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출장 중, 둘이 직접 해결해.

아빠와 딸, 부녀관계의 해법

by 유강

"야, 너 이 자식!! 당장 이리 나와!!!"

"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하면 되니 안되니 엉?"

아빠의 호통에 제 방으로 쌩 들어간 아이가 다시 씩씩거리며 거실로 나온다. 손에는 얼마 전에 치른 시험 성적표가 들려있다. 아이는 좋은 성적이 적혀있는 성적표를 아빠 앞의 식탁에 '탁'놓고는 다시 휑하니 제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의 이런 행동은 아빠의 화에 한 드럼통의 기름을 확 끼얹어버린다.

"야, 너 이 자식!!! 공부가 다냐!!! 공부보다 인간이 돼야지, 인간이!!! 당장 이리 나오지 못해!!!"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빠와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조금 독특한 성격의 아이를 남편은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파크가 튈 만큼 어려운 문제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였다.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장난기가 많았던 아이는 어느 날 난생처음으로 뺨을 얻어맞는 엄청난 일을 겪었다.

바로 할아버지로부터였다. 할아버지방 소파에서 동생들과 뛰며 놀던 아이에게 몇 번의 경고를 주었음에도 멈추지 않자 화가 난 할아버지가 그만 아이의 빰을 때린 것이다.

퇴근해서 그날의 해프닝을 들은 나도 몇 날 며칠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당사자인 아이는 어땠겠나.

아이는 그날 이후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아이가 할아버지에 대해 갖는 감정과 태도는 늘 냉랭했다. 당연히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태도는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아빠의 눈에 거슬리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둘 사이 갈등의 핵심 레퍼토리가 되었다.

다행히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분가를 해 할아버지와 아이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서 갖는 삼대의 저녁식사는 그다지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무엇인가 불편해했고 아이는 "나, 사춘기예요."라고 얼굴에 쓴 채 냉랭하게 굴었다.

할아버지는 그 어색함을 어쩌지 못해 밥을 먹으면서도 텔레비전을 켜놓으려고 했고 아이는 밥만 먹고는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이를 향한 아빠의 큰소리는 그런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나 공부해야 돼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놀 시간 없다."라고 항변하는 아이와 "공부가 다냐, 할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그게 뭐냐"라고 혼내는 남편 사이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했었다.


"00아,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부모를 초대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아빠를 이해해서라도 두 분에게 친절하게는 해야지."


"좋아하지 않는 할아버지한테 아이가 얼마나 더 다정하게 대하라고 그러는 거야? 잘잘못을 따지자면 아버님 잘못이 훨씬 더 크잖아."


아무리 서로의 입장을 설명해주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애썼지만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아이가 사춘기의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갈수록 두 사람 사이는 멀어져 갔다.

잘못하다가는 할아버지뿐이 아니라 아빠 하고도 영영 담을 쌓게 되지 않을까 봐 나는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아이와 아빠의 관계가 나를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던 즈음이었다.

직장일로 나의 미국 출장 일정이 잡혔다.

나는 해외출장을 준비하면서도 남편과 딸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두 주 가까이 내가 없는 동안 셋이서 잘 꾸려갈 수 있을까?

식사 준비와 아이들 등교, 학원 데려다 주기 같은 구체적인 일들도 걱정스러웠지만 가장 큰 걱정은 아빠와 딸이 얼마나 잘 지낼지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정은 잡혀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두 사람에게 맡기는 수밖에.


"아빠 말 잘 듣고 아빠한테 대들지 마. 너를 도와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어. 아빠가 우리 팀 대장이잖아."


"아이한테 잘 대해줘, 혼내려고만 하지 말고. 저 혼자 공부하느라 애쓰잖아.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


이제는 무조건 두 사람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둘은 '엄마와 아내'라는 완충지대 없이 맞닥뜨리게 되었으니 싸우든 사이좋게 지내든 둘의 결정에 달렸다.


시차로 인한 잠과 영어와의 전쟁을 치른 힘든 하루의 일정이 끝나면 나는 호텔의 비즈니스룸에 가서 어렵사리 서울의 집과 연락을 취하고는 했다.

"아이들은 제시간에 등교했는지, 밥은 챙겨 먹었는지, 남편은 일찍 퇴근했는지, 서로 다투지는 않는지.."


나의 걱정과는 달리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쾌활했다.

아니, 남편도 딸도 식구들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내 여행 일정을 걱정해주었다.

잘 지낸다는 소리였다. 처음 며칠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매일매일 연락을 했지만 며칠 지나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뒤부터는 걱정을 털어버리고 나의 여행 일정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사춘기 딸을 중심으로 해결해야 할 가족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 거였다.

딸의 할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아빠, 둘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내가' 해결하려들었던 나의 과도한 개입.


하지만 오히려 내가 '엄마의 자리'를 비우자 아빠와 딸은 그동안의 싸움을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말려주는 아내도 없고, 이해하고 달래줄 엄마도 없었다.

둘은 일단 긴장과 싸움을 멈추고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없는 동안만이라도 갈등의 소지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이견이나 갈등이 있을 것 같으면 일이 커지기 전에 한발 물러나 둘이 대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갈등이나 싸움 말고도 다른 소통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알게 되었다. 내가 무조건 중재하려고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의 과도한 개입은 남편과 아이가 자신들의 문제에 맞닥뜨려 직접 해결할 기회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갈등적 관계와 문제 해결은 당사자들이 직접 대면할 때 가장 빨리 해결된다는 것을.


출장으로 인한 나의 부재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 없이도 충분히 사이좋은 아빠와 딸로 잘 지낼 수 있음을 스스로 경험해보았다.

그런 경험은 그 뒤 몇년 더 이어진 둘 간의 문제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아빠와 딸이어서 이렇게 내가 들추어내는 과거의 일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의 좋지 않았던 경험과 사춘기의 반항적 태도, 젊은 아빠의 다듬어지지 않았던 훈육방법과 나의 지나친 개입이 빚어냈던 우리 가족의 힘든 시간들.

그 시간 중에 주어졌던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는 출장 중'이라는 해법.

그 도전을 잘 극복한 두 사람의 용기와 노력.


어쩌면 그런 시간들을 무사히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의 서로가 더 소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IMG_130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