이 있는 아식스나 뉴발란스 신발을 주로 신습니다.
박정우: (보상) 엄마는 반대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 하면 ~ 하자는 식의 조건을 걸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아들들이라 남자아이들의 심리를 조금 더 이해하는 것 같아요. (음식) 규성님 의견과 마찬가지로 곰탕, 칼국수, 순대국, 짜장면, 라면 류의 음식은 엄마와 함께 일 땐 잘 먹지 못하는 종류라 기를 쓰고 먹습니다. (버스) 아이들과 마을버스나 버스 타는 게 좋습니다. 제가 운전을 안 해도 돼서기도 하고 아이들과 더 친밀하게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서. (몸) 툭툭 건드리는 장난도 많이 치고 뛰기도 하고 힘겨루기도 종종 합니다 (왜?) 상대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엄마는 주로 들어주고 공감하는 역할을 하지만 아빠는 원인파악과 문제해결에 집중하게 되네요. 무작정 공감하기가 늘 과제입니다.
심규성: 자동차를 유모차처럼 쓴다는 것. 아내가 잘 먹지 않는 곰탕, 칼국수 집에 자주 간다는 것. 세 번만 보기로 한 영상을 다 봤을 때 네 번까지는 가끔 허락하지만 다섯 번, 여섯 번까지는 없다는 것. 가끔 취해서 아이와 유사한 높은 텐션으로 놀아주는 엄마와 달리 항상 정적이고, 진지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
배정민: 별다른 건 없어요. 몸으로 힘을 좀 더 쓴다 정도? 아무래도 목마태우고 들고 하는 일들이 좀 더 많다는 정도.
강혁진: 가급적이면 안된다는 거 없이 다 하게 둡니다. 달달한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옷이 조금 더러워지는 놀이일 수도 있고, 조금 위험한 행동일 수도 있고. 최대한 아이가 자기 한계를 느낄 수 있는 걸 경험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손현: 조금은 더 느슨(?) 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에 TV가 없다 보니, 간혹 아이만 데리고 다른 분 집으로 놀러 가거나 본가에 갈 때면 TV로 애니메이션 같은 걸 보여주기도 해요.
박정우: young adults. 어린 어른. 어른 아이. 아이와 어른에게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단순한 단어라 서로를 이해하게 되어 좋아합니다
심규성: 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 (잘 떨어지면 잘 날 수 있다. — 강풀 작가)
배정민: “아빠 언제 와?” 저녁마다 아이들이 종종 전화합니다. 얼른 갈게 하면서 못 갈 때도 많은 게, 더 크면 더 이상 저런 메시지 못 듣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미리 아쉬워져요.
강혁진: 작년 이맘때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요. 딱 힘든 일이 최고조에 달하던 날, 지하 주차장에 가족이 함께 내려가는데 아이가 갑자기 제 뒤에서 “도망치지 마~”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지하주차장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주저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왜 그 말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그 한마디가 잊히지가 않네요.
손현: “아이는 손님처럼” (박혜란 작가, 이적의 어머니이자 여성학자, 육아 멘토) / “박혜란 작가는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라고 말한다. 아이는 부모 곁에 잠깐 머물다 가는 ‘손님’이라는 의미다. 손님은 타인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부모와 아이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손님에겐 강요와 잔소리를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다. 아이도 그저 귀한 손님으로 대하면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사라진다. 또한, 손님은 언젠가는 떠난다. 아이도 언젠가는 떠난다. 그래서 아이는 언젠가 떠나보낼 사람으로 대하라고 말한다. 아이를 그저 내 집에 머무는 귀한 손님이라 여길 때 아이를 향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귀한 손님입니다’ 정효진 칼럼니스트의 글에서 발췌)
한편 아빠들의 대답들을 꼼꼼히 읽고 나니 이런 생각들이 들더군요.
외출모드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모자’와 평범한 반팔티, 바지의 현실적이고 캐주얼한 모습을 적극 활용해야겠다. (너무 평범해서 아이들도 아빠를 헷갈리게 한다는 말에 빵 터졌습니다…)
엄마 육아와 아빠 육아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를지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자동차를 유아차로 쓴다’, ‘몸을 좀 더 쓴다’ 등등
‘돌봄’의 분위기가 보다 확장되며 현장감 있게 느껴지면 좋겠다!
여러 장면들을 그려봤어요. 아이를 목마 태운 아빠를 그리던 중, 장난 삼아 아이가 아빠 눈을 가린 장면을 그려봤는데 그 자체로 아이코닉한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그래서 이걸 좀 더 발전시켜 봤습니다.
언제든 돌봄 모드로 전환시킬 수 있는 모자를 활용해서 멤버들의 프로필 이미지도 바꿔봤고요. 자동차를 유아차처럼 쓰는 장면을 메인으로 그리되, 도로 풍경이나 일상이 아닌 이상한 나라의 우주로 달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그렸습니다.
저는 주로 연필이나 펜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종이 위에서 느껴지는 손맛이 주는 미묘한 완성감을 좋아해요. 그런 방식으로 작업할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 분위기가 점점 더 깊어지고 확장되는 느낌도 들고요.
다섯 아빠의 프로필은 옆모습으로도 그려봤어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표정을 알 수 없도록요. 너무 밝게 웃고만 있는 건 지양하고 싶었거든요.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각자의 특징을 조금씩 살려보았답니다.
그렇게 완성된 썬데이파더스클럽의 새로워진 모습을 공개합니다!
오는 10월 13일 일요일 밤에 발송되는 레터부터 만나보실 수 있어요.
썬데이파더스클럽 @sundayfathers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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