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애썼다, 딸.

공부방법의 차이, 미국교육 적응기

by 유강

점심시간이었다. 직원들 모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전화는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도 걸려왔고 오늘이 마지막 전화 일터였다.

점심이 거의 끝나가던 시각,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막 시험 끝났어. 오늘도 세 과목 모두 만점이야."

"그래?, 우리 딸 정말 잘했구나, 애썼다. 나중에 집에서 보자."라고 나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한다.

오늘로서 전과목 모두 만점을 맞았다는 딸의 전화에 많이 기쁘고 엄마인 나는 그 누구보다도 뿌듯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내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그 무엇인가가 싸하게 밀려온다.

전과목에서 모두 백점을 맞다니... 그래도 되는 건가??? 조금 이상한 것인가??? 너무 강박적인 것은 아닐까??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닌 무려 고등학생이 체육과 미술을 포함한 전 과목에서 올 백을 맞았다는 사실에 엄마인 나는 슬그머니 압도되고 만다.

그리고 압도된 마음 뒤편에서는 알 수 없는 걱정과 불안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딸아이는 공부를 잘했다.

무슨 동기로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한 결과는 새로운 도전의 원동력으로 다시 작용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원하는 대로 이뤄내는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엄마인 내가 중고등학교 때 해보지 못한 전교 1등을 예사로 하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이나 몇몇 과목에서 한두 개 틀릴 때 오히려 맘 편했던 것과는 달리 모든 과목에서 백점을 맞았다는 사실이 왠지 불편했다.

아이가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너무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한국에서의 전교 1등은 미국 고등학교 11학년생이 되어서도 그에 버금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미국 학생들이 4년동안 평균 6-7개 듣는다는 AP 과목을 불과 2년 동안 9개나 듣고,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두 과목을 더 들었다.

공부 외의 크레딧을 쌓기 위해 수상안전요원 자격을 따고 병원 자원봉사, 지역 오케스트라 활동을 해나갔다.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2년은 또 다른 버전의 '완벽'을 향한 질주였다.

쉼 없이 이어졌던, 끝닿는 곳이 어디일지 알 수 없어서 더 몰입하고 집중하던 시간들.


대학 입학 때까지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던 완벽과 성취지향은 대학과정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게 된 딸아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얻어낸 성적표에 좌절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참담한 결과들이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험 결과들에 좌절한 딸은 내게 전화해서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기 일수였다.

"엄마, 나 바보인가 봐. 분명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 점수가 나왔어. 나 어떻게 하지?? 흑흑흑.."

대학을 다니는 동안 파티 한번 못 가고 매진한 노력의 결과는 아이의 삶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었다.

올백을 맞고 자신만만해하던 아이의 모습은 불과 3년 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딸아이의 성취와 좌절은 어쩌면 한국과 미국의 교수-학습방식과 관련이 있었지않나 짐작되었다.

아니, 나는 미국에서 학교교육을 받아보지 못했으니 그 차이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이가 보충공부를 위해 사물함에 두지않고 집으로 가져온 교과서의 크기에 너무 놀랐었다.

한국의 교과서가 정말 중고등 교과서 크기라면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는 베개를 삼아도 될 정도의 크기와 두께였다. 그 과목의 기초이론부터 부연 설명, 참고사항까지 총망라된, 이를테면 한국의 교과서가 핵심 요약본이라면 미국의 교과서는 기본 설명서와 참고문헌이 합쳐진 종합본같았다.

학생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면서 지식의 체계를 확장시켜나갈 수 있게 설계된 백과사전식 교과서.

그것을 한국 교과서 공부하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하고자 한다면 그런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겠지.

그동안 모든 과목을 본인이 충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반복해서 읽고 이해한뒤 암기하며 만점을 받아오던 아이는 당황했을 것이다.

게다가 대학교육 아닌가. 미국의 대학교육은 초중고에서 훈련받은 대로 두툼한 교과서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 논리적 사고와 이해,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도록 요구받는다 하지 않던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한국식 교육으로 승승장구하던 아이는 미국식 대학교육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을 것같다.

딸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 바보인가 봐, 어떻게하지?? 죽고 싶어.."였다.



하지만 딸아이는 좌절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배워나갔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통해 딸은 자신이 한국에서 받은 교육방식이 미국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정리된 핵심요약형 교과서, 그것을 또다시 선생님들이 효과적으로 재정리해 전달해주는 방식에 익숙한 자신의 학습방법으로는 방대한 양의 전공 공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렇게 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실패 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새로운 학습방식으로 자신을 바꾸어나갔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다가가기 위해서.


십여년의 공부 과정 속에서 딸아이는 더 이상 올백을 맞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 어떤 누구도 모든 것에서 잘할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딸은 'Be perfect! 하라는 강박의 사슬'에서 조금씩 풀려났다.




어쩌면 딸아이가 미국 학교에서 겪었던 좌절을 나는 이미 그 이전부터 예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도 아닌 고등학교 시험에서 전과목 만점을 맞는 '완벽을 향한 강박'은 자기 주도 학습의 세계에서는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전과목 만점 앞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불편함은 그러한 불안의 표출이지 않았을까.

딸이 참담한 성적표를 들고 우는 모습은 전과목 만점의 성적표를 들고 의기양양하던 모습의 뒷면이었다.



학령기를 통틀어 롤러코스터를 타듯 성공과 실패 모두를 치열하게 경험 한 딸은 이젠 평균을 지향한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이어진 시험에서도 딸과 우리는 'pass? or fail?'로만 묻고 대답할 수 있게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과 고통이 있었다. '완벽'과 '강박'을 깨닫고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기까지.

평균을 지향하는 지금은 쉼과 현재를 누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나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딸이 만약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끊임없이 펼쳐지는 경쟁의 전쟁터에서 여전히 살아남기위해 전력투구하고있겠지.

어쩌면 해왔던것처럼 계속 승승장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쉼없는 삶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쟁에, 자신앞에 선 누군가를 넘어서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지금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이 겪고있는것처럼....


늦게나마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 딸이 대견하다.

더 이상 강박적으로 매달리지않고도 자신이 원하는것을 조금씩 이루어나가는 딸이 기특하다.

낭만 닥터 김사부 말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되 앞으로 쭉 나가길, 그렇게 낭만을 잃지 않기를...

더불어 나의 조카들, 내 이웃이었던 분들의 아이들, 그들의 손자손녀들, 모두가 행복할 권리를 되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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