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무 바빴었지..

엄마의 빈자리를 잘 버텨주어 고맙다.

by 유강

퇴근할 무렵, 큰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복지관 가다가 길바닥에 쓰러졌었어."

"뭐라고? 어떻게? 다친 데는 없고? 괜찮니? 휴우.."


아이는 방과 후 스케줄이 많았다.

우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가방만 바꿔 들고는 곧바로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피아노는 유치원 때부터 다니던 곳이다. 아이가 없었던 피아노 선생님은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을 무척 이뻐했다. 아이는 피아노도 배우고 엄마 대신 제 조잘거림에 기꺼이 응해주던 피아노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렇게 피아노를 치고 나면 청소년회관에서 하는 수영교실에 격일로 다니고 있었다.

무용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주변에서 쉽게 찾기 어려웠던 무용학원은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에겐 사치였다.

무용 대신 선택한 운동이 수영이었다.

그래, 수영은 배워야겠지? 물에 빠지면 최소한 헤엄쳐 살아 나올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수영을 하고 나면 근처의 복지관으로 향했다. 그곳의 컴퓨터 교실에 가기 위해서다.

한창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취득에 고무되어 있던 아이는 빠지는 일없이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길에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수영장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언덕 위에 있던 복지관으로 서둘러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아찔하고는 정신을 잃었단다. 학교 수업에, 피아노 연습에, 이어지는 한시간의 수영은 어른에게도 벅찬 일정일터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길가던 아줌마가 도와줘서 일어났어."

"괜찮았어? 집으로 돌아가지 그랬어?"

"아니, 괜찮아져서 다시 복지관으로 갔어."

"..... "


전화를 끝내기도전에 갑자기 눈이 시렸다.

젖은 머리를 하고 길바닥에 쓰러졌을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주변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린 뒤에 주섬주섬 보조가방을 챙겨 다시 복지관으로 걸어갔을 아이의 모습에 눈앞이 흐려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나에게 전화를 거는 아이의 어른스러움에 할 말을 잃은 채 맥없이 흐르는 눈물을 쓱 훔쳐냈다.




"엄마, 오늘 조금 일찍 오면 안 돼?"

"왜?, 오늘 친구 생일파티에 간다고 했잖아?"

"응.. 그런데 친구 엄마들도 다 왔어. 엄마도 오면 안 돼?"

"... 엄마 오늘 행사가 있어서 일찍 들어가기 어려워..."

" 엄만 맨날 바쁘대, 힝,..... 알았어..."

".... 엄마가 못 가서 미안해."


어느 토요일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작은 아이는 동네의 레스토랑에서 한다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간다고 했었다.

전날 친구에게 줄 생일선물을 사고 집이 아닌 음식점에서 파티를 한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일파티에 간 아이로부터 느닷없이 전화가 온 거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들까지 왔단다. 엄마도 왔으면 좋겠단다.

이를 어쩐다?.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주민들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더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가 있었다.

다른 엄마들처럼 아들 친구의 생일파티에 같이 가주기에는 나는 너무 일이 많은 엄마였다.

게다가 작은아이는 큰아이보다 많이 소셜 했고 초등 저학년들의 특성상 엄마들의 소셜도 덩달아 필요했다.

바쁜 엄마를 둔 탓에 '엄마들의 친교'로 더 돈독해지는 친구관계를 아쉬워하던 아이를 보면서 나는 맥없이 '그것도 치맛바람'이라고 다른 엄마들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마음을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마음 한구석에 구겨져있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은 감출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엄마의 자리'에 늘 있지 못했다.

풀타임 직장을 다녔고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매주 목, 금요일 수업을 따라가자면 일하는 시간외에도 별도의 내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 나에게 두 아이의 방과 후 활동을 일일이 챙겨주고 아이 친구 생일파티까지 쫒아다니기는 사치였다.


어느날 아침, 출근하는 차속에서 나는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멍하니 노랫말을 따라가고 있는중이었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대 위해 비가 되겠어..."


노랫말을 무심히 따라가던 내 머릿속 흐름 하고는 상관없이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왜 눈물이 이렇게 나는거지???"

알 수 없었다. 차속에는 나 혼자이니 줄줄 흐르는 눈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들려주는 속삭임같은 가사와 리듬은 눈물과 함께 그대로 가슴속 깊이 젖어들었다.


눈물은 지친 나를 일깨워주었다. 내가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두 아이의 엄마로서도, 풀타임 직장인으로서도, 대학원 학생으로서도.

나도 방과 후 아이에게 간식을 챙겨 먹이고, 아이와 같이 재잘거리고, 같이 걸어 학원에 데려다주고 싶었다.

나도 한쪽에서 떠들썩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다른 엄마들과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일에 쫓기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웃으면서 살고 싶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돌아볼 때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했다. 아니, 있고 싶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그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다.

나의 과도한 "Try hard!"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도 알 수 없다.

바라건대 '바쁜 엄마'탓에 잃었던 것보다는 '열심히 일한 엄마'탓에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다.

엄마와 둘이 텅 빈 엄마의 직장에서 같이 공부하던 시간들을,

엄마가 참여하는 웤샾에 쫒아와 다른 방에서 책을 읽던 시간들을,

먼저 출발한 아이의 그린스카우트 여름 캠핑에 반차를 내고 뒤늦게 합류한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방학식날 반 친구들에게 주고 싶다는 쿠키를 같이 구우면서 새벽 1시까지 포장하던 시간들을,


무엇보다도 늘 곁에 있고싶었고, 가장 먼저 너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어 했던 나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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